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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엽서에다 쓴 시. 어디서 베낀 것인지 모르겠다. 붉고 작은 입을 가진 처녀가 지금 어디가고 없는가?
중학교 1학년 때 엽서에다 쓴 시. 어디서 베낀 것인지 모르겠다. 붉고 작은 입을 가진 처녀가 지금 어디가고 없는가? ⓒ 느릿느릿 박철
요즘 아이들이 조숙해서 그런지 다 커플이 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누굴 좋아해도 ‘좋아한다’고 말도 못하고 저 혼자 끙끙 앓고 공연히 속만 끓이고 말았는데, 요즘 애들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다른 애들에게 그런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짝사랑’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은근하게 누굴 염두에 두고 연모하는 마음으로 공책에 연애편지 비슷한 낙서를 하고 잠을 설치고 나면, 얼굴에 여드름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볼펜으로 쿡쿡 찔러 짜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어려서 키가 작은 편이었습니다. 끼니를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활이 가난한 편이었습니다. 충분한 영양공급을 못 받아서 그런지 키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180cm로 큰 키지만, 어려서는 키가 자라지 않아 그것 때문에 늘 고민이었습니다.

성격은 내성적이었고, 말도 잘 못해, 어쩌다 남 앞에 나서기만 하면 얼굴이 벌개지고 더듬거렸습니다. 애들이 나보고 ‘촌놈’ 이라고 불렀는데, 다 촌놈인 주제에 나보고 왜 ‘촌놈’ 이라고 불렀을까 그게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장영원 선생님이셨습니다. 노처녀 선생님이셨는데 1학년 때 담임이셨고, 4학년 때 또 담임을 맡으셨습니다. 그때 장영원 선생님이 서른 살이 넘으셨는데, 시집을 안가셨습니다. 정말 미인이셨습니다.

어느 겨울날, 우체부 아저씨가 수업시간에 교실로 소포를 갖고 오셨는데, 선생님께서 소포꾸러미를 풀렀더니 예쁜 털 코트가 나왔습니다. 그 걸 입고 거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좋아하시던 선생님 모습이 기억납니다. 분명 남자에게 온 소포였습니다. 아마 크리스마스 선물인 듯했습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싱글벙글 웃으시며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패션쇼를 하는데 솔직히 기분이 무척 나빴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장영원 선생님을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예쁘셔서 남자선생님들께 인기가 많았는데, 얼마 지나서 장영원 선생님께 약혼자가 있고, 곧 결혼을 하게 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내가 매일 어리버리하게 책보를 메고 학교를 들락거렸는데, 어떻게 해서 그런 감정이 시작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사랑이 실망으로 바뀌고, 실망은 증오심으로 변했습니다. 약혼자에게 발길로 채이기를 은근히 바랐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가증스럽게 들렸습니다. 늘 웃으면서 공부를 가르치는데, 그 웃음이 위선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애정과 실망이 짬뽕이 되어서 심사가 복잡해졌습니다. 어떤 연유인지 2학기 때, 장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습니다.

선생님이 전근을 가신 후, 우리 반에 장○○라는 여자애가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키도 크고 예뻤습니다. 공부도 나보다 훨씬 잘했습니다. 노래도 잘했습니다. 얼마나 노래를 잘했던지 선생님이 노래를 시키면, 뜸들이지 않고 교실이 쩌렁쩌렁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중에 언니하고 듀엣으로 가수로 데뷔를 했었는데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내가 열렬한 팬이 되었을 텐데….

그 시절에는 포크댄스가 유행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다 먹고 나서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 포크댄스를 했습니다. 빙빙 원을 그리며 파트너와 춤을 추는데, 장○○이 내 짝이 되면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그런데 장○○이 얼마나 깍쟁이였던지 남자애들과 손잡기를 거부해서 조그만 막대기를 대신 잡게 했습니다. 손대신 막대기를 잡는 데도 찌릿찌릿 전기가 통했습니다.

장○○의 눈길과 부딪히면 ‘나는 틀림없이 너와 결혼할 것이다’고 속으로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말 한마디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어느 남정네의 어엿한 부인이 되어 5십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을 겁니다.

우리 집 넝쿨이와 아딧줄에게 너희들 좋아하는 여학생 있으면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해도 펄쩍 뛰며 ‘없다’ 고만 합니다. 믿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까까머리에 얼굴에는 버짐이 가득하고 키는 조그마한 게 두 여자를 흠모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성(姓)이 다 장씨이군요. 이름하여 ‘짝사랑’ 이었습니다. 사랑한단 말 한마디 못 해보고 싱겁게 끝난 러브스토리였습니다.

가수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노래의 가사처럼- 불발로 끝나고 만 짝사랑이야기는, 나의 묵은 앨범에 고이 간직하고 싶은 또 하나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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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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