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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밭에서 감자 캐는 날
지렁이밭에서 감자 캐는 날 ⓒ 신동헌
권광식 교수.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농부다. 얼굴을 보면 해맑은 소년이다. 50을 훨씬 넘긴 나이. 말복 전날. 그 얼굴이 땀범벅이 됐다. 8월 태양감자를 2가마나 캤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에서 농업이론을 강의한다. 하지만 집에서는 일년 내내 땀 흘리는 땀농사를 실천한다. 그가 철학적인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감자를 캐면서였다. "땀방울도 자연이지요. 이 땀방울이 있어야 도시텃밭농사의 의미가 있고요." 번갈아 우는 쓰르라미와 매미소리가 권 교수의 땀방울을 시원하게 씻어버렸다. 하늘은 맑았다. 가을 같이 매우 높았다.

감자반 지렁이 반
감자반 지렁이 반 ⓒ 신동헌
올 감자 수확은 좀 늦었다. 말복을 전후해 캐는 감자는 그리 흔치 않다. 권 교수도 보통 방학이 되면 캐는데 비가 잦아서 부득이 여름을 냈다. 100여평 텃밭에서 감자밭은 20평이나 될까? 하지만 땅에 신경 쓰고 8년 정도 흙 살리기에 진력을 다해서 올감자도 풍년이다.

질 좋은 흙이 고품질 풍년감자를 만들어주었다. 부인과 함께 호미로 가장자리를 조심해 파고들다가 줄기와 함께 감자를 들어올리면 영락없이 주먹만한 감자부터 자잘한 감자까지 골고루 한아름이다. 몇 포기만 뽑아올려도 삼태기가 그득. 올해 감자농사는 두 가마 정도가 목표다. 이미 한 가마는 유기농생협회원들과의 한바탕 잔치가 8월에 계획되어 있다.

생명밥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생명 텃밭
생명밥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생명 텃밭 ⓒ 신동헌
도시텃밭 농사. 이 농사는 권 교수가 실천하며 부르짖는 농사다. 도시에 사는 도시민들이 도시생활을 하면서 짓는 농사가 도시텃밭 농사다. 권 교수도 도시에 산다. 도시에 살면서 가족농 중심의 텃밭농사를 실천한다.

경기도 하남시 궁안마을. 그의 금싸라기 텃밭은 100여평. 집 뒷마당이 남한산성 산자락인데 여기까지 치면 수백평쯤 된다. 여기에 도토리나무부터 시작해서 사과, 배, 감나무, 매실, 살구, 모과 등 과실수와 고추, 상추, 시금치, 호박, 오이, 토마토, 당근, 미나리, 유채, 도라지, 더덕, 대파, 마늘, 근대, 딸기, 갓끈동부, 참외, 땅콩, 옥수수, 조, 고구마, 부추, 그리고 무, 배추까지 권 교수 3식구가 일년 먹는 온갖 채소와 과일 농사가 이뤄진다.

여기에 산나물, 들나물까지 하면 그의 생명밥상은 늘 풍성하다. 자급률이 90%는 넘을 듯. 쌀과 고기, 수박 등 극히 제한된 먹을거리만 지출품목이다.

텃밭 농사의 시작은 흙 살리기
텃밭 농사의 시작은 흙 살리기 ⓒ 신동헌
권 교수 텃밭에 화학비료와 제초제, 화학농약은 일찍부터 금기사항. 벌써 8년째 이를 금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모범적 유기농산물 생산 농가다. 그래서일까? 감자줄기를 뽑으면 감자만 달려 나오지 않는다. 지렁이도 함께 달려 나온다. 감자줄기를 파노라면 꿈틀거리는 네댓 마리정도의 지렁이는 쉽게 확인된다.

감자 반 지렁이 반. 지렁이가 지천이다. 지렁이도 왕지렁이다. 굵기로 하면 연필만할까? 이뿐만이 아니다. 땅을 파면 개미집이 터지는가하면 요상한 벌레들이 제 구멍 찾기에 분주하다. 권 교수는 이놈들이 맛있는 감자, 토마토, 고구마를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텃밭농업의 시작은 흙 살리기라는 것이다.

"흙이 살아야 물도 살고 환경도 살고 지렁이도 삽니다. 지렁이 밭을 만들면 흙살리기는 저절로 되죠. 농사는 거저고요. 저는 지렁이 밥 만들기에만 신경 써요." 여기서 지렁이밥은 토착미생물을 말한다. 토착미생물이 왕성하게 활동해야 지렁이가 많아져 흙이 좋아진다는 생각이다. 특히 그는 토착미생물도 근처 남한산성의 토착미생물을 지렁이 밥으로 한다.

