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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순배가 돌자 탄식과 분노가 거침없이 쏟아졌다.
술 한순배가 돌자 탄식과 분노가 거침없이 쏟아졌다. ⓒ 이국언
그들의 꿈은 소박한 것이었다. 침체된 경기가 살아나 일감도 생기고 고용이 안정됐으면 좋겠다는 것, 아내에게 월급봉투 내밀기가 부끄럽지 않도록 먹고 살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진실 그대로 전달됐다면 세상이 진작 뒤집어 졌을 것"이라는 그들은 마지막으로 언론개혁과 진보정치에 대한 열망을 쏟아냈다. 탄식과 분노가 교차했던 막걸리 좌담이 이뤄진 것은 남부지방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지난달 29일 광주시 운암시장에 위치한 한 선 술집에서였다.

"현 정권이 오히려 깨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잘못"

- 근래 들어 노무현 정부에 대한 얘기들이 많은데요.

김훈주(이하 훈주) - 노무현한테는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배신감이 듭니다. 누가 되든 우리현실에 미국에 안 넘어갈 수 없다고 해도 말하고 행동이 너무 빨리 바뀐 것 아닙니까.

김동진(이하 동진) - 저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렇게 쉽게 바뀔지는 몰랐습니다.

이주형(이하 주형) - 아직 경험이 없다보니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북쪽과 화해하면서 통일의 물꼬를 터 갔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현 정권이 그것만은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깨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훈주 - 대통령 혼자 바뀐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국민들도 바꿔져야 합니다. 한나라당이나 보수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 어떻게들 지내십니까?

훈주 - 애들도 하나 둘도 아니고 셋이나 되는데 애들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닙니까. 영광에서 농사를 짓다가 IMF 두 달 전쯤 광주로 올라왔는데, 부지런히 살면 어느 정도 생활은 될 것이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면 갈수록 팍팍하기만 합니다. 의료보험 정산한다고 이 달에 7만8천원을 떼던데 솔직히 없는 사람 먹고살게끔 하려면 일당 3만원 정도는 맞춰주던가 해야 하지 않습니까. 집에 월급명세서 갖다 준 것도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광주지역금속노조 상진미크론 부분회장 이주형씨
광주지역금속노조 상진미크론 부분회장 이주형씨 ⓒ 이국언
주형 - 국제결혼을 해서 부인이 일본사람입니다. 일본과는 생활수준이 10배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 월급 통장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여행가는 것 좋아하던데 그것도 포기하고 시장을 볼 때도 일부러 송정리 5일장에 맞춰 꼭 싼 데만 갖다 온 것을 봤습니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동진 - 건설노동자로 일한 지 5년째인데 30년 하신 분이나 이제 막 대학 나와 아르바이트 한 사람이나 일당 차이도 얼마 나지 않습니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건설노동자는 임금협상을 하고자 해도 할 대상이 없습니다. 일제 때부터 내려온 다단계 하도급인데 누구랑 교섭을 할 것입니까.

훈주 - 내가 현 정부한테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비정규직도 지금 정규직과 똑같이 임금을 줘야한다고 한 것입니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이 나라 이끌어 가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만 날마다 허덕여야 하느냐 그것입니다.

솔직히 없는 사람들 많이는 안 벌어도 새끼들 데리고 행복하게 살수는 있는 돈은 돼야 할 것 아닙니까. 2002년 노총에서 4인가족 280만원 나왔던데, 우리는 280만원 달란 소리도 안 합니다. 요즘 내 아들놈한테는 물려줄 재산은 없으니까 머리라도 좋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거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진 - 우리나라는 자원도 없고 수출전략 속에 오로지 싼 노동단가로 지금까지 왔던 것 아닌가요. 중소노동자들의 희생이 컸다는 것입니다.

훈주 - 비정규직의 희생으로 덕 본 사람은 전 국민의 5%도 안됩니다. 신문에서 보니까 어느 정치인 점심 한끼가 120만원이라고 합디다. 우리는 한 달 사는 것이 그 사람들 밥 한끼 밖에 못합니다. 돈 못 벌어 새끼들한테 아빠로서 위엄도 서지 않는데 아들이 먹고 싶다는 짜장면, 오므라이스 한번씩 사줄 정도는 돼야 할 것 아닙니까.

동진 - 그래서 왜 얼마 되지 않는 중소노동자 비정규직의 박봉을 가져가냐 이 말입니다. 오히려 국가에서 이들에게 세제혜택을 줘야되는 거지.

훈주 - 얼마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담배 값 3천원으로 올린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수준 선진국 수준이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과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몇 %나 될까 싶습니다. 자기들은 있이 사니까 불편한 것 없고 미국, 영국 갔다 오니까 그런 줄 아는 모양인데 서울역에 이불도 없고 집도 없는 사람들보고 뭘 느꼈을까 반문하고 싶습니다.

