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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동의 한 어린이집. 하늘과 구름 구름이 창에까지 펼쳐지고 있다.
통인동의 한 어린이집. 하늘과 구름 구름이 창에까지 펼쳐지고 있다. ⓒ 박태신
서양식 건물의 창은 다소 폐쇄적인 면이 있습니다. 들어오고 나감의 개념이 없습니다. 조망과 일조와 환기의 차원에서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격식이 있고 크기도 큽니다. 커튼과 차양과 스탠드 글라스라는 추가적인 부수 장치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외부와의 경계 구별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요.

요즘은 벽화가 많이 상용화되었습니다. 그 벽화가 창에까지 연장되기도 합니다. 작년 늦겨울에 들른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한 어린이집이 그렇습니다. 1, 2층의 벽면과 창 모두가 하나의 그림책 지면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곳이 됩니다. 유치원에 맞는 싱그럽고 화사한 그림은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전선줄의 그림자조차 대보름날 날리는 연의 갬치 먹인 연줄 같습니다. 사기 그릇 빻은 것을 부레풀에 넣어 연줄에 묻혀 연 싸움을 하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한번 더 쳐다보고 흐뭇해 한다면 그 외양은 좋은 역할을 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이집 주인의 신념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외관을 일의 성격에 걸맞게 갖추고 투신하는 것이니까요.

통인동과 그 주변 옥인동, 누상동, 누하동, 체부동은 서민적인 한옥이 많은 동네입니다. 걷다 보면 정이 드는 동네입니다. 이 유치원의 벽화와 창은(비록 그림으로 닫혔지만) 행복을 위해 할 일이 뭔가를 암시해 줍니다.

광양의 한 카페, 아쿠아 센타
광양의 한 카페, 아쿠아 센타 ⓒ 박태신
광양의 한 카페도 그렇습니다. 여름 때면 지우(知友)가 있어 찾아가는 광양은 제 여행의 남쪽 전초기지 같은 곳입니다. 작년 여름 휴가 때 지우 식구들과 찾아간 곳은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예쁜 카페였습니다. 광양시 중동의 광양 대광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인데 이름하여 '아쿠아 센타'라고 문화관의 4, 5층에 있습니다. 언덕 위 교회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 2층의 창도 그림 옷을 입었습니다. 낙원의 세계, 동화의 세계가 그려져 있습니다. 양이 있고, 돌고래가 있습니다. 건물 전면의 창 전체에 굴곡을 주어서 심심함을 줄였습니다. 파도 모양이라고 합니다. 3층의 창은 하얀 속옷을 입었네요.

꼭대기의 창은 이름에 걸맞게 잠수정이나 배의 창을 연상시킵니다. 한 착의 배가 되어 바로 광양 앞 남해 바다로 항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카페는 깨끗할 뿐더러 2층 높이의 천장과 흰색의 모노 톤, 시원스런 DVD, 조망을 확보하고 있는 창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 모임도 여기에서 갖는다고 하는데, 외벽의 상큼함도 내부의 인테리어와 어울립니다. 교회가 이런 노력을 한다는 것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새삼 문화활동 공간으로서 종교 건물의 역할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작은 것에 감동하면서 종교에 친근함을 갖기도 합니다. 광양에 가실 일이 있으면 이 카페를 들러보십시오.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창을 통해 너른 시내를 살펴보십시오.

로뎅 갤러리의 '글래스 파빌리온'. '노벨상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있을 때 들렀다.
로뎅 갤러리의 '글래스 파빌리온'. '노벨상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있을 때 들렀다. ⓒ 박태신
시청 근처에 있는 로댕 갤러리의 '글래스 파빌리온'은 내외부가 유리로 되어 있는 전시관입니다. 작년 '노벨상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릴 때 갔습니다. 직사각형 모양의 불투명한 유리벽이 벽과 천장을 둘러싸고 있어 자연스레 채광이 됩니다. 바탕의 색과 창의 색, 설치물의 색이 은은한 분위기로 조화를 이루어 굴절되어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들입니다. 햇빛이 실내 전체를 지배합니다. 창 하나에 빛이 몰려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들어오는 빛은 이곳에서 전혀 다른 옷을 입습니다.

규모로서 비교할 바는 못되지만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안에 1989년에 설치한 투명 피라미드는 이런 빛의 역할을 극대화한 성공 사례입니다. 창이 없는 극단의 폐쇄적인 건물도 있겠지만 이처럼 창의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는 유리가 벽을 대체하는 건물도 많아지고 있지요. '폐쇄적인 개방성'이라고 할까 서양의 새로운 창 장식은 이럼 드러냄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창 장식은 참 다양합니다. 이 다양한 양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바라보고 싶은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로 나누게 되겠지요. 같은 도시에 있는 건물일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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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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