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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구에서 조부모와 손자녀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아이들에게 친가와 외가 다 합쳐서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장 좋으냐고 물었더니 외할머니-친할머니-친할아버지-외할아버지 순으로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가지는 친밀감과 애정은 얼마나 가까이 살며,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재미있으면서도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태도가 긍정적일 때 아이들이 역시 유대감을 많이 느낀다는 연구 결과였다.

또 하나, 아주 오래 전에 본 자료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언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일 싫은가를 조사한 것이 나와 있었다. 할머니는 음식을 손으로 집어서 드실 때가, 할아버지는 술·담배 냄새가 제일 싫다고 대답한 아이들은 2위로는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틀니를 아무 데나 빼놓으실 때를 꼽았다. 이 이야기를 노인대학에 가서 해 드리면 어르신들 모두 쑥스럽게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 장미. 엄마가 편찮으신 이모할머니를 돌봐 드리러 미국에 가는 바람에 한 달 동안 외할아버지와 살게 된다. 언제나 낡은 옷을 입고 계시고, 조금 무섭기도 하고 대답도 잘 안 하시는 외할아버지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외할아버지 댁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외할아버지와 장미 그리고 개 아찌리의 동거가 시작된다.

더럽고 찌그러진 냄비에 음식을 해먹고, 다락방에는 안 버리고 모아둔 물건이 가득하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하시는 외할아버지는 장미의 눈에 괴짜로만 보인다. 그래도 노인학교에 입학하신 할아버지 숙제도 도와드리고, 아찌리를 잃어버렸다가 찾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정이 들어간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의 낡은 운동화가 보기 싫어 감추어 버린 장미. 그러나 새 구두를 신고 산책에 나선 외할아버지 발에는 물집이 잔뜩 잡히고, 거기다가 벌에 쏘여 벌독 알레르기로 위험에 빠지시지만 장미의 애타는 노력으로 다행히 할아버지는 구조된다.

낡은 운동화가 왜 좋은지 알게 된 장미는, 2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계신 외할아버지의 마음도 알게 된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미국에서 돌아오고 드디어 외할아버지 댁을 떠나는 날. 장미는 외할아버지 몰래 숨겨 놓았던 찌그러진 냄비를 슬쩍 꺼내 놓으며 새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이제 할아버지의 무뚝뚝한 사랑법도 알게 됐다고 생각한 장미는 앞으로 자기가 외할아버지의 지팡이가 돼 드리겠다고 결심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중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할까? 매일 만나는 외할머니를 가장 가깝게 느낄 것은 분명하고, 할아버지 두 분은 잘 모르겠다. 장미의 외할아버지처럼 두 분 모두 새 옷보다는 몸에 익숙한 헌 옷 입기를 좋아하시고,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살갑게 말씀하시기는커녕 무뚝뚝한 표정과 말씨로 대하신다. 또 무얼 쉽게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두시는 것 역시 장미네 외할아버지와 닮으셨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나는, 이 다음에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궁금하다. 장미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할아버지의 생활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럴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는 잊어버리면서' 어떻게 그렇게 옛날 일들은 눈 앞에 보듯이 잘 기억하시는지, 왜 했던 이야기를 늘 재방송하시는지 아이들이 알게 될까.

이 책은 장미가 할아버지를 새롭게 알아 가는 과정에 초등학교 1학년과 노인학교 신입생의 비교라든가, 민속박물관에서 본 물건들과 할아버지가 간직하고 계신 물건들의 의미, 마당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 이야기, 외삼촌 애인에 대한 장미의 질투, 동생을 갖고 싶다는 장미에게 호박꽃에 맺히는 열매를 통해 설명해 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을 담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또 자신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준다.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지 않고 어떻게 그 분들의 생활을 알 수 있으며, 그 분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장미는 그래도 한 달 동안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렀기에 그 많은 것을 헤아리고 알게 되었으리라.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장미가 이제 외할아버지는 나와 상관없이 홀로 떨어져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에서 외할아버지로 또 그 위의 할머니, 할아버지로 이어져있는 우리들 생의 줄기를 조금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나는 읽으면서 두 번 코끝이 찡해졌다. 친가와 외가 네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건강하게 옆에 계신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아마 두 아이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활을 한 번 생각해 볼 것 같다. 같이 살지 않아 그리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또 '할아버지 짱!'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우지는 못한다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보는 일만으로도 그 분들께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은 아닐지. 이렇게 어린이 동화책에서도 오늘 우리는 노년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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