광주지역금속노조 정치위원 김훈주씨
광주지역금속노조 정치위원 김훈주씨 ⓒ 이국언
- 조합활동은 어떻습니까. 시작하게 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주형 - 97년 입사했는데, 기본급 47만원에 잔업하면 58-60만원정도 됐습니다. 솔직히 너무 팍팍했죠. 처음 조합을 만든다고 할때 조마조마 했죠. 회사에서 인정 못하겠다고 하면 나도 그런데 가정있는 형님들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제 한달 용돈이 기름값 4만원을 포함해 7만원입니다. 그 중에서 쪼개서 조합활동 하려니 어렵습니다. 부담돼서 술 담배도 자제했습니다.

훈주 - 처음엔 의아했지만 왜 고생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측에서는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노동조합이라는 게 없는 사람들의 문화마당입니다. 있는 사람들 폭탄주 먹고 양주 마시지만 없는 사람 마음을 없는 사람들이 알아준다고, 막걸리 소주 한 사발에는 우리의 깊은 정이 들어있습니다.

- 월급보고 서운한 소리는 없습니까?

주형 - 지나간 소리로 일본 같이 가자고 합니다. 장모님께 전화하면 일본 들어오면 집은 구해주겠다고 합니다. 연봉으로 따지면 1,200∼1,300정도 되는데 솔직히 월급타면 미안하기만 합니다.

훈주 - 내가 말하잖아요. 월급 떼 가더라도 도망갈 구멍 만들어놓고 떼 가야한다고. 우리도 어렵지만 조합도 없고 비정규직인 그 사람들은 그 월급 갖고 가서 새끼들한테 뭐라고 말할 겁니까. 환장해 버리죠. 솔직히 그래서 국민연금도 안 넣고 싶습니다. 죽어라고 일만한 우리가 더 오래 살 것 같습니까. 일 않고 그런 사람들이 더 오래 살 것 아닙니까. 그 혜택 누가 봅니까. 우리가 봅니까.

저는 지금까지 월급봉투 하나도 안 버렸습니다. 마누라는 뭐 하려고 묶어 놓느냐고 하는데, 과로사로 죽고 나면 법원에 뭐로 증명할 것입니까. 월급명세서 밖에 더 있느냐 그 말입니다.

동진 - 내가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면 1달간 일하지 말아버리자고 하겠습니다. 비정규직 80%인데 일 안 해 버려야 합니다. 언제 국가가 최저 생활 보장해 줬습니까.

훈주 - 왜 못한 줄 알아요. 월급 조금 줘서 일 않고는 못 먹고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더 주면 일 안 해 버리니까. 그들 머리에 든 것이 그거요.

동진 - 그게 신자유주의고 그게 비정규직이라니까

훈주 - 왜 못한 줄 아요. 보시오. 있는 사람들은 일 한해도 먹고 살 여유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하루 안 하면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없단 말이요. 답답하기는. 오늘 일 안하면 내 일 못 먹고 살아요. 내일 살기 위해 오늘 2만원을 받더라도 일 해야 한다니까 그게 답답하다는 것 아닙니까.

"민주노총 언제까지 대기업 중심으로 갈 수 있나"

광주지역건설일용노조 통일위원장 김동진씨
광주지역건설일용노조 통일위원장 김동진씨 ⓒ 이국언
주형 - 비정규직 문제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데 중소사업장 노동자나 하청 노동자를 위해 대기업 노조에서 양보하자고 하면 과연 호응 할 것인지 의문입니다.

훈주 - 절대 양보 안 합니다. 산별노조는 우리한테 필요한데 그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연봉 3천 4천 받고 있는 그 사람들 뭐가 아쉬워서 양보합니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동진 - 그런 면에서 민주노총은 또 다른 국면에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산별노조 문제를 잘 풀지 못하면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비정규직은 산별이 풀리지 않으면 더 이상 조합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민주노총이 언제까지 대기업 중심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중소노동자들이 천원 때문에 투쟁할 때 그들이 같이 투쟁에 나섭니까. 안 나와요. 일요일날 놀러나 다니지.

- 건설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떻습니까?

동진 - 200만명 정도 되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은 우리도 세금을 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금을 내야 국민연금 산정 기준표 작성되고 우리같은 일용노동자도 산재나 퇴직금이 의료보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도 자기가 몇 시간 일하고 얼마나 받은지도 모르는데 국가가 알겠어요. 세금을 낸 적도 없고 정부는 그 기준조차 없습니다. 관심도 대책도 없다는 것입니다.

목수 일을 배워보려고 하면 '젊은 놈이 할 일 없어 이런 일 하냐'고 하지 말라고 말립니다. 일본은 학원이 있어 기술이 전수되지만 우리는 누가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평균연령이 60대에 가깝고 내가 물 뜨러 다니고 간식 사러 갔다 와야 합니다. 국민연금 의료보험은 기본인데 그것도 보장되지 않는데 누가 그런 일 하려고 하겠습니까.

