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누르하치 석상
ⓒ 박도
1999년 8월 10일 화.

4시에 잠이 깼다. 답사기간 내내 매일 잠에서 깨면 먼저 날씨부터 살폈다. 커튼을 열어 제치자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고 질척질척 비가 내렸다.

답사기간 중, 8월 4일 하얼빈에 갔던 날 외에는 날씨가 쾌청해서 애초에 계획했던 여정을 다 소화할 수 있었다. 비가 오면 아무래도 언짢다.

오늘 일정은 선양(심양)으로 가는 먼 여정이다.‘내가 가나 차가 가지 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동안 여러 날 참아준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다.

6시에 출발 약속이 됐지만, 바깥 풍물을 살피고자 카메라를 메고 미리 로비로 나갔다. 그 참에는 잠시 비가 멈추었다. 빈관 옆 공원 광장에서 만족 고유의 음악이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 태극권 삼매에 빠진 만족들
ⓒ 박도
넓은 광장에는 주로 장년 노년층의 남녀들이 40여명 체조대형으로 벌이고 만족 고유 음악에 맞춰 태극권을 하고 있었다. 표정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진지했다. 공원 한가운데는 말을 타고 칼을 찬 청(淸)나라 태조 누르하치 석상이 용맹스럽게 서 있었다.

1616년 누르하치는 이곳 신빈에서 여진의 대부분 영토를 통일하고 왕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 칭했다.

그의 아들 홍타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조선에 출병을 하여 정묘·병자호란을 일으킨, 우리나라에 국치(國恥)의 비극을 준 청 태종이다.

그는 명(明) 나라까지 멸망시키고, 마침내 대청제국을 창업한 인물이다. 명 나라가 망한 이유 중의 하나가 임진왜란 때 조선 원군이었다니, 한·중·일 삼국에서 가운데 끼인 우리나라는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로 이래저래 중간에서 당하기 만했던 불행한 역사로 얼룩졌다.

6시 10분 선양으로 가기 위해 신빈을 출발했다. 잔뜩 흐린 날씨지만 시간에 따라, 지역에 따라 드문드문 구름 사이로 햇빛을 보여준다.

뿌연 안개구름 사이로 싱그러운 산의 우거진 녹음을 보는 경치는 한 폭의 선경이었다. 옅은 안개구름과 싱그러운 초록의 산하가 숨바꼭질을 하는 듯했다. 그 안개 속을 헤치고 달렸다. 동행한 이항증 선생이 선경에 도취되어 한시 한 수를 읊조렸다.

▲ 청하로 가는 길 : 선계인지 불계인지 인간이 아니로다
ⓒ 박도
진인(眞人,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으려다 봉래도로 잘못 들어갔네
향기로운 바람 변함없어 송홧가루 내음이 진동하네
영지를 캐러 어디로 갔기에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흰 구름이 땅에 가득한 데도 비를 들고 쓰는 이도 없네

尋眞誤入蓬萊島 / 香風不動松花老
採芝何處未歸來 / 白雲滿地無人掃
―魏野 〈尋隱者不遇〉

한 시간 남짓 달리자 청원(淸原)이었다. 산과 들판은 지명 그대로 아름다웠지만, 청원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냇물은 오염으로 먹빛이었다.

그 먹빛 냇물 위에는 온통 하얀 거품이 뒤덮였다. 시멘트 공장 굴뚝에서는 노란 연기를 마구 내뿜었다. 청원 저자 거리에는 차들이 뒤엉켜 잠시 멈췄다. 온 장터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이대로 간다면 청원이 아닌 탁원(濁原)으로 지명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인간은 자신들의 편함을 위해 얼마니 많은 자연을 오염시키고 파괴시키는가? 그런데도 중국대륙 전역에 지천으로 나붙은 구호가 온통 ‘文明’(문명)이다.

▲ 선양으로 가는 길 : 온통 옥수수밭이었다
ⓒ 박도
문명이란 글자가 들어가지 않은 말이 없을 정도였다. “文明服務(문명복무) 文明施工(문명시공) 文明市民(문명시민) 文明公約(문명공약) 文明在機場(문명재기장, 문명화된 비행장)….”

문명이 지구오염, 환경 파괴 주범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문명만이 잘 사는 길로 알고 있나 보다.

하긴 지난 세기에 문명이 뒤져 거대한 공룡같은 중국이 이리떼 열강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만신창이가 되지 않았던가?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란 속담처럼, 제 나라는 제쳐두고 남의 나라만 탓한다면 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도 정도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 환경 오염이나 파괴 면에서는 피장파장이니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