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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落花)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시인 조지훈

▲ 박지원 전 장관은 18일 구속되며 조지훈의 시 '낙화'의 첫 연을 읊었다. 사진은 지난 16일 특검에 소환되는 박 전 장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꽃잎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겠는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난 18일 밤 구속집행이 되는 자리에서 남긴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심정을 조지훈의 시 '낙화(洛花)'의 첫째 연으로 표현했죠. 아마도 '대북송금' 의혹사건 수사로 인해 의미가 훼손된 '햇볕정책'을 꽃으로 비유해서 그렇게 말했을까요?

박 전 장관은 이날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현대 측에 4000억원을 대출해 주도록 직권을 남용한 혐의 이외에도 현대 측에서 150억원 비자금을 받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감됐습니다.

특검팀은 이익치씨 진술에 의해 박씨가 150억원이란 돈을 받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이에 박씨는 "내가 돈을 받았으면 정몽헌한테 받지, 잘 알지도 못하는 이익치한테 받았겠느냐"며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박지원 전 장관이 처음 소환되던 날, 그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지난 16일 그는 특검에 소환되면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의 특사로 참가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특검 수사에 성실하고 당당하게 협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수사가 길어지면서 '밤샘조사'에 동의하고 특검조사에 임했습니다.

그는 밤새워 특검수사를 받으며 몸이 안 좋아졌던 모양입니다. 다음날인 17일 오후 박씨의 변호인인 김주원 변호사는 "박 전 장관이 장이 안 좋아서 약을 가지러 간다"고 서둘러 집에 다녀왔었죠.

다시 6월 18일. 이날은 박지원씨 개인에게 평생 잊지 못할 날이었을 것입니다. 특검수사를 받으면서 꽃잎이 하나둘씩 떨어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던 날일 것이라 보입니다.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박씨는 이익치씨가 현대 측이 자금세탁한 150억원의 비자금을 박씨가 받았다는 진술로 '긴급체포' 됐잖습니까. 그런 그를 특검팀은 위로를 하듯 '당당하게' 조사를 받는 그에게 혜택(?)을 베풀었습니다.

특검팀은 밤 10시 '긴급체포' 조치를 내리고 3일째 이어지는 밤샘조사를 하면서 18일 새벽에 박지원씨가 좋아하는 '폭탄주'를 대접했습니다. 특검 수사관은 새벽 조사를 마치고 야식을 시키면서 박 전 장관과 함께 딱 3잔씩 폭탄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박씨가 워낙 폭탄주를 좋아하다 보니 반주로 대접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종훈 특검보는 "서로 며칠 동안 얼굴을 맞대고 조사하다보니 고생하지 않았겠나"면서 "어차피 수사는 하는 것이고 교감하는 차원에서 마시게 했을 것이고, 야식을 먹으며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말 그대로 '취중진담(醉中眞談)'을 나눴을 것입니다. 특히 박씨는 '긴급체포'와 함께 다음날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이 눈에 보이듯 뻔한 일이라 느꼈을 것이고, 한숨과 한탄이 이어졌겠죠. 결국 이때 마신 술은 특검팀이 배려한 '위로주'였겠죠.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특검 수사에서 어떻게 '폭탄주'를 먹었을까"하고 오해 하실지 몰라 설명을 덧붙이자면 검찰 수사 차원에서 피의자에게 술을 주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날 박 전 장관은 '장(腸)'이 안좋아 변호인을 통해 약을 가져다 복용했음에도 새벽에 오죽했으면 '폭탄주'를 마셨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정말로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소회를 느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장관은 "나 한 몸 스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남북 화해와 협력의 무드만은 깨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밤 그는 '영어(囹圄)의 몸'이 됐습니다.

특검 수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여서 우리는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단 혐의가 불거진 이상 특검팀의 수사를 지켜봐야 합니다. 특검팀은 이 문제를 보다 신중한 자세로 사실 규명해야 합니다.

구속집행이 이뤄지는 밤, 박 전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의 특사로 역할한 것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꽃잎이 진다고 어찌 바람을 탓하겠습니까. 차에 띄워 마시고 살겠습니다"고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이어 밖에 대기하고 있던 특검팀의 승용차에 올라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그의 심정을 어떠했을까요. 그가 인용한 조지훈의 시 '낙화'의 마지막 연의 구절이 대신하지 않았을까요?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6시 30분 기상…아침밥 반도 못먹어
박지원 구속 첫날 표정

18일 밤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을 밤 11시35분경 출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다음날 밤 12시50분쯤 도착했다.

박씨는 구치소 직원들에게 "수고하십니다"라며 간단한 인사를 건넸으며, 사복을 벗은 후 수형자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박씨가 받은 수형번호는 '1617번'. 이후 독방으로 입감됐고 "소내 규율을 잘 지키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바로 잠자리에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인 19일. 박지원씨는 '영어(囹圄)의 몸'으로 첫 아침을 맞았다.

박씨는 오전 6시반경 기상했으며, 30분 뒤 아침식사를 밥과 수제비국, 감자조림, 배추김치 등 다른 수감자들과 동일한 메뉴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박씨는 아침밥을 다 먹지 못하고 반쯤 남겼다고 직원들은 전했다.

한편 구치소 관계자에 따르면 박씨는 '자변'으로 불리는 하늘색 미결수용 수용복을 자비로 구입해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박씨의 접견시간은 하루 한차례씩 10분 또는 15분 동안 가질 수 있다고 한다.
/ 유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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