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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은 가요계에서 심히 독특한 존재다. 10대부터 20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팬 층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진지한(혹은 스스로 그렇게 믿는) 음악 감상자까지도 팬으로 아우른다.

그의 모습이 '인기가요 20'에 나타나는 것은 '수요 예술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이적의 기사가 청소년 연예지에 등장하는 것 역시 대중음악 전문지에 나오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다.

한마디로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드는,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뮤지션이라고 하면 간단할 것이다(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부잣집 도련님에 엘리트로 자라났음에도 '정치적으로는 공정'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이란 수식어가 논란을 빚게 되었다. 굳이 콕 집어내자면 '카니발'과 패닉의 3집 음반을 전후한 시기부터일 것이다. 듣는 이를 쿡쿡 찌르는 시니컬함과 비판적 성찰은 사랑 노래 내지는 애어른의 인생에 대한 관조로 대체되었고, 파격성에 가려졌던 음악적 잡식의 폐해도 전면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호의적이던 평단의 상당수가 비판자로 돌아섰고, 이 과정에서 두어 명의 '소장' 평론가는 이적 팬들의 십자포화를 맞기도 했다. 그 뒤 '긱스'에서의 활동 역시 '전폭적 지지'보다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시기였고, 이적이 군입대함에 따라 그나마 있던 논란도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제 2집이 나왔으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또 다시 '한판'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엔 이적 팬들의 열성도, 평단의 관심사도 조금씩은 식어진 듯 싶지만….

이적의 음악에 대해 비판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째서 본인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하지 않고 그때 그때 시류 영합적으로 이것 저것 다 손대는가 하는 점.

실제로 이적의 첫 독집 [Dead End](1999)에는 트립합부터 하드록, 비틀즈풍 팝, 엘튼 존(Elton John) 스타일의 발라드까지 온갖 스타일이 혼재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적은 본인의 보컬로 불렀다간 피볼 노래까지 소화하는가 하면('적'이 특히 그렇다),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를 할 때는 지나치게 '욕심 없는' 면모를 보였다. ('Rain'은 '달팽이'와 마찬가지로 이적 보컬에 가장 적합한 노래였지만 '작고 꼬물거리는 것에 대한 애정'은 카니발식 사랑타령으로, 키보드 반주의 정갈함은 뻔하디 뻔한 오케스트레이션의 블록버스터식 감동으로 대체되었다. 비록 그것이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갖는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또 하나는 그가 '천재적'인 솜씨로 만든다는 음악들이 좋게 보아야 '고급스런 가요'에 불과하다는 문제 제기다. 실제로 패닉 2집의 '파격' 이후에 그가 택한 카드는 김동률과의 프로젝트인 '카니발'이었고, 이후의 점잖은 패닉 3집과 '펑키한 가요 밴드'였던 긱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래들은 라디오 프로그램과 방송 차트, '윤도현의 러브 레터'와 공연장에 고루 적합한 것들이었다. 이는 타고난 재능을 오랜 시간 낭비한다는 일각의 비판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적의 두 번째 음반 [2적]은 앞서 제기된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단 한 부분도 변화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다. 이는 평론가들을 '벌레'처럼 여기는 이적의 개인적 소신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즉 그간 꾸준히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있어 왔지만 이적은 듣지 않았고, 여지껏 자신이 해오던 그대로 작업에 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결과, 2집은 이적의 팬들이라면 언제나처럼 감동의 도가니에 빠질, 그러나 비판자들에게는 비판의 무용함을 느끼게 하는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늘 그랬듯 기술적 완성도는 흠잡을 데 없지만, 온갖 스타일이 혼재하며 모든 종류의 매체에 고루 잘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스타일의 혼재는 드럼 앤 베이스를 차용한 인트로 '몽상적'부터 모던록과 결합한 발라드 '그땐 알지 못했지', 비틀즈풍의 '장난감 전쟁', 귀기어린 김윤아와의 듀엣곡 '어느 날', 영국식 포크 '서쪽 숲', 펑키한 '그림자'에까지 줄창 계속된다. 이 온갖 스타일 가운데 어설픈 시도는 단 하나도 없다.

그나마 평범한 곡인 '그땐 알지 못했지'조차도 탄탄한 리듬과 소울풀한 코러스, 고조된 감정을 일거에 분출하는 하모니카까지 두루 예사 솜씨가 아님을 보여준다. 다른 뮤지션이었다면 가요 멜로디와 다채로운 스타일의 '물리적 결합'에 그쳤을 법한 노래들도, 한두 가지 악기나 효과를 매개로 해서 무리 없이 엮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적에게 음악적인 비판을 하기가 쉽지 않고, 흔히 '논란'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모든 매체, 모든 무대에 고루 어울리는 점 또한 여전하다. 잔잔한 '서쪽 숲'은 3-40대가 듣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며, 김윤아와의 듀엣은 수요 예술 무대에 적합할 듯하다. '그땐 알지 못했지' 역시 소녀 팬부터 20대 팬까지 즐길 법한 '고급스런 발라드'에 속하며, '착시' 같은 곡은 진중한 감상자들에게도 별무리 없는 텍스트일 것이다. 또한 '장난감 전쟁'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라는 점에서 좌파 언론의 관심을 끌 만하며, 이적의 정치적 공정함을 확인시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적은 모든 장르와 모든 부류의 음악 감상자에게 고루 손을 내민다. 그러나 여전히 본인의 스타일이라 할 만한 요소는 다채로움에 가려 보이지 않으며, 긱스 활동 덕에 보컬이 많이 보강되긴 했으나 '다른 가수가 부르면 좋았을' 곡도 또한 존재한다. 솔로 1집이 패닉-카니발 활동 기간에 쓰고 남은 곡들을 모은 '팬서비스' 형식의 음반이었다면, 2집 역시 공익 기간 동안 짬짬이 만든 노래를 모은 '팬서비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팬서비스'가 아닌 이적 음악을 만나는 것은 또 다시 다음 작업으로 미뤄야 하는 셈이 아니겠는가.

아무래도 이적의 진짜 문제는 평론가 집단을 '철천지 원수'로 여기는데 있는 듯하다. 그러니 아니꼽고 귀따갑더라도, 한번쯤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의 말에도 귀기울이기 바란다. 아무리 그래도 '3년(2년 반인가?)이라는 시간' 뒤인데도 여전히 이적의 작품들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게 어딘가. 그게 다 '재능'이 너무 많은 탓이려니….

사족. 실상 패닉 두 멤버의 굳건한 인기는 이적 팬은 김동률 팬, 김동률 팬은 이승환 팬, 이승환 팬은 유희열 팬… 식으로 얽힌 굳건한 피라미드 조직에 기반한 듯하다. 이는 한편으로는 안심하고 자기 음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하던 거 계속 하는 식의 음악 작업이 될 위험도 있는 셈이다. 이런 류의 팬덤은 뮤지션에 대한 비판을 가로막는 바리게이트이자 일종의 '함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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