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생산한 원유를 쏟아 버리는 낙농인
생산한 원유를 쏟아 버리는 낙농인 ⓒ 신동헌

아까운 우유가 길바닥에 흥건하다.
아까운 우유가 길바닥에 흥건하다. ⓒ 신동헌
이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은 <농민신문> 1면 상단 귀에 실린 ‘원유 2만kg 슈퍼 젖소’ 탄생기사다. 청량제 같은 반가운 기사였다. 하지만 너무 처리가 작아 그 낙농인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축하 인사를 하면서 혹시 슈퍼젖소는 하늘에서 떨어지나 물어 보았다.

“하늘에서 낸것도 아니고 족보도 없습니다. 아기 소 일 때 그냥 시장에서 샀지요. 못생긴 놈이었지요. 오죽하면 못난이라고 불렀을까요. 그런데 이놈이 이렇게 효자 노릇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은 예뻐 죽겠어요.”

예뻐 죽겠다고 좋아하는 슈퍼 젖소의 주인공. 경기도 김포에서 10년째 낙농을 하는 연덕흠씨다. 그는 요즘 연실 싱글벙글이다. ‘못난이’ 이라고 생각했던 젖소가 늘 좋은 우유생산량을 기록하다가 급기야 전국 최고의 소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칭도 ‘못난이’에서 ‘이쁜이’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다. 농협 젖소개량부에 따르면 ‘이쁜이’가 세운 기록은 305일 유량을 기준해서 2만441kg다.

젖소는 보통 생후 14개월이면 임신이 가능해 10달 후(24개월 째) 초산을 하게 되는데, 새끼를 낳으면서 젖을 내게 된다. ‘이쁜이’는 벌써 4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리고 다음주 6월 중순이면 5번째 새끼를 낳게 된다. 그럼 이쁜이가 세운 원유 생산량 2만441kg의 신기록은 어떤 기록일까?

슈퍼젖소'이쁜이'와 함께
슈퍼젖소'이쁜이'와 함께 ⓒ 신동헌
우리나라 젖소 1마리에서 얻는 평균 유량은 7천kg 정도다.‘이쁜이’와 함께 조사에 참여한 젖소 9만 8,969마리의 한 마리당 평균유량 8,622kg보다도 떨어진다. 그러니까 ‘이쁜이’의 성적표, 2만441kg 생산은 일반 젖소에 비교하면 세배나 되는 것이다. '대단한 성적'임이 틀림없음을 확인해준 농협 젖소개량부 이춘지 팀장은 전화 통화를 통해 같은 사료를 먹고 원유 생산이 일반 소에 두배 이상이면 “경영비 절감 효과가 크다”면서 “젖소 한 마리가 두 마리 이상의 역할을 하니까 한 마리를 키우는 관리비용으로 두 배 이상의 돈을 벌어다 준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요즘같이 환경이 우선시 되는 이때 젖소의 배출분뇨를 배 이상 줄일 수 있음은 ‘이쁜이’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유를 길에 쏟아버리는 퍼포먼스 시위만 없었다면, 또는 침체된 낙농분위기만 아니었다면 ‘이쁜이’는 모든 낙농인의 축하를 받았을 것이다. ‘이쁜이’ 목엔 멋진 꽃 화환이 걸리고 연씨와 함께 사진이라도 찍자는 주문이 쇄도했을 텐데 말이다. ‘이쁜이’가 농림부 장관상이라도 받았냐는 농담을 슬쩍 던졌다. 연씨는 한참이나 껄껄 웃더니 “농민이 뭐 그런 걸 아나요”라고 딴청을 피며 아쉬워했다. 다행스럽게 ‘이쁜이’는 매일 3번, 아침, 저녁, 점심에 우유를 짠다. 그리고 아직은 별탈없이 유가공업체로 잘 납품되어 많은 돈을 벌게 해 준다.

