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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대전시 중구 오류동의 한 재래시장의 한적한 모습
28일 대전시 중구 오류동의 한 재래시장의 한적한 모습 ⓒ 사미정
“얘기하면 장사 좀 잘되게 해줄 껴? 나랏님한테 경기 좀 풀리게 해달라고 얘기 좀 해줄 거냐고?”

오래간만에 가게에 들린 손님으로 알았다가 “할머니 요즘 장사는 잘되세요? 좀 어때요?”라는 질문을 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내뱉은 이옥선(74)씨의 첫 마디.

지난 28일 오후 찾은 대전 중앙시장의 비오는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돌았다.

“20년,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북적북적 거렸어. 서로 어깨가 너무 많이 부딪혀서 다니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올해로 만 49년째 등산용품, 단체복, 작업복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호반산악’을 이끌어온 이아무개씨는 “올해 같은 불경기는 처음”이고 “작년보다 매출액이 1/3 정도 줄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새롭게 여기저기서 좋은 쇼핑센터들 많이 생기지, 또 젊은 사람들이 이런 델 오길 하나… 사람들이 여기에 발 끊은 지 오래여. 와도 사람들 주머니가 봉해졌나 돈을 안 써… 나만 잘사는 나라가 아닌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맨들어야 할텐데… 경기가 이래 갖고 우리 같은 사람들 살 수 있겄어?”

이씨의 한숨과 더불어 나온 마지막 말이다.

옆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하루에 만오천원에서 이만원하는 옷 하나 팔고 가면 다행이지… 가게문 열고 집에서 싸온 점심 먹고 놀다가는 거지 뭐…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도 편하고…”

여성옷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옆집 가게 아주머니도 “9년째 일하면서 이번과 같은 불황은 겪어보질 못했다”며 “지금 상황에선 가게문 닫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 앞집 ‘임대’라고 써 붙여 놓은 비어 있는 가게를 쳐다보자 “저 집도 장사 안 돼서 가게 내놨는데, 가게가 나가야 말이지. 저렇게 가게 놀리고 썩히는 거지 뭐”라고 덧붙였다.

백화점, 작년에 비해 8~10% 정도 매출액 줄어

대전 중구의 한 대형할인매장. 이 매장도 최근 불경기로 인해 8-10%의 매출이 감소했다.
대전 중구의 한 대형할인매장. 이 매장도 최근 불경기로 인해 8-10%의 매출이 감소했다. ⓒ 사미정
불경기의 한파는 백화점에도 들이닥치고 있었다. 28일 오후에 들린 대전광역시 중구의 모백화점. 휴가철이고 평일이었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백화점 안은 매우 한산했다.

“매스컴의 영향이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저기서 불경기다 떠들어대는데, 괜히 불안해지잖아요. 그래서 소비자들이 물건 더 안 사시고, 사신다해도 싼 물건을 찾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 백화점 내 스포츠 매장 한 관계자는 “작년에 비해 매출액이 10% 정도 줄었다”며,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소비가 위축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했다.

또한 백화점 내 스포츠 센터 역시 “작년에 비해 500여명 정도의 회원이 감소했다”고 한 담당직원이 대답했다.

‘왜 회원수가 줄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글쎄요. 아무래도 경기가 좋지 않은데 운동하고 싶으시겠어요? 그것도 여유 있을 때 나오는 말이죠. 그리고 옆에 좀더 싼 가격을 제시하는 스포츠 센터들이 많이 생기고 있거든요”라고 대답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고객님들의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을 기억해 놓았다가 축하엽서나 메시지 등을 보내드리면서 저희 스포츠 센터를 다시 기억하고 찾게 하는 거뿐이죠. 정성어린 서비스가 지금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죠.”

줄어드는 매출과 소비자들에 대응하여 어떤 방안을 모색 중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 백화점 영업전략팀 한 관계자는 “지금 현재 우리나라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좋지 않듯 백화점도 매출액이 줄은 것은 사실”이라며 “IMF의 여파가 지금 닥쳐오는 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한 “소비자들이 한정 판매나 세일가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심을 보이니까 저렴한 가격의 물건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리려고 한다”며 “계속 신장률이 떨어지고 있으니 회사 내에서도 그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백화점을 찾은 한 가정주부를 우연히 만났다. 백화점보다는 대형할인매장을 주로 이용한다는 그녀에게 ‘요즘 불경기를 체감하느냐?’라고 질문을 던져봤다.

