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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아래 열명의 만화가들이 모여 낸 책, 십시일反」
ⓒ 박형아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획 아래 이른바 '좀 바쁜 만화가' 10명이 모여 <십시일反>이란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은 만화가 10명의, 차별이 없는 세상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색채를 지닌 10명의 만화가들의 생동감 넘치는 그림들로 매우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다. 날카롭게 포착된 하나 하나의 장면들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닫는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인권차별'이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에 쉽게 다가가서 다시 한 번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인권이란 말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말이다. 한 사람의 인권은 어떤 경우에도 유린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고 필자 또한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많은 인권 차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 당연시 여기고 있다. 인권유린이 60-70년대 군부독재시절에 주로 일어났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필요했다.

▲ 박재동 화백의 '삶의 무게'
ⓒ 박형아
인권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갖는 생명·자유 등에 관한 권리이다.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에 의하면 여자도, 외국인 노동자도, 가난한 사람도,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도, 잘생기지 않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단순한 '차이'만으로 차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처럼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만큼 사회 곳곳에는 차별이 뿌리깊게 박혀 있다.

얼마 전 텔레비전 모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인식되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 문제. 최호철 화백은 '코리아 환타지'에서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활을 그려냈다.

필자는 몇 해전 방학 기간에 용돈벌이겸 갔던 초 만드는 공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동남아시안 계통의 노동자들은 공장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해야만 했고, 밥을 먹을 때도 한국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마치 죄인처럼 숨어서 먹었다. 필자는 당시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피상적인 것에 그쳤지만, 마치 죄인처럼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만으로도 그들이 처한 상황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박재동화백의 '머나먼 신호등'
ⓒ 박형아
그런데 모순되는 사실은, 우리가 피부색이 검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을 무시하는 동시에 백인이거나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남준 화백의 '누렁이1'은 이와 비슷한 한국사람의 심리를 풍자하고 있다.

아파트 평수가 40평 이상인 2단지에 사는 아이는 평수가 60평 이상인 1단지에 사는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애완견을 데리고 그 친구 집에 놀러갔다. 그런데 2단지 아이는 1단지 아이의 화려한 생일파티에 기가 죽었고, 1단지 아이는 2단지 아이의 개가 자기의 개에 비해 값이 싼 개라며 무시를 한다.

상처를 받은 2단지 아이는 풀이 죽어 집에 돌아가던 길에 평수가 20평 이상인 3단지에 사는 아이를 만난다. 그런데 2단지 아이는 좀 전에 1단지 아이에게 당했던 일을 잊은 채, 3단지 아이의 개를 '똥개'라고 경멸한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우리의 비굴한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는 백인들, 돈이 많은 사람들 등 이른바 '강한 자'들을 무의식적으로 우리 위에 군림시키고 있는 동시에, 피부색이 검고 돈 없는 '약한 자'들을 무시한다.

홍세화씨는 마지막에 실린 '이상한 동물'이란 글에서 이런 태도를 비판했다.

"실상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사람들에 대한 한국인의 우월감은 백인들에 대한 비굴한 태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실제로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표시하는 사람일수록 비굴할 정도로 백인들을 선망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겐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해 은근한 친근함을 드러내는 척하는 게 고작이지만 백인에게는 받는 것도 없이 간까지 꺼내줄 양 친철을 베푼다. 그러한 점은 미국에게는 마냥 '바치기'를 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반면, 굶주리는 북한에 대해서는 '퍼주기'라고 떠들어대는 것에 부화뇌동하는 모습과 상통한다."

▲ 박재동 화백의 '선택받은 해방'
ⓒ 박형아
이희재 화백은 장애인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사고로 한쪽 다리를 다친 해연은 체육시간에 남들처럼 운동장에서 뛰어보는 것이 소원이다. 장애인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학교시설은 해연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동정하는 눈초리에 상처받는 것보다 더 힘들다.

해연이의 고통처럼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지하철, 학교, 버스 등 사회 곳곳에서 중 장애인들을 배려한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신체적인 장애로 인한 고통보다도 하나의 사회인으로서 인정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절망이 더 크다.

사람들은 잊고 사는 듯 하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어느 누구도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장애로 인한 불편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별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단지 차이 일 뿐이다. 홍세화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다. 이 세상에 자기와 아주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끔찍스럽게 여기지만,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반기지도 않는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고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와같은 인간의 이중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남에 비해 자기가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는 인간의 저급한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이런 속성은 필연적으로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차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차이,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 명문대를 나오고 안 나오고의 차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차이, 신체가 불편하고 불편하지 않음의 차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는 말 그대로 차이 일 뿐이다. 이 땅에 사는 다수자들은 이 땅의 소수자들에게 따뜻한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 밥 한 그릇으로 '인권'에 좀 더 가까워지고, 일상 속에서 지혜롭게 차별과 차이를 가려낼 줄 아는 '인권의 감수성'을 높일 수만 있다면… 감수성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지독한 편견과 굳어버린 습관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는 날이 오기를…." - 2003. 7. <십시일反>기획 편집자 일동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야기
2003. 8. 창간호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월간잡지 <인권>를 발간했다. 인권위 김창국 워원장은 8월 창간호를 펴내며 이렇게 말했다.

"월간 <인권>을 선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에 인권이 눈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권의 소중함을 공감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분들과 관심과 애정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깊게 하고, 인권 상상력을 넓히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창간호에는 인권위가 특집으로 꾸민 '국가인권위가 바꾸는 세상'과 커버스토리로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만화가 조남준씨의 '신용카드' 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내용이 실려 있다.

월간「인권」은 비매품이며, 전화(02-2125-9773)나 이메일(public@humanrights.go.kr)로 신청할 수 있다. / 박형아

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박재동 외 지음, 창비(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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