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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의원께서 지난 달 23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재반론을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피치못할 일들이 생겨서 답장이 좀 늦어졌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2년반전 언론현장을 떠나 대학으로 옮겼으나 6월1일 오마이뉴스의 논설진 창설계획에 따라 그 주간을 맡게 됐습니다.

시민저널리즘의 중심부에 서게 돼서 개인적으로 새로운 의욕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답장도 내가 소속한 오마이뉴스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김 의원께서 제기한 재반론 내용을 몇가지로 범주화하고 그에 대해 나의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광주항쟁 정신 배반한 무분별 통합

첫째, 김 의원께서는 '붉은 악마, 촛불시위, 국민후보 노무현 대통령으로 표출된 민심은 새로운 4세대의 시작이기 보다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국민의 열망을 국민의 정부와 민주당이 담아낸 것'이며, 이는 10년동안 좌절됐던 '3세대의 완성을 향한 전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국민의 정부와 민주당이 광주민중항쟁 정신을 구현하려 했다는 주장에 다분히 슬픔마저 느낍니다. 그 집권그룹은 5.17내란의 주범인 전두환씨와 제휴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언필칭 국민통합과 화합을 내세우면서 그랬습니다. 무분별한 국민통합의 한 대표적 사례지요.

나는 민주당 정권의 핵심인사가 99년 5월 영남지역에 내려가, "전씨는 휼륭한 대통령이었다"고 공개 칭송한 일을 잊지 못합니다. 전씨가 그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지역경제 회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테니 요청사항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등 위세를 과시한 직후의 일입니다.

그것을 광주민중항쟁 정신에 비추어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역사적 범죄자의 영남 민심에 기댄 지역할거주의에 영합하려 했던 사건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요. 광주항쟁 정신의 법통이 민주당에 있다는 주장을 하려면 먼저 이 질문에 답해주기 바랍니다.

또 민주당 정부는 박정희씨에 대해 기념관 건립까지 지원하지 않았습니까. 광주민중항쟁의 직접적 타기대상은 군사독재체제인 유신헌정이었고 그 수호자로서 민중살상에 나선 것이 전두환씨였습니다. 군사독재의 원조인 박정희씨의 기념관 건립이 광주민중항쟁 정신에 걸맞다고 보는지 답변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민주당 정부가 2세대 정치인 군사쿠데타 세력과의 완전한 단절을 염원하는 국민열망 위에 정권 교체를 이룬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군사반란 세력과의 무분별한 화합을 추진하면서 광주민중항쟁 정신을 배반한 것입니다.

위의 사례들을 보더라도 역사적 민중운동의 정신과 이념이 현실정치 세계에서 완성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나는 광주민중항쟁의 이념이 현실정치에서 완성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이념과 현실정치는 맞닿을 수 없는 간격이 있기 때문이지요. 또 이념은 오직 현실정치가 바른 길로 가게 하는 압력역할을 하는데 큰 의미가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광주항쟁 정신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3세대 정치가 계속돼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3세대 정치는 바로 3김씨가 주도했고 그들 모두가 광중항쟁 정신에 맞지않는 현실 추종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4세대 정당과 개혁정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제4세대 정당 역시 광주항쟁의 이념을 완성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에 가까이 가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 개혁이념과 기본강령을 제대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개혁이념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으며 오직 오랜 역사속에 축적된 것만이 실천가능합니다. 그런 우리의 역사적 자산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이 그것입니다.

민주당은 선거참패, 노무현은 당선

2002 대통령선거 결과와 광장의 시민운동에 대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국민의 열망을 국민의 정부와 민주당이 담아낸 것'이라는 주장은 경험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만일 국민의 열망을 민주당이 담아냈다면, 다음의 의문점에 대해 설명해 주기 바랍니다.

우선 2002년 6월13일 치러진 전국적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어떠 했습니까. 16곳의 시·도지사 중 호남의 4곳만 민주당이고, 한나라당이 11곳을 석권했습니다. 광역의원과 기초단체장의 3분의 2 이상을 한나라당이 차지했습니다.

그해 8·8 재보선은 어땠습니까. 13곳 중에서 민주당이 건진 곳은 겨우 2곳이고 11곳이 모두 한나라당에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 해방후 처음으로 1개의 야당이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해 입법권을 장악했습니다.