늘 깨끗한 청정 목장
늘 깨끗한 청정 목장 ⓒ 신동헌
축산정책에 검정사업이란 게 있다.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분들이 많을 줄 안다. 한마디로 검정사업은 젖소개량사업이 목적이다. 소를 매달 조사해서 경쟁력 있는 젖소를 선발하는 취지다. ‘이쁜이’ 한 마리가 3마리 능력을 갖고 있으니 ‘이쁜이’같은 젖소를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면 우리 낙농가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쁜이’ 같은 놈 하나만 잘 낳아 잘 기르면 열아들 안 부러운 것이다. 그런데 젖소 한 마리를 검정하는데 쓰이는 보조금이 매년 줄어든다고 한다. 지난해 31,100원에서 내년은 18,600원으로 줄어든다고 울상이다. 결국 그것은 우유가 남아돌아 사회적인 문제가 되니까 생산기반부터 뭉개버리는 정책(?)인 듯하다. 숲을 보면 아이디어가 보이지 않을까? 우리나라 한사람이 마시는 우유소비량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진다고 한다. 아직 우유소비 여력이 있는 것이다. 몇년전 미국 대학생들의 점심 먹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빵 한 두 조각을 먹으면서 학생들은 우유(200ml) 4-5개씩 마셔 댔다(각국의 우유소비량을 알아보려고 농림부, 서울우유, 낙농육우협회, 낙농진흥회에 전화 취재를 했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연덕흠 씨가 알려주는 상식 한 토막이 재미있다. 젖 짜는 소 한 마리(착유소라고 한다)는 얼마를 먹고 얼마를 벌어다 줄까? “저의 집의 경우, 소 한 마리가 1만원어치 먹고 1만4천원 정도 벌어 줍니다. 2천원은 제반 경비고요.” 365일로 얼른 곱해보니 1년에 소 한 마리가 5백만원의 돈을 주인에게 벌어다 준다. 젖소의 하루 급식비 1만원. 1만원을 3끼로 나누면 3,300원인데 어린 학생들이 먹는 학교 급식비는 2천원 전후로 알고 있다. 사람이 소만도 못한 것이다. 소 사료비가 1만원인 것은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거의 100%, 마른 풀까지 모두 수입한다.(볏집 등은 자급)

젖소의 사료인 풀도 수입한다.
젖소의 사료인 풀도 수입한다. ⓒ 신동헌
일반 소 한 마리가 5백만원의 수익을 올리면 챔피언 ‘이쁜이’의 실력은 어떨까? 생산된 원유1kg의 납품가는 요즘 670원이다. 계산하면 13,695,470원이다(670원X20,441kg). 1천3백만원이라는 돈은 ‘이쁜이’가 1년에 혼자 올리는 매출액이다. 그래서 ‘이쁜이’같은 놈 20마리만 갖고 있으면 총 매출액은 2억7천만원으로 사육비를 40%를 제해도 순이익은 1억6천만원을 넘는다. 이게 실력이고 경쟁력이다. 젖소는 젖으로 말한다. 젖을 많이 생산하는 젖소가 경쟁력이다.

실제 연덕흠 씨는 젖 짜는 소 23마리를 갖고 있다. 평균 한 마리당 생산유량이 1만4천kg이라고 한다. 이것도 대단한 기록이다. 3년전 이스라엘 낙농가를 취재했을 때 사막에서 10,500kg의 성적이 대단해서 그 비법 등을 방송한 바 있다. 낙농의 주로 불리는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시에서 1년에 한번 열리는 세계낙농축제에서도 주지사가 소개한 소는 1만8천kg 능력의 소였다. 2만kg의 ‘이쁜이’ 성적표는 그리 흔치 않은 것이다.

‘이쁜이’는 이제 연씨가에 귀염둥이 스타 젖소부인으로 굳었다. 인기 상승이다. 1996년 시장에서 연씨와 처음 눈을 맞춘 이후 벌써 5산 째다. 5산이면 왠만한 젖소들은 도태되는데 ‘이쁜이’는 전성시대이다. “저는17살 때 처음 남의 집 목부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작할 때부터 너무 젖소를 좋아하고 낙농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이쁜이’같은 복덩이도 만날 수 있었는가 봐요.” 그는 “소를 기르는 게 천직인 것 같다”며 좀처럼 낙농계에서 듣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신이 난다는 것이다. 또 “하고 싶은 일을 해 소에게 구석구석 신경을 써 줄 수 있어 좋다. 그래서 소들이 잘되는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싱글벙글 연덕흥 낙농인
싱글벙글 연덕흥 낙농인 ⓒ 신동헌
연씨를 만나고 나오면서 ‘이쁜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이쁜이’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20여 마리 알록달록한 젖소 가운데서 그는 너무 쉽게 ‘이쁜이’를 찾아냈다. 하도 신기해서 ‘이쁜이’ 어디에 무슨 표시라도 했냐고 물었다. 그의 답변이 너무 재미있었다. “사랑하고 미치면 눈감고도 찾지요.”

지난번 길바닥에 우유 쏟아버리기 시위는 결국 하루에 남는 우유 410t을 줄이는 감산정책을 내놓았다가 일어났다. 우유 410t이면 1kg짜리 41만개다. 10조에 가까운 예산을 쓰고 마사회에서 나오는 축산발전기금까지 척척 쓰는 농림부가 우유 1리터짜리 41만개 소비를 못 시킨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다. 딴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한눈을 파는 것은 아닐까? ‘헛발질’ 정책은 애정이 없을 때 만들어진다.

어제 밤늦게 아내와 아들에 이끌려 가까운 할인점에 갔다. 우유코너에 발길이 갔다. 우유값은 1리터에 9백원부터 2천원대까지 다양했다. 제일 싼 920원 짜리우유 2개를 샀다. 사면서 제2, 제3, 제4, 제5의 ‘이쁜이’를 계속해 찾고 싶었다.

가장 싼 1000ml 우유
가장 싼 1000ml 우유 ⓒ 신동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