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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후, '참여적 관찰자' 신분으로 서구 외 다른 문화에 뛰어들었던 초기 인류학자들에게 "진화론은 만능열쇠"였다. 앤드류 랑, 제임스 프레이저, 허버트 스펜서,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등과 같은 쟁쟁한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종교의 기원을 차례차례 파헤치리라 다짐했다. 기실 인식론적 도태에 처하지 않으려 자발적 의지와 함께 새로운 지식 탐구 방법의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 <영원회귀의 신화>(이학사, 2003)
ⓒ 이학사
이들은 다윈이즘(Darwinism)의 전폭적 세례를 받으며, 설정한 탐구 주제들의 결과물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 결과 이들은 애니미즘(animism), 프리애니미즘(pre-animism), 토템이즘(totemism)과 같은 여러 이론의 '성과'를 적잖게 올렸을 뿐더러, 이 이론들은 점점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들은 적잖이 "서구우월적" 시각을 드러냈다. 다윈이즘의 진화론을 이용해 원시인들을 조사하면서 기본 가설로 "단계진화이론"을 내세웠는데, 이러한 가설은 필연적으로 원시인들에 대한 폄하적 평가가 담겨 있었다.

초기인류학자와 고대인

"원시인"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미개인과 문명인, 야만인과 교양인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전제돼 있었다. 해서 이들은 원시인들의 관습이나 감정, 그리고 의식이 독특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의식이 계몽주의 시대의 문명인인 자신들 모습에 견줘 아주 '야만한' 종족임을 공공연히 얘기했다.

이에 대한 문제점이 예리하게 분석된 오늘날에도 '원시인=미개인'이라는 인식적 습관은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가 마치 동남아시아 외국인들을 비문명인이나 야만인처럼 대하듯이 말이다.

20세기 들어서 발전한 '역사주의'와 이에 따라형성된 역사주의 의식은 이런 도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가치있다고 여겼던 원시인들의 종교적 심성도 역사주의에 의해 처절하게 단죄되었다.

곧 헤겔 이후로 맑스주의에서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인 사건을 구해내려는, 역사적인 사건에 그 자체로서, 그 자체를 위하여 의미를 부여하려는 온갖 노력" 때문에 원시인들이 역사에 부여했던 '성(聖)'의 의미마저 그 효과를 상실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는 오늘 다시 원시인의 종교적 심성을 복권(復權)하며, 더 나아가 '역사적 인간'에서 초월 지향의 원시인과 같은 '전통적 인간'으로 되돌아 갈 것을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엘리아데의 이러한 주장은 이미 고전으로 자리잡은 명저 <성(聖)과 속(俗)>에 잘 나타나 있다. 곧 일상성 속의 균질적(均質的) 장소와 시간, 공간 등을 성의 비균질적인 장소와 시간, 공간으로 질적인 변화를 시키는 성현(聖顯)의 개념을 통해 고대 심성의 회복을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엘리아데는 이러한 고대 심성의 회복을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일환으로 성찰한 것이 아니다. 그에겐 절박한 심정의 동기가 있었다. 그것은 서구 지성사가 강요하는 역사주의에 맞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엘리아데는 "언제나 서구인들의 심성에 자리잡은 역사주의"를 마뜩지 않게 생각하면서 "고대 심성의 가치관"을 연구한 것이다.

사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이 '원시'나 '고대'라는 단어를 쓰면서 이 단어에 가치폄하적인 의미가 담긴 게 아니라고 애써 설명하는 것도 엘리아데와 같은 성찰 덕분이다.

역사주의와 고대인의 '복권'

그렇다면 역사주의가 도대체 뭐길래 엘리아데는 서구의 역사주의에 맞선 걸까. 1955년에 초판된 <영원회귀의 신화(The Myth of the Eternal Return)>(이학사, 2003)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서구의 역사주의 만을 다루진 않았다. 성현을 통한 "원형과 반복"과 "시간의 갱신"이란 주제도 꽤 심혈을 기울였다. 가령 엘리아데는 "원형과 반복"과 "시간의 갱신"이라는 주제를 통해 "구체적·역사적인 시간에 대한 전통 사회의 저항, 달리 말하면 기원의 신화적인 시간, 위대한 시간으로 주기적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전통 사회의 향수"를 치밀하게 분석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 주제보다도 엘리아데의 절박한 동기가 된 역사주의에 마음이 끌렸다. 서구인들이 종종 자신들의 상황을 "붙박이별의 상실"로 빗대어 표현한 '현대인'의 정황에 화두를 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선택적 감상을 한 셈이다. 물론 실제 내용은 "원형과 반복", "시간의 갱신"과 "역사주의"가 연속성을 띠기 때문에 연관성을 고려하며 읽어야 한다. 여하간 엘리아데는 역사주의에 대해 적절한 통찰을 던져 준다.