"농약도 문제지만 제초제 피해가 심각합니다. 제초제는 풀만 죽이는 게 아니라 생명의 네트워크를 모두 파괴하지요. 땅속에 미생물, 익충, 해충, 모두 가리질 않습니다. 이는 자연 파괴이고 자연파괴는 우리 인체파괴를 뜻합니다. 그래서 미생물도 신경을 써서 쓰게 마련인데, 제초제나 농약 오염으로부터 격리되고 내 텃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남한산성이라 남한산성의 미생물을 쓰게 됩니다."

거세미가 고춧대를 잘라버렸다
거세미가 고춧대를 잘라버렸다 ⓒ 신동헌
미생물 활동이 강한 땅은 생명력이 강해진다. 그래서 웬만한 병은 견뎌내고 고추 역병 정도는 문제도 안 된다. 요즘 유기농, 유기농 하지만 사실 유기농산물 믿는 사람 얼마나 될까? 그만큼 속임수 유기농산물이 판을 치고 있다. 화학비료 정도 뿌리기는 관행처럼 돼 버렸다. 정부에서 품질인증한 유기농산물도 사실 소비자들은 꺼림칙해한다.

농약만 안치면 고품질이고 유기농산물로 안다. 상업농의 폐해다. 대량생산에 따른 책임이 없고 소비자 인식도 아직은 뒤지다보니 유기농산물은 정말 힘들다. 하지만 가족농은 다르다. 내가 먹는 것이고 규모가 작다보니까 굳이 텃밭에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비료를 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금잔화는 벌레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긴다
금잔화는 벌레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긴다 ⓒ 신동헌
권 교수는 땀흘려 제초를 한다. 부지런을 떠는 것이다. 그는 남한산성 인근의 갈잎이나 버려진 들깨줄기 등을 걷어와 밭두렁에 깔아 준다.

"정말 좋습니다. 봄이면 온갖 꽃이 마당에 가득해요. 남한산성 다람쥐까지 이곳까지 내려와 분위기를 더해주지요. 이때 갈잎을 베어 밭두렁에 두둑하게 깔아주지요. 잡초는 오케이입니다. 고추밭에 적용해보세요. 아주 좋아요. 절대 풀이 나질 않지요. 풀은 그럭저럭 잡겠는데 땅속에 두더지가 문제지요. 벌레가 땅속에 워낙 많으니까 그 놈들 잡아먹으려고 땅을 들쑤시지요. 간혹 거세미라는 벌레는 고춧대를 똑똑 꺾어버리고요."

권 교수라고 속이 없으랴. 그도 속이 상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자연을 접한 생활이지요. 자연과 함께 나눠 먹는다 생각하면 너무 행복한 농사꾼입니다."

우엉을 파먹는 진딧물
우엉을 파먹는 진딧물 ⓒ 신동헌
그에겐 5평 남짓한 비닐하우스가 있다. 여기서 보통 한 겨울에 쌈채소를 공급받는다. 쌈채소 옆에는 벌레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는 허브작물을 심는다. 금잔화, 검은 깻잎 등이다. 벌레들이 못 먹게 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진딧물. 배추벌레는 손으로도 잡으면 되는데 진딧물이 심해서 쌈으로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권 교수는 진딧물 먹이로 우엉을 심는다. 우엉은 진딧물이 매우 좋아하는 먹을거리. 우엉에는 진딧물이 까맣게 달라붙는다. 진딧물은 우엉을 신나게 파먹는다. 그러면 그 옆에는 개미가 분주히 움직이고 천적 무당벌레가 꼬인다. 무당벌레는 열심히 진딧물을 깨물어 먹고 그 주위에는 사마귀나 거미까지 모여 든다. 마당에 풀어 논 토종닭도 어느새 '꿕꿕'하면서.

"이게 천적 농사지요. 거미 3마리가 3백평에서 해충 2만마리를 잡아먹는다는 일본 통계가 있어요. 이 덕분이지요. 이 덕분에 제 텃밭은 생명의 네트워크가 살아있고 균형이 맞지요."

살찐 유기농 고추가 탐스럽다
살찐 유기농 고추가 탐스럽다 ⓒ 신동헌
실천농부 권 교수 댁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초여름 6월에 처음 방문했었다. 그때 소로길 옆 금계화가 왕성했었다.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모두 져 버렸다. 함께 날던 벌들도 보이질 않는다.

삭아버린 넝쿨에 겨우 매달린 참외가 재미있다. 빗물을 받아 정성껏 기른다고 했는데. 설거지물로 기른 미나리도 볼품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들에게도 최선의 음악을 골라서 텃밭세상과 함께 자연을 나눈다. 자연과 더 친해지려는 그의 욕심. 8월 늦더위에 말리고 있는 살찐 고추가 유난히 빨갛다. 벌써 여름이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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