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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병원 안은 마치 장을 벌인 시장 속처럼 사람들이 가득했다.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 보호자, 환자들, 간호사와 의사들, 병원 근무자들. 연휴를 앞두어서 그런가 사람들은 더욱 많아 보였다.

장모님은 내가 결혼을 하여 1978년 사우디 아라비아를 떠날 당시 그 때 막 낳았던 아들과 아내를 돌보기 위해 우리 집에 계시고, 그 뒤로는 아내가 교통 사고를 당해 계속 머무르셨으니 25년 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시피 하셨다. 최근 들어 1주일은 우리 집, 1주일은 아들 댁으로 오가셨다.

처남은 가끔 허리를 못써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처남댁이 저혈압으로 입원하여 여러 날 치료를 받았다. 퇴원을 했으나 징후가 나타나 다시 진료를 받아야 할 상태다. 며느리가 병원 출입이 잦아지다보니 이제는 아주 우리 집에 머물게 되셨다.

처가는 5남매이지만 25년을 함께 생활을 해온 막내인 우리가 장모님을 모시고 주위의 다른 딸들이 가끔 모인다. 그러나 요즘 장모님 모시기가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다. 큰 처형네서 며칠 동안 장모님을 모시고 있는 동안 아내는 "나는 이제 휴가이다"하다가 장모님이 오시니 "이제 휴가 끝이다"할 정도이다.

이유는 장모님의 치매증세 때문이다. 장모님은 잠시라도 딸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집안 구석을 헤매신다. 그러기에 아내는 꼭 말씀을 드린다.

"엄마, 나 지금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할테니 찾지 마세요."
그 말이 끝난 뒤 잠시 후에 장모님은 내게 오신다.
"애가 보이지 않으니 어디 갔수?"
아내가 보이면 아내 곁에 고목의 매미처럼 붙어 온갖 말씀을 하시는데 과거와 현실이 엇갈리는 말씀에 말대답을 하자니 아내의 스트레스는 대단할밖에.

결국 장모님을 모시고 정신과에 가서 진찰을 받기로 했다. 장모님을 큰 처형이 부축하고 나는 걸음 불편한 아내를 부축하고 정신과를 찾았다. 나와 아내는 장모님이 진료받기 앞서 이렇게 말을 나누었다.

"의사는 진료를 하면서 분명히 이런 저런 검사를 하자고 할 거야. 뇌세포가 어디가 죽었다는 등 확인을 해봐야겠다지만. 우리가 보더라도 이 정도로 치매가 진행중이시니 어련하실라고. 검사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너무 부담이 돼. 어머니께서 치매증세가 악화돼 힘드실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해 치료약이나 탈 수 있도록 의사에게 말을 하자고."

차례가 되어 장모님을 모시고 진료실로 들어 갔다. 아내가 의사에게 장모님의 증세를 말했다.

"가족 관계를 잘 구분 못 하세요. 집안 대소사를 기억하셨는데 요즘은 날짜 개념이 없어졌고요. 가지고 있는 돈을 누군가 훔쳤다고 미워하고 하루 온종일 보따리를 쌓다 풀었다 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해도, 방금 전의 일은 모르구요. 대소변은 가리고 당신의 속옷은 자신이 빠실 정도로 아직은 분명하신데도 그래요. 3년 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증세가 나타나더니 1년 전부터 심해졌습니다."

치매환자와는 병의 증세에 대한 문답이 제대로 진행이 될 리 없으니 아내는 열심히 말을 하고 의사는 메모를 한다. 이윽고 의사가 말한다.

"이 증세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것이지요. 아시겠지만 뇌세포가 죽으면서 발생하는 징후에요. 현재 진찰을 해보면 경동맥의 흐름에 이상한 박동이 있습니다. 피가 제대로 뇌로 전달되지 않으니 그 상태가 치매증세를 더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의사는 마치 아기를 대하듯 장모님과 일문일답을 했다.

"오늘이 며칠인지 아십니까? 지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느 계절인가요. 내가 세 가지를 말씀드릴테니 따라해보세요. 비행기, 연필, 사과. 자, 말씀 해보세요(장모님은 금세 잊어 따라하지 못하신다). 자, 여기 그림이 있지요. 똑같이 그려 보세요. 걱정 마시고 천천히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려보세요(5각형의 모형이었으나 4각형으로 장모님은 그리신다)."

의사와 장모님의 대화를 뒤에서 지켜보는 동안, 장모님과 함께 했던 세월이 내 기억 속에서 스쳐갔다. 장모님과 10여분이라도 대화를 나누어 본 일이 있었던가. 장인 어른께서 생존하셨을 때 두 분을 차로 모시고 몇 군데 관광 명소를 모신 것으로 나는 어른들의 은혜에 효도를 다한 사위라고 자만할 수 있는가. 어른들의 생애는 오직 자식 위한 내리 사랑으로 살아오셨음에도 보답은 노환과의 싸움뿐. 막막한 느낌이었다.

병원의 작은 방에서 의사는 계속 진료하고 나는 장모님을 위한 최선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의사의 처방을 기다렸다. 아마도 치매 검진에 필요한 기본적인 검사를 할 모양이었다.
"몇 가지 검사를 해야겠습니다. MRI와 혈액검사, 방사선검사와 심전도입니다. "
MRI라면 부담이 온다. 그것을 빼자고 했다. 의사도 다른 이유를 묻지 않는다.

아흔 노인. 사진을 찍어서 여기가 상했소 저기가 상했소 한들 이미 짐작하고 있는 터. 장모님은 채혈실에서 피를 뽑고, 방사선실에서 가슴 사진을 찍고, 심전도 검사를 하셨다. 당신 자신은 왜 이런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신다. 딱한 어른. 식물 인간이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누워 있는 병상의 식물인간이고 나머지 하나는 걸어 다니는 식물인간일 것이다.

당신 스스로 판단을 못하는 이 지경을 의사는 치매의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슬픔과 안타까움이 막막하게 가슴 속에 차 올랐다.

어른을 모시고 첫 걸음 한 치료의 시작은 이제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어른을 모시는 정성만이 남았으나 한편으로 가족에게는 시련의 시작이다. 이제 치료를 하자고 덤벼든 이 걸음도 결국에는 허망하고 덧없게 끝날 것임을 알기에 아내나 나나 답답하다. 가버린 청춘. 한없는 내리 사랑으로 살아온 생애에 대한 보상치고는 어른에게 내린 하늘의 훈장은 너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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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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