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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시간은 자신만을 위해 써라. 그대 또한 잘 하는 것이 있다. 마음을 열고 욕망이 흐르게 하라. 욕망과 지능을 연결하라. 선택한 욕망에 인생을 걸어라."

욕망!
어쩐지 순수와는 거리가 먼 듯한 느낌이 든다. 비도덕적인 냄새마저도 풍긴다. 남에게 당당하게 밝히기 어려운, 은밀한 내면의 응어리로 존재하는 욕망을 일상의 햇빛 속으로 끌어낸다. 욕망의 감춰진 진실, 그것은 아름다운 삶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죽음은 욕망의 제로 상태이다. 열등감, 수치심,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욕망의 마이너스 상태이다. 건강한 사람이라야 건강한 욕망을 갖는다. 살아 움직이는 한, 욕망은 끝없이 솟아 오른다. 욕망이 용기를 만나면 물고기가 물을 만나는 격이다. 욕망은 모든 가능성의 출발이다. 삶이 희망이라는 것은 욕망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무한 경쟁의 논리, 그것은 자본주의의 생명이요,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자본주의의 토대는 이기적 욕망이다. 태양이 모든 행성의 중심을 이루듯이 사람들은 세상살이의 중심 축을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삼는다. 태양이 행성계의 중심인 것은 사실이요, 진실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 또한 사실이요, 진실이다. 욕망은 그렇게 삶의 중심에서 아름다운 사실과 진실로 존재한다.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힘의 근원인 것이다.

모든 행위의 뿌리는 욕망이다. 화물 연대의 집단 파업이나 교원 단체의 투쟁 역시 집단 욕망의 발로이다. 노조의 집단 시위나 정부의 강경 진압도 각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최대한의 이윤을 이끌어내는 것, 정육점 주인이 돼지고기를 판매하여 이익을 남기는 것 또한 욕망의 성취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이익을 챙기면서, 동시에 그 수익으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매한다. 결국 구매라는 유통 과정을 통해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적 욕망은 상대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베풂의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을 최대한 채울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 자유는 각 개인 혹은 집단 간의 욕망이 삶의 주체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법, 규범, 도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욕망은 아름답다. 욕망은 경계의 대상이 절대로 아니다.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아침을 위하여 사람마다 욕망을 부풀릴 수 있어야 한다. 욕망을 꿈꿀 수 없다면 세상은 수치스러운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도 사회도 욕망에 의해서만 구원으로 인도될 수 있다. 욕망은 밝고 순수한 빛이요, 공동의 선을 이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에너지원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상대방의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욕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상대방의 욕망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욕망의 사면 복권이 이루어져야 함을 '구본형'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타오르는 욕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의 삶의 비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을유문화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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