또 2003년 4.24 재보선은 아직 기억에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3곳의 재보선인데 새로이 집권한 여당이 완패한 것은 처음 일이지요.

이러고도 민주당이 2002년 대통령 선거 전후해서 국민의 열망을 담아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사실 3 차례의 선거는 민주당이 제아무리 괜찮은 후보를 내놓아도 이길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민주당 정권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국민심판이라는 대세를 넘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거 연구에서 이른바 대세가 정책이나 후보자질보다 우선한다는 실증적 지표이기도 합니다.

그런 대세로 보았을 때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만의 후보라는 의미가 강했다면 당선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는 민주당 차원이 아닌 국민후보였고, 정치의식 수준이 비약적으로 달라진 제4세대 유권자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덕으로 당선된 것입니다.

둘째, 김 의원께서는 '개혁의 우군을 넓혀야 하는데 5적론 등 현실의 신당은 뺄셈의 정치에서 추동력을 얻으려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인적 청산에 매달릴수록 신당의 철학과 이념의 허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여기서 '뺄셈의 정치'라는 비판적 표현이 바로 무분별한 통합을 지향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군요. 신당의 정체성을 정하는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이념의 선명성과 지지기반의 확대가 거의 반비례 함수관계에 있는 현실입니다. 이념과 개혁노선이 분명하면 그만큼 지지기반이 좁아지는 것이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지요.

맹목적인 통합정당이 아닌 제4세대 신당을 창당하기 위해서는 개혁이념이 전제돼야 합니다. 통합만 강조하다가는 개혁이 실종될 수밖에 없습니다. 배제와 척결의 기준을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 어렵지요.

통합은 일시적으로 동지를 늘리고 배제는 적을 만듭니다. 그러나 특히 전환기에 영향력있는 집단이 어떤 기준으로 배제와 통합의 구분을 실천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상반되는 두가지 노선인 개혁을 위한 배제와 통합을 어떻게 혼합하느냐에 따라, 혁명--> 개혁--> 현상유지--> 복고의 정치가 각각 다르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역사적 의미부여는 동시대인의 몫

셋째, 지금 추진되고 있는 신당이 신지역주의적 색채를 띄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혁노선이지 지역주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과거 민주당의 당권파인 호남출신과 동교동계도 개혁노선을 분명히 하고 신당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신당이 정책과 이념으로 만들어져야 함에도 노무현 정부의 노선이 불분명해져서 그 지지자들이 혼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특검제 수용, 이라크 파병,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북 추가조치 등을 예시했습니다.

그러나 제4세대 신당은 2002 대선과정에서 표출된 민심에 기반한 정책과 이념을 채택해야 할 것입니다. 노 대통령이 아니라 노 후보의 공약과 철학에서 개혁이념을 정제해 내고 뒷받침하는 신당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당은 결코 노 대통령의 당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지지자들이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 정부가 제대로 개혁정치를 펴 나갈 때는 뒷받침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습니다. 오로지 개혁이념과 정책의 당인 것입니다.

그렇게 제4세대 유권자들은 정치인이나 정권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특성을 갖습니다. 그것이 김 의원께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바로 정치문화의 비약입니다. 과거 우리에게 어디 그런 정치문화가 있었습니까. 맹목적 추종이거나 아니면 비타협적 저항이라는 극단만이 판쳤지요.

끝으로 김 의원께서는 2002년의 정치문화적 비약에 대해 의사 표현의 도구나 새로운 방식이지 4세대 신당의 본질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견해는 정치문화의 질적이고 역사적인 전환을 단순히 외피의 변화로 보는 오류인 것 같습니다.

시대 전환에 대해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부여해 가느냐는 것이야말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후대에 재평가가 이루어지겠지만 우리가 새로운 역사기록의 사초(史草)를 충분히 마련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시민정치는 이미 4세대인데 아쉽게도 제도정치가 3세대에서 헤맬 수도 있습니다. 1,2세대의 정치가 어디 완성돼서 끝났습니까. 잘못된 정치를 국민이 나서서 청산한 것입니다. 제도정치가 하루빨리 시민문화에 따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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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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