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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변 병장, 오른쪽이 박 일병.
왼쪽이 변 병장, 오른쪽이 박 일병.
"병사들을 꼭 찾아 이들의 선행을 칭찬해 주십시요"

울산 법원에 근무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울산법원으로 가던 이종국(46·울산시 남구 신정동)씨는 장맛비속에서 병사들의 아름다운 선행을 목격하고 이들의 선행을 꼭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수소문끝에 육군 53사단 정훈공보무에 어렵사리 전화를 했다.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7월 11일 12시 10분경 울산시 남구 옥동 울산법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박은웅(79·울산시 남구 옥동) 할아버지는 중간에 신호가 바뀌어 걸음을 재촉하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은 자기 갈길에 바빠 모두 지나쳤고 할아버지는 비를 맞은 채 일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육군 53사단 울산연대 남구대대 변정호(22)병장과 박조준(21)일병이 이 순간을 목격하고 급히 달려가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후 할아버지를 살펴보았다.

오른쪽 상반신과 하체가 불편한 할아버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지면서 턱과 오른쪽 무릎, 어깨가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쳐 피투성이가 되었고 순간 정신을 잃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

변 병장과 박 일병은 손수건과 휴지로 우선 얼굴과 팔다리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할아버지를 안정시킨 후 112로 신고, 출동한 울산경찰서 옥동파출소 순찰차에 인계한 후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뒤로 한 채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병사들의 이같은 선행은 마침 이곳을 지나다 병사들과 같이 할아버지를 돌보던 이씨가 수소문 끝에 부대로 이들을 꼭 칭찬해 달라고 연락을 해 와 묻힐뻔 했던 두 병사의 미담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씨는 "각박한 세상에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을 봐 1주일 동안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 병사들의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을 보니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것을 보고 집에 계신 부모님에게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것을 두 병사들에게 배웠기 때문에 고마운 병사들이다. 두 병사들을 찾아 꼭 칭찬해 달라"고 말했다.

또 이씨는 "흐르는 피를 보고 본인은 어쩔 줄 몰랐는데 두 병사는 마치 자신의 부모님을 돌보듯 옷에 피를 묻혀가며 돌보는 모습이 혼자만 알고있기에는 너무나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박일병은 우의를 입지않아 군복의 명찰을 보고 알았는데 다른 병사는 우의를 입고 있어서 이름을 몰라 가르쳐 달라고 하니 아무말이 없었다"며 병사들 창찬에 말을 계속 이었다.

몇 차례의 확인끝에 신분과 소속이 확인된 두 병사는 부대 업무차 외출을 나왔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군인이라면 누구나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비가 너무나 쏟아지고 몸이 불편한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두 병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울산경찰서 양준원 순경에 따르면 평소에 거동이 불편해 늘 할머니와 다니던 할아버지가 오늘은 며칠전 산 허리띠가 맞지 않아 바꾸러 왔다가 큰 변을 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양 순경은 "비를 계속 맞아가며 순찰차에 마지막으로 타는 것을 확인한 두 병사들은 소속과 이름을 알려달라는 말에도 아무 말 없이 갔다"고 말했다.

한편 부인 정영순(70) 할머니는 병사들의 "손자같은 병사들에게 무어라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4년 전부터 파킨슨씨병을 앓아온 할아버지가 혼자는 외출을 잘 하지 않는데 오늘은 내가 없는 사이에 나갔는에 병사들의 친절한 보살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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