먼저 엘리아데에 따르면 '현대인'이란, "절대적으로 역사적이고자 하는 인간, 무엇보다도 역사주의, 맑스주의, 그리고 실존주의의 인간"인데 그렇다고 "모든 현대인들이 자신을 그러한 인간과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역사적 인간이 어떻게 "역사의 폭압" 또는 "시간의 폭압"을 감내하고 이겨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엘리아데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역사의 폭압이 무엇인지 대강의 구도를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단지 역사의 도정에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 단지 팽창 일로에 있는 제국의 이웃이라는 그 이유 때문에 고통을 겪거나 죽어가는 수많은 민족들의 그 고통과 죽음은 어떻게 허용되고 정당화될 수 있는가? 예컨대 유럽의 동남부 지역은 아시아인 침략자들의 침입로에 있었고 후에는 오토만 제국의 이웃지역이었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여러 세기 동안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 미르치아 엘리아데(1907-1986)
"그리고 역사의 압력이 어떠한 도피도 허용하지 않는 오늘날, 저 너머에서 그 어떤 초역사적인 징표나 의도도 예감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어떻게 역사의 폭압과 재앙―집단적인 강제 수용과 원폭 투하에 이르기까지―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 폭압과 재앙이 경제, 사회, 정치적인 힘들의 맹목적인 작용일 뿐이라면 나아가서 소수의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자유, 그 소수의 사람들이 세계사의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자유의 결과일 뿐이라면, 인간은 어떻게 그것들을 감내할 수 있을까?"

곧 엘리아데는 현실적 고통에 맞닥뜨리는 수많은 개인, 집단, 그리고 민족들이 그러한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고, 감내하고, 이겨낼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 인간 또는 고대인들의 경우 이를 두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를 역사로부터 방어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우주 창조의 반복과 시간의 주기적인 갱신"을 통해 역사를 주기적으로 폐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인 사건들에 초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가령 조로아스터교인들은 "모든 전쟁은 선과 악 사이의 투쟁"으로, 유대인들은 "모든 사회적 불의는 구세주의 고통과 동일"하다며 이러한 고통에 초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고통을 감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에 대해 스스로 '역사적 인간'이기를 지향하는 '현대인'에겐 해결책이 없다고 주장한다. 엘리아데는 '현대인'들이 믿고 따르는 역사주의 철학이 결코 역사적 폭압의 고통에서 해방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못 박는다. 역사주의 철학으로는 인간 조건의 어떤 한계 상황도 극복할 수 없는 셈이다. 따라서 '현대인'은 절박한 심정에서 다시 '전통적 인간'으로 전향하는 것이다.

"한계 상황 너머에 무 밖에 없다면"

"그 어떤 역사주의 철학도 인간을 역사의 폭압으로부터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인간 조건의 어떤 한계 상황을 드러내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 상황 너머에 무 밖에 없다면,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줄 수 있겠는가?

현대인의 다른 모든 상황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절망으로 인도한다. 그 절망은 인간의 본래적인 실존성에서 비롯되는 절망이 아니라, 인간이 역사적인 세계 속에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절망이다. 그 세계 속에서 거의 대부분의 인류는 끊임없는 폭압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이에 덧붙여 엘리아데는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발언을 한다.

"이 참에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사주의를 창안하고 주장한 사상가들은 대부분 지속적인 폭압으로부터 역사를 경험한 적이 없는 민족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의 불운에 의해 낙인이 찍힌 민족에 속해 있었더라면, 어쩌면 그들도 다른 관점을 취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의문은 품어볼 수 있다. 즉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일어났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이론을 발트 지방이나 발칸 반도, 또는 피식민지의 사상가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결론적으로 엘리아데는 역사의 폭압이 이미 전방위로 뻗어 나간 오늘날의 상황을 전제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미 벌어진 역사의 폭압을 감내할 것인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한 것이다. 해서 엘리아데는 전통적인 인간 또는 종교적인 인간을 해결책의 전형典刑으로 전면에 내 세웠다. 그런데 나는 '붙박이별'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다시 '붙박이별'을 찾아주려는 엘리아데의 노력에 부분적으로 수긍을 하면서도, 전폭적으로 동조하기는 어려웠다.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역사의 폭압을 그냥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실존적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로, 환상으로든 투사로든 역사의 폭압을 줄이려 노력하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현실은 계속 폭압을 요구하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전통적 인간'의 도식을 따르는 악순환이 꼬리를 물지 않을까. 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역사의 폭압을 끊을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이 뒤따른다.

사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해서 잃어버린 소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기실 고통의 잊음은 잠시일 뿐이고 현실은 계속해서 폭압적 상황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그렇게 본다면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통찰이 더 그럴 듯 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엘리아데의 '전통적 인간'은 인식론적 폭압은 제거할 수 있을 지언정, 존재론적 폭압의 상태는 제거할 수 없는 일시적 '아편'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의 지속적 폭압, 시간의 폭압, 그리고 역사의 폭압은 자기 생각하기 나름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원회귀의 신화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심재중 옮김, 이학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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