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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자 신문 보도에 따르면, '올해 1월-4월 소주 출고량은 모두 3천428만2000 상자(360㎖ 30병)로 작년 동기의 3천262만5000 상자에 비해 5.1% 증가했다.'고 한다. '크게 위축됐던 소주 판매가 올들어 되살아나고 있다.'면서, '경기 침체와 소비 심리 위축으로 값싼 소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과연 그 많은 소주를 누가 다 마셨을까?

외환 위기 때, 아버지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양복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산으로 출근(?)하는 아버지들도 있었다.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지하철 지하도에서 옹기종기 새우잠을 자는 아버지들도 많았었다. 소주를 물처럼 마시던 아버지들도 있었다. 밥 한 끼를 얻어 먹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섰던 아버지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아버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의 아버지는 조직 인간(The Organization Man)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 버리고 살았다. 조직에 대한 수직 충성을 지상의 최고 가치로 여겼다. 조직은 아버지의 울타리였고, 사회의 윤리였다. 아버지는 조직을 위해 얼마든지 산화할 수 있는 산업전사였다. 그 대가로 아버지는 평생 직장의 자리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아이엠에프 위기는 극복되었지만, 조직은 아버지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본디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었다. 기존의 규칙들이 끝없이 대체되는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들이 깨달은 것은 직장인의 죽음이었다. 성과 없는 부지런함은 무능이었다. 그것은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세상이 변했다. 이제 아버지들은 더 이상 복종의 시대를 지탱해 온 평생직장을 믿지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할 뿐이다. 자기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다. 인류 역사상 자기 자신을 위한 희망이 열려 있었던 때는 별로 없었다. 노예는 평생 일하고 주인을 섬겼지만, 거친 음식과 험한 잠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한 때, 세상이 시들했던 것은 세상이 시들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변화의 바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탓이었다. 시대의 변화는 고사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무지했던 까닭이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관심과 열정까지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픔을 겪고서야 세상은 늘 눈부시게 빛나고 있음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변화는 일상적이고 위기는 언제나 가능하다.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자신을 고용해야 하는 위기의 시대일수록 기회는 넓다. 그래서 아버지들에게 진정한 자아실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화두는 자기경영(Self-Management)이다. 혁명의 후예답게, 무지와 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산업전사답게 자기경영에 몰입하고 있다. 아버지들의 자기경영은 자기혁명이다. 그것은 아버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머물 때 가장 아름답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 당당한 아버지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아버지들도 삶의 고단함을 말하고 싶다. 가족의 초롱한 눈망울을 보노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땅의 아버지로 태어난 것을. 삶이 버겁다고 말해서도 안 되고, 가장의 어깨가 무겁다고 힘에 겨운 표정을 지어서도 안 된다고 스스로 되뇌어 온 것을. 그나마 이 정도라도 피땀 흘려 가며 가꾸어 온 삶의 터전이기에 가족의 미래가 있음을 스스로 위로할 뿐이다. 비록 변절과 타락의 세대라는 놀림을 받더라도, 아버지의 체통을 살려야 함을 너무나 잘 안다.

아들은 맥주를 마시고 아버지는 소주를 마신다고 한다. 소주가 대중적인 술이라는 것은 아버지들의 술이란 뜻이다. 소주가 많이 팔렸다는 것은 아버지들이 그만큼 소주를 많이 즐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땅의 아버지들이 소주를 즐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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