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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묘역에는 인적이 없다
1950년대 묘역에는 인적이 없다 ⓒ 황종원
현충원을 찾던 20여 년 세월이 사진 묶음을 후르륵 넘기듯이 동작역을 나와 현충원으로 가는 구름 다리를 건너면서 다시 똑같은 사진 한 장을 박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마치 개미군단처럼 사람들은 현충원 안으로 떠밀리듯 밀려 들고 있다. 사람 물결은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장사치들이 외치는 소리로 꽉 찼다.

장사치들 중 1등은 단연 꽃 장사이다. 꽃다발과 꽃바구니 값을 서로 소리치는 데 담합을 한 듯 금액은 3000원 아니면 5000원이다. 꽃의 양이 풍성한 바구니의 값은 부르기 나름이다. 부모와 함께 아이들이 따라오니 풍선 장사가 풍선을 띄우고, 떡 장사, 음료수 장사, 각종 집안 살림을 펼쳐놓은 장사 등 난장은 세월 따라 여전했다.

꽃 다발 두 개를 사서 가슴에 안았다. 밀려 가는 물결따라 현충원 속으로 들어갔다. 밀물처럼 사람들의 물결들은 각각 자기들이 찾는 묘역으로 흘러 들어갔다. 월남전과 1970년 이후 해마다 이 묘역으로 물결 스미듯 들어서서 생선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저마다 음식을 차리고 슬퍼하고 절하고 먹고 웃고 떠들썩하다.

묘역 중에 사람 그림자를 보기 힘든 곳은 1950년 6.25사변 중에 죽어간 청춘들의 묘역이다. 지난 세월 50년, 이제 살아 계실 부모님이 누구시며 살아계신들 기동이나 하실까. 이미 당신들도 세상을 떠나셨으니 가슴에 한을 품은 체, 하늘 나라에서나 만날지. 청춘들의 죽음이니 남긴 자식 조차 있을 리 없으니, 찾아오는 것이라고는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일 따름. 애달파라. 당신들의 힘으로 우리가 이렇게 있다고 말하지만 너무 덧없는 말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당신들 하나 하나가 타인이고, 정감있는 말 한마디 못한 세월의 벽 뒤에 있는 후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당신들 곁을 지나 내 친구를 찾는 걸음이 조심스럽답니다.

이대령의 묘비에는 이미 다녀간 사람들의 자취만 쓸쓸하다
이대령의 묘비에는 이미 다녀간 사람들의 자취만 쓸쓸하다 ⓒ 황종원
친구 이희령 대령과 그의 부인 묘비에는 그의 모교대학교 총장이 보내온 꽃 바구니 속의 꽃들이 싱싱했다. 다른 꽃 바구니들도 있다. 붙여 놓은 표지가 없으니. 10여 년 동안 못 보았던 동생들이 미리 다녀갔나? 내가 아는 누구인가 다녀갔나. 복잡한 현충일을 피하여 조용히 다녀간 걸음이 느껴졌다.

모교의 꽃다발 말고는 다른 꽃바구니 속의 꽃들은 이미 시들어 있다
꽃다발도 택배하는 세상이라지만 몇 천원쯤 되어 보이는 것은 누군가가 직접 다녀간 흔적이다. 미국 군사 교육을 수료하고 귀국 중 동해에서 소련의 미사일을 맞은 KAL기 추락으로 일가족이 세상을 떠난 뒤 시신이 없어 현충원에 안장 할 수 없다 하여 한 동안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온 이삿짐 속의 옷에 묻은 머리칼을 모아 시신 삼아 여기에 자리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신 동안 동생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찾아오는 오빠의 친구들이나 동료 장교들을 맞이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고 나니 동생들도 어느 해 부터인가 현충일에 현충원에서 볼 수 없다.

그들 나름 사정이 있겠지. 오고 가던 연락마저 끊겼다.
마음 한 구석 서운한 마음을 깔면서도 “세상을 사는 것이 다 그런 거지 머.” 하면서도 슬프다. 처음에는 20여명이 북적대던 친구들도 이제는 저마다 이유로 보이지 않는다. 상실의 시대, 망각의 시대이다.
한 때 20여명이 섰던 비석 앞에 나는 홀로 섰다.

