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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답이 있죠! "많이 가진 자가 먼저 없앨 때, 적게 가진 자를 설득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는 겁니다." 12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강만길 상지대학교 총장(70)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공식수행원(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남북한 지도자의 뜨거운 포옹을 지켜본 게 엊그제 같은데, 너무도 달라진 현재 상황을 보면 착잡한 마음뿐이다.

한국사를 40년 이상 연구해온 그는 78년 시론집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창작과 비평사)에서 '분단시대'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 지식인들 사이에 학술용어로 정착시킨 주인공이다.

강 총장은 12일 오후 강원도 원주 상지대 총장실에서 만난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탈미(脫美)'라는 말을 썼다.

여중생 압사사건 이후 뒤늦게 타오른 촛불시위 신드롬은 "반미(反美)라기보다는 탈미(脫美)이고, 미국이 자국과의 특수관계에서 벗어나려는 한국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한미 갈등의 요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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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 준비 안된 노무현 정부 ' 너무 흔든다"

6·15선언 3주년 특별기획
1 / 김정일 위원장께 공개질의 합니다
3 / 개들이 먼저 남북통일의 씨를 뿌린다 - '남북특사' 진돗개와 풍산개

대북송금 수사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민족문제를 풀어갈 철학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표시했다. 비록 가정이지만, "2000년 당시 여대야소 상황이었다면 국민에게 사실을 공개하고 국회 동의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준비기간도 제대로 안 주면서 언론이 너무 흔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국민 지지가) 회복될 것"이라고 예의 낙관론을 펴기도 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북핵과 북한인권, 한미관계와 통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강 총장은 인터뷰 중간중간 "그렇죠?"라는 말을 반복하며 기자의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다음은 12일 오후 상지대 총장실에서 있었던 인터뷰 전문이다.

-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어느덧 3주년을 맞습니다. 당시 민화협 상임의장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오셨는데, 특별한 감회가 있는지?

"상당히 좀 착잡하죠. 6.15 공동선언 이후 이뤄졌던 남북공조가 얼마만큼 진전될지 아니면 후퇴할지 몰라 착잡한 심정입니다."

- 6.15 선언 이후의 분위기를 떠올릴만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는지?

"평양에 다녀와서 국내에서도 강연을 많이 했어요. 이후 평양에서 통일을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은 없지만, 조총련 초청을 받아서 일본에서도 여러 번 강연을 했어요. 강연 내용은 여기에서나 조총련에서나 똑같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통일의 전망이 우리나 그들이나 호응은 똑같지 않았나? 6.15 이후 조성된 분위기가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에 합일점이 생겼다는 의미에서 큰 진전이었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아무래도 대북송금 문제가 불거진 지금 분위기가 그때와는 크게 달라졌는데, 여전히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가치는 유효한 것인지?

"대북송금 문제가 특검까지 왔는데... 그때의 송금은 북에 대한 경제원조, 어떤 의미에서는 남북화해기금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국회 등 국가기관의 승인 없이 송금된 것을 문제삼을 수도 있겠죠.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현대 쪽에서는 사업기금으로 준 거라고 하잖아요? 설령 그렇지 않고 정부가 송금을 했다고 하더라도 사법적인 차원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일종의 통치권 행위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월 14일 대북송금 특별검사법안을 수용하기 전에 3월 6일 강 총장을 비롯한 원로들과 오찬을 했는데, 그 당시에도 대통령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물론이죠. 그 당시에는 '김영삼 정부시절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됐다가 조문 문제로 완전히 냉각되어 버렸다, 노무현 정부도 특검문제 때문에 남북 관계가 상당히 냉각될 우려가 있으니 대북송금 특검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얘기했어요. 이렇게 분위기가 안 좋은데도 지금 남북간의 철도 연결이 추진되고 있어요. 이것은 북이 대국적으로 남북문제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ADTOP@
- 한편으로, 특검을 수용한 것이 투명한 남북관계의 정립, 대북 비밀주의의 전례를 청산하겠다는 정부의 새로운 남북정책 기조와도 연결되는 게 아닙니까?