“그럼요. 주위에서 보고 듣는 게 요즘 다 그런 얘긴데요. 제 동생 남편도 IMF 때 받은 퇴직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올해 너무 경기가 안 좋다고 항상 죽는 소리를 해요. 또 조카는 대학 졸업했는데 취업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고… 여기 저기서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니까 돈 함부로 쓰기도 무섭고 그럴 형편도 안 되고요. 확실히 백화점보다는 좀더 싼 할인매장을 찾게 되고 예전보다 (돈) 안 쓸려고 노력하죠.”

이 백화점 상반기 매출은 작년에 비해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8~10% 감소한 상태라고 백화점 관계자는 귀띔했다.

음식점, 택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죽는소리

백화점 앞에 서 있는 택시행렬. 택시를 타려는 손님이 없어 대기하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많다고 택시기사들은 하소연을 한다.
백화점 앞에 서 있는 택시행렬. 택시를 타려는 손님이 없어 대기하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많다고 택시기사들은 하소연을 한다. ⓒ 사미정
다음으로 찾은 곳은 대전시 중구 은행동의 일명 ‘삼겹살촌’이라 불리는 삼겹살 음식점들이 쭉 늘어선 거리. 저녁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작년보다 손님들 수가 확실히 줄긴 했어요. 뭐 요즘엔 말할 것도 없죠. 가게도 여름 타나 요즘엔 더 심하네요.”

한 삼겹살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박옥자(49)씨는 “요즘 이웃 가게들도 매상 안 좋다고 다들 죽는소리한다”면서 “불경기라고 여기저기서 말들 나오면서 손님들도 줄었다”고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한 블록 너머 음식점들보다는 형편이 좋죠. 거기는 말도 못해요. 직접적으로 매상에 타격을 받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좀 배웠고 높으신 분들이 할 일들을…“라고 말하며 한탄했다.

저녁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텅 비어 있는 가게는 박씨의 고충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증거였다.

그렇다면 경기의 흐름을 가장 확실하게 탄다는 택시의 형편은 어떨까?

어둠이 깔리고 퇴근시간에 맞춰 중구 문화동 앞에서 한 택시에 올라탔다.

“요즘 힘드시죠?”라는 말을 하자마자 마치 힘든 자신의 생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듯 심정을 토로하는 개인택시 운전기사 이해일(57)씨.

“내가 운전대 잡은 이후로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유. 뭐 일한 보람이 있어야 일할 맛이 나지 원… 큰일이여. 큰일…빨리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지,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해서 말이유.”

12시간 꼬박 일하고 이씨가 거둬들이는 수입은 하루 10만원도 채 안 되는 상황이다. 이는 작년과 비교해 4-5만원 정도 줄어든 액수라고 한다.

“앞길이 캄캄하기만 할 따름”이라고 말하는 이씨에게 “수고하세요”라고 말하고 내리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국제·국내적 경제여건 악화로 경기 더욱 침체

한남대학교 경제학과 김의섭 교수는 요즘 최악의 불경기 현상과 관련한 이유를 크게 국제와 국내 경제적 여건을 들어 설명했다.

“해외시장 수출과 관련해서 대기업 뿐 아니라 많은 국내 중소기업들이 난항을 겪고 있다. 금년에 이라크 전쟁을 통한 정치적인 불안정적 요소가 국내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크고, 우리나라는 특히 중국과의 경제적인 교역이 많은 상탠데 SARS가 발생하면서 받은 국내기업들의 타격도 무시 못한다”며 “또한 한반도의 긴장고조도 소비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조성해서 소비를 위축시키는데 한 몫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참여정부의 정책변화도 경제적 문제 해결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지금 현 경제 정책이 분배를 위한 복지정책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이는 성장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장사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아예 말하기조차 싫다는 듯 인상 찌푸리며 힘들어하는 우리의 이웃들은 기대와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지친 얼굴들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얼어붙은 경기와 함께 굳어 가는 지금을 사는 우리내의 표정이 아닌가 싶다.

또한 한결같이 고통을 호소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매스컴을 통해 전해듣는 경기불황의 피해보다 훨씬 심각했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바라는 국민들의 신뢰도 바닥이 나려고 한다.

극심한 불경기 속 봉해진 소비자의 주머니를 열고 안전한 경제의 틀을 마련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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