잘 있었나 친구여.
한때, 군대에서 남보다 앞서가던 자네에게 군생활 중에 속을 터놓았던 친구나 부하 하나도 없지는 않았을 자네이건만 자네는 이제 잊혀진 친구며 전우일세. 자네를 찾아오는 그림자가 이리 없으니. 나라고 어느 날 그런 건망과 상실 속에서 멀쩡하겠나.

이대령을 잊지 않고 찾아온 다른 친구 A가 나타났다. 그 또한 20여 년 째 출석생. 그와 나는 함께 예를 친구의 비석을 향하여 올린다. 그리고는 오직 이 날, 자식의 친구를 기다릴 강종구 대위의 어머님을 뵈러 현충원에서 제일 위 쪽 구역으로 오른다. 강대위는 군복무중에 순직한 지 30여년이 되었다.

강대위의 부모님은 아직 정정하시다.
마침 뒤따라온 또 다른 20여 년 출석생 B와 함께 세 명이 강대위의 무덤을 향하여 예를 올리는 짧은 동안 강대위의 어머니께서는 참고 계시던 울음을 이기지 못하시고 흐느끼신다.

사진 속의 강대위는 스물 일곱 살, 우리에게는 강대위 나이 또래의 아들들이 있다. 자식이 있는 자들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마음을 안다.
현충원 입구에서 여기 묘지까지 한 시간을 걸어서 올라오셨노라 하신다.

두 분 부모님을 모시고 온 것은 강 대위의 동생 내외이다. 재작년까지도 보이던 강대위의 누이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 누이와 친구 A는 청춘 시절에 친한 사이였는지 오빠, 동생이라고 불렀던 사이였는지 나는 이제 더 묻지를 않는다. A만큼 나도 그네가 보이지 않아서 서운하다. 이 나이에 우리를 보고 오빠, 오빠하고 부르는 명랑한 누이를 만나는 것은 기쁨이었다.

세상 사는 일이 저마다 힘들기는 마찬가지. 얼마나 힘들길래 하는 마음이 들면서 그 오빠 하는 소리가 귀에 그립다.
이제 팔순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 부의금 걱정말고 꼭 와달라는 어머니는 아들의 친구들에게 먹이려고 장만한 음식을 계속 내놓으신다. 새삼스럽게 아들의 친구를 보려고 어머니께서는 현충일을 기다리신다.

강대위의 부모님께서 아들의 묘비를 지키고 계신다
강대위의 부모님께서 아들의 묘비를 지키고 계신다 ⓒ 황종원
해마다 늙어가시고 해마다 힘드시나 자식 보듯 아들 친구들의 모습을 대하는 마음은 더 간절 하시다. 그 아들의 친구들도 이제는 머리 색갈이 반백인 초로의 나이, 자식이 늙어가듯 안타까워하신다.

벌써 당신들께서는 죽음의 시간도 언제 올지 몰라 영정까지 준비하여 차비를 갖추셨다니 듣는 마음에 비가 내린다. 다른 해에는 그냥 넘기셨는데 올해에는 아들의 친구 하나 하나에게 손수건 하나씩을 주신다.
이 손수건이 이별을 예고하는 선물이 아니기를 아들의 친구들은 바란다.

고마움보다 마음에 걸린다. 아들의 친구들끼리 대화를 하며 웃기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깔깔대기도 하였다.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 아들도 우리 틈에 함께 있는 모습을 어머니께서는 보고 계시는 듯 하였다.

다시 내년을 기약하면서 헤어질 때 나는 강 대위의 어머니를 내 품에 안아드렸다. 잔등을 다독이며
"건강하세요. “
아들이 있어도 드릴 말씀 이리라. 강대위의 어머니에게서 나는 어머니의 체취를 맡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내게 되돌아 오신듯한 체취였고, 강 대위의 어머니에게는 내 아들이 다시 돌아온듯한 체취를 맡으셨는지.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다시 한 번 말한다.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세요. "
하는 우리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시는 두 분을 위해서도 친구들은 다시 또 올 것이다. 그것은 당신들의 아들을 만나게 하여 드리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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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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