강만길 총장 약력

- 1933년 경남 마산 태생. 마산중-마산고 졸.
- 59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 61년 석사논문 '조선왕조 전기의 공장 연구' 발표.
- 66년부터 동대학 교수로 재직.
- 80년 7월 민주화운동 관련 해직. (84년 복직)
- 99년 2월 정년퇴직.
- 2000년 6월 민화협 상임의장 자격으로 방북.
- 2001년 3월 한완상(현 한성대 총장) 후임으로 상지대 총장에 선임.
- 주요저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1978), 한국근대사(1984), 한국현대사(1984),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1991), 역사를 위하여(1996), 20세기 우리역사(1999), 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1999).
"남북문제와 민족문제를 푸는 과정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지난 50년간 심지어 군사정권조차도 통치권 행위라는 명분으로 국민들 아무도 모르게 뒷구멍으로 밀사를 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남북 문제를 모든 국민이 알도록 풀어나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제가 실무를 해보지 않아 모르지만, 우리가 정상적인 외교문제를 다룰 때에도 공개할 수 있는 부분, 없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외교문서도 30년이 지나야 공개하는 게 관례이고, 기간 지나도 공개할 수 없는 게 있어요.

더구나 남북문제는 정상적인 국가사이의 외교와도 또 다르지 않습니까? 대북송금 중 '배달사고'가 나서 중간에 누가 착복했다면 몰라도 야당이 정부여당 공격용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 야당이 집권했다고 해서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 13일이 여중생 사망사건 1주기인데, 정부가 11일 총리 특별담화까지 낼 정도로 긴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자꾸 거론하면 아예 미군을 철수시킬 기세입니다. 동북아의 안보를 흔들지 않으면서 한미관계를 재설정할 해법은 없을까요?

"우리가 평화통일 하려면 남북공조가 짙어져 가야 합니다. 그런데, 남북공조와 한미공조사이에는 배치되는 부분, 늘 거리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한미공조를 깨뜨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남북공조와 한미공조사이의 균형감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죠.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남쪽에서의 촛불행진을 흔히 '반미(反美)'현상으로 보는데, 저는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탈미(脫美)' 현상이라고 봅니다. 미국은 남쪽의 탈미 현상에 불안해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탈미를 하지 않으면 통일하기 어렵습니다.

미국과의 특수관계를 안고 통일하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건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의 문제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그대로 둘 리 없습니다. 그런 통일은 북한까지도 미국의 세력권 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6.25 때의 북진통일과 같아요. 그것을 막으려고 중국이 얼마나 희생을 했는데, 지금이라고 가능하겠어요? 6.25 이전에 청일전쟁도 있었고, 러일전쟁도 있었잖아요?

미·일·중·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간지대에 있어야 통일이 됩니다. 그러려면 지금 미국과의 특수관계를 탈피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 역사의 길이죠."

- 강 총장은 김대중 정부시절 '햇볕정책' 대신 '적극적 화해정책'이라는 용어를 쓰셨습니다.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 "북한과 미국이 싸우는 일 있으면 말리겠다"고 했는데,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 시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죠. 미국과 북한을 등거리에 두고 통일할 수는 없잖아요? 허허, 너무도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남북화해에서 더 나아가 남북공조정책이 되야죠."

- 대북 송금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북핵문제의 해결입니다. 특별한 해법은 없을지?

"분명한 답이 있죠. 물론, 많건 적건 핵무기는 원칙적으로 없어야 하지만, 누구는 가지고 누구는 못 가진다. 가진 자는 강자가 되고 못 가진 자는 약자가 되는 이런 원리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핵이라는 대량살상무기는 많이 가진 자부터 없애 들어가야 합니다.

많이 가진 자가 먼저 없앨 때, 적게 가진 자를 설득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는 겁니다. 지금 온 세상을 멸망시킬 만큼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한두 개 가진 나라를 공격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 원칙이 아주 중요한 건데, 우리는 그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원칙은 그렇고,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북한이 만약 핵을 가지고 있다면 체제를 지키기 위한 자위책인데, 핵무기를 못 가지게 하려면 체제를 보장시켜줘야 합니다. 북한 체제를 인정해주고, 핵무장을 하지 않게 하는 게 순리죠.

미국은 입으로만 공격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조약상의 보장을 요구하는 거지요. 대통령의 말과 문서로 남기는 것은 다르죠. 북핵 문제를 풀어가려면 미국이 더 전향적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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