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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지어준 사랑의집
주민이 지어준 사랑의집 ⓒ 권윤영
적어도 한금순 할머니에게 신동엽은 필요없었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를 기다리기에는 주민들의 사랑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작은 사랑을 바탕으로 큰 일을 이뤄낸 '사랑의 집'은 명물이 되어가고 있다.

대전 오류동 반짝시장 길목에 걸린 플래카드가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 오른쪽에 위치한 하얗게 페인트가 칠해진 사랑의 집을 발견한 사람들은 누구나 발걸음을 멈추고 이 집의 사연에 눈길을 모은다.

사랑의 집 한 켠에 적힌 문구.

'도심 속의 움막에서 새우잠을 주무시는 팔순의 한금순 할머니를 위해 주위의 따뜻한 분들이 정성을 모아 여기 아름다운 사람의 집을 지어드리면서 포근히 잠들었다가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새겨놓습니다. - 오류동 주민일동'

대문은 물론 현관문도 잠겨 있지 않은 사랑의 집에 들어서자 한금순(79) 할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전에는 오두막살이 쓰러져가는 집에 살았어. 집이 쓰러질 것 같다고 자꾸만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 괜찮다고 그랬는데도 오류동 주민들이 돈을 걷어 집을 지어준 거야. 이건 나라에서 고쳐준 것이 아냐."

할머니의 풍금 연주
할머니의 풍금 연주 ⓒ 권윤영
할머니는 사랑의 집이 지어지기 전까지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는 움막에서 나무를 때면서 지내왔다. 동네 주민들의 도움으로 이제는 방 1칸, 화장실 1칸, 거실이 마련된 9평 정도의 새 보금자리를 갖게 됐다. 중고 냉장고와 농장 등 세간도 주민의 도움으로 들여놓았다.

"1년 땔 나무를 해놨는데 실어갔어. 집을 새로 지어도 나무를 때게 해달라고 했는데 보일러집이래. 아직 보일러를 안 때 봐서 좋은지 잘 모르겠어. 지금 전기가 들어와도 잘 안 켜. 너무 환하니까 익숙하지 않거든. 대부분 촛불을 키고 생활하지."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인 한금순 할머니가 대전에 뿌리를 내린 건 50년 전. 남편과 이남으로 내려온 후 판자집에 세 들어 살며 둥지를 틀었지만, 곧 어떤 사람에게 돈을 떼이고 남편도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28살부터 한 살 된 딸과 둘이 살았어. 막막했지. 그러다가 서낭당 나무가 있고 그 주위에 쓰레기통이 있고 묘지도 있던 지금 이 자리에 움막을 짓고 살았어. 전기도 물도 없이 살기 시작했지. 텔레비전이 뭔지 냉장고가 뭔지도 모르고 촛불 켜면서 여태껏 살았어."

할머니는 "집을 짓는 기간에는 인근 주민의 아파트에서 한 달여간 지냈다"며 "세상이 악해가도 좋은 사람이 많다"고 고마워했다.

"고맙지 뭐. 은인들을 위해 매일매일 기도해. 그 사람들은 복 받으며 살 거야."

혼자 사는 한 할머니는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 지내기에 외로울 틈이 없다. 이제는 너무 늙어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다며 창문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할머니의 낙.

딸이 시집가면서 사준 풍금을 치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척추도 아프고 페달을 밟을 힘도 없어 잘 치지 않는다던 할머니가 "내가 풍금 연주해볼까"하면서 풍금을 치시며 찬송가를 부르셨다.

"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에
암흑에 헤매는 한 마리 양을
태양과 같으신 사랑의 빛으로
오소서 오주여 찾아오소서."

주민들의 사랑으로 지어진 새 보금자리에서 할머니가 풍금을 연주하며 부르시는 노래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할머니가 그 추운 데서 겨울을 났다고 생각하니..."
대전 오류동사무소 최명상 동장 일문일답

▲ 대전 오류동사무소 최명상동장
- '사랑의 집'을 짓게 된 동기는?
"올해 1월부터 오류동사무소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근무 스타일이 사무실에 앉아 있기보다는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다. 아직 날씨가 쌀쌀하던 3월에 동네를 돌아보다가 밖에 나와 앉아 있는 한금순 할머니를 만났다. '추우신데 왜 나와 계세요?'라고 물어보니 '안이 추워서 나왔어'라고 하시길래 할머니 집에 들어 가봤더니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전기가 없어서 집은 캄캄하고, 나무를 때서 밥을 짓고 난방을 했으며, 물은 이웃집에서 나오는 것을 받아먹고 계셨다. 또 방은 너무나 추웠다. 그 추운데서 할머니가 겨울을 났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

- 집을 짓는 과정은 어떠했나?
"할머니 예전 집 방구들이 심하게 내려앉았었다. 처음에는 방구들만 새로 놔드릴 생각이었는데 집을 고치러 온 사람들이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구 의원들에게 도움을 청해 집을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 20일 집을 허물고 짓기 시작해 지난 달 27일 입주식을 가졌다."

- 어려운 점은 없었나?
"구청장,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을 비롯해 구청관계자, 동사무소 직원, 건설업체에서도 도움을 줬으며 인근 주민들도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기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으나 할머니께서 고집이 심하셔서, 집 짓는 동안 옆에다 천막을 쳐 달라며 떠나지 않으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집을 지어드리고 싶었다. 나이도 많으시고 몸도 편찮으신데 집도 새로 지었으니 하루빨리 쾌차하셔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 권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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