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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 조치에 항의하며 교무실에서 밤샘 교재연구에 들어간 황인범 분회장
파면 조치에 항의하며 교무실에서 밤샘 교재연구에 들어간 황인범 분회장 ⓒ 박정훈
"전두환 독재에 맞서 총칼을 들었던 광주 시민들도 모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은 세상입니다. 20억원의 학원 비리를 척결하고 민주적인 학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학사일정에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다면 앞으로 누가 사립학교의 부패에 맞서 양심을 지키려 하겠습니까?"

2001년 부패재단에 맞서 투쟁하였던 인권학원(신정여상, 신정여중, 한광고, 구로여정보산업고, 오류고) 전교조 연합분회장 황인범 교사의 눈은 며칠째 불면의 밤을 보낸 듯 충혈되어 있었다.

2002년 2월에 19명의 교사가 파면 해임된 후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서 무효 판정을 받고 복귀했던 인권학원 전교조 교사 11명에게 징계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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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학교 당국은 공식적으로 징계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지만 한광고 행정실장, 신정여중 교장 등 학교 관계자를 통하여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분회장 3명에게는 파면, 그 외 조합원 7명은 감봉 3개월, 1명은 견책 처분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교사들의 징계 소식에 황급히 소집된 전교조 조합원들의 총회가 열리는 6월 23일 오후 5시 신정여상 3학년 10반 교실, 60여분의 선생님들이 입을 굳게 다물고 앉아있다.

인권학원 교사들이 2002년 4월 반부패국민연대에서 받은 제2회 반부패상
인권학원 교사들이 2002년 4월 반부패국민연대에서 받은 제2회 반부패상 ⓒ 박정훈
학교 정문에 걸린 "부당징계 철회하고 어용이사 물러가라"는 현수막은 비에 젖어있고, 평상시 야구부가 연습하던 운동장은 텅 비어 인권학원의 슬픈 현실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우리는 2002년 4월 29일 (사)반부패국민연대와 (주)대한매일신보사가 주최하고 부패방지위원회와 법무부가 후원하는 제2회 반부패상을 받았습니다. 상장에는 신분상의 불이익 등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참교육 실현과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극복을 위해 노력한 공로가 남달라서 상을 준다고 써있는데, 서울시교육청이 파견한 관선이사진은 이를 유죄로 몰아 파면조치를 취하다니 정말 상장을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입니다."

신정여상 윤동희 교사는 울분을 토로한다.

파면 등 중징계가 알려지자 인권학원 교사들은 정문에 현수막을 걸었다
파면 등 중징계가 알려지자 인권학원 교사들은 정문에 현수막을 걸었다 ⓒ 박정훈
도대체 이 학교에 어떤 비리가 있었던 것일까?

전 이사장 진인권씨는 1981년도에 학교 공금횡령으로, 96년도에는 서울시교육감 선거시 뇌물수수로 형사처벌을 받은 바 있다. 2001년도 교육청 특별감사에서는 등록금 1억8천만원 횡령, 특기적성 교육비 2억 4천만원 횡령, 육성회비 8천만원 부당 지출, 수학여행, 수련활동, 졸업 여행비 횡령 등 다양한 비리가 드러난 액수만 해도 19억 8천만원이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진인권씨는 표면적으로 학교 운영에서 손을 떼고 학교에는 관선이사가 파견되었으며, 학교는 일시 평온해진 듯 했다.

"아니 서울시교육청에서 파견한 관선 이사장이 안티 전교조단체인 교육공동체시민연합 회원으로 참여하고, 발족식에 참석하니 학교가 평온해지겠습니까? 2002년 6월 3일 유인종 교육감이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보낸 의견서대로 관선이사진에게 파면, 해임을 배제해야 하며, 징계위원회는 비전교조 교사만으로 징계위원회를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요구했다면, 파면 처분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에 파면된 것으로 알려진 한광고등학교 유재환 교사는 분회총회에서 울분을 쏟아내었다.

과연 관선이사진을 파견한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파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서울시교육청 교육지원국 구아무개 행정과장과 통화를 했다.

"이번 인권학원 징계는 2001년 당시 교육청의 감사 지시를 현재 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사들만 피해자가 아닙니다. 학교를 설립한 진인권 전 이사장도 학교 운영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부패사학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하여 노력한 교사들에 대한 가치판단은 배제되고 2001년도에 행정 지시가 있었다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과연 인권학원 교사들은 파면을 극복할 길이 없을까? 최근 전교조 교사들의 파면 해임으로 몸살을 앓았던 경북 청도 이서중고는 재단 이사회가 징계를 취소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면서 합의에 이르고 학원은 정상화되었다.

기존의 사립재단도 징계를 철회하면서까지 안정화를 이룬 사례에 비추어볼 때, 수도 서울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이 과연 어떤 용단을 내릴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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