- 그러면 어떤 희망을 찾고 있습니까?

동진 - 광주·전남에만 15만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있는데 조합비를 내는 사람은 40명에 불과합니다. 사업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하거나 아르바이트로 잠시 거쳐간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보니 스스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조합이라도 버티고 있어야 건설노동자들이 진짜 힘들었을 때 찾아와 의지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간판마저 내리면 그 사람들이 믿는 구석은 아무데도 없다는 겁니다.

정부가 제일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건설노동자입니다. 겨울철 일자리 못 구해 집안에서 소주병을 까고 있지만 집안이 아니라 200만이 길거리에 드러눕게 된다면 세상이 뒤집어 지고 맙니다.

"화물연대 때 보십시오. 얼마나 지랄한가"

임금기준도 정부대책도 없는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은 자신들도 "세금을 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임금기준도 정부대책도 없는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은 자신들도 "세금을 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 이국언
훈주 - 노조를 만들면서 이래서 노동법이라도 공부를 해야겠구나 느꼈습니다. 조합을 만들자 마자 형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분회장이 아니까 이겨나갔지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벌벌 기었을 것입니다. 왜 우리가 못 살고 고생하는지 우리 스스로가 뒤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동진 - 우리의 기본권에 눈 가리고 있던 놈들이 더 문제입니다. 조선일보나 대부분 뉴스나 방송 한번 보십시오.

주형 - 5·18때 신군부에 호의적으로 말했던 기자들은 다 한나라당에 가있다고 합니다. 하순봉, 최병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전 거 망월동에서 다 담 넘어갔잖아요. 그 사람들 뽑아준 우리국민도 잘못입니다.

훈주 - 그걸 위해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알아야 합니다.

동진 - 저는 반대입니다. 농민 노동자가 무식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 눈 가린 귀 막는 이런 체제가 문제라는 거죠. 학교에서 배운 것이 대학가고 출세하라고 밖에 더 가르쳤습니까. 진짜 우리 노동자 농민의 목소리 내는 신문 방송이 있었습니까.

주형 - 신문이나 방송 어디를 들여다봐도 노동자 목소리 싣고 있는데는 정말 없습디다.

동진 - 화물연대 때 보십시오. 얼마나 지랄한가.

훈주 - 그 사람들 진짜 민주화 위해 그랬다면 이 나라 진작 바뀌고 남았을 것입니다.

-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까?

동진 - 바꿔야 우리가 살지 않습니까. 국회의원 몇 명 내고 안 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이 되지 않고는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주형 - 바뀔 수 있게끔 하는 게 우리의 역할 아닙니까. 세상이 한꺼번에 뒤집어지지 않더라도 조금씩 바뀌게 되겠죠.

훈주 - 희망이 아니라 절대 바꿔야 합니다. 없는 사람이 무슨 죄입니까. 우리 아들을 위해서 죽어도 바꿔야 합니다.

"희망이요? 세상을 바꿔야죠"
'막걸리 방담'에 나선 3명의 노동자들

▲ 이들은 다시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국언
김동진(39)
한때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전신인 구 아시아자동차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던 그는 아버지의 병 수발을 위해 형의 일손을 거들게 된 것이 건설노동자의 출발이었다고 한다.

광주지역건설일용노조 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돈을 떠나서 '대접'이라도 받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건설노동자가 200만명에 이르지만 정부는 이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나 대책이 없다는 것.

그는 "겨울철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골방에서 소주병이나 까고 있지만 200백만에 이르는 이 사람들이 골방이 아니라 길거리에 드러눕게 된다면 그때는 세상이 뒤집어 질 것"이라며 "건설 노동자들이 진짜 힘들었을 때 의지라도 할 수 있도록 어렵더라도 조합깃발을 버티고 가겠다"고 말한다.

이주형(34)
장흥이 고향으로 하남공단의 한 중소업체에 일 한지 7년째이다. 포크레인 운전을 4년여 하던 그는 결국 장비 값도 못 대고 실패를 한 뒤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고 한다.

지난 97년 지금의 부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려온 지는 올해로 3년째인 그는 "좋아하던 여행도 포기하고 송정리 5일장에 맞춰 싼 데서만 시장을 보면서도 말없이 생활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광주지역금속노조 상진미크론 부분회장인 그는 "떠밀리다 시피 부분회장을 맡게 됐지만 대의원 할 때보다 어깨가 무겁다"며 "세상이 바뀌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훈주(41)
두 아들과 딸 등 세 자녀를 두고 있는 김훈주(41)씨는 "아내한테 월급명세를 갖다주기가 부끄럽다"고 말한다. 영광에서 태어나 광주로 올라오기 전까지 농사를 지었다는 그는 "부지런히 생활하면 어느 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갈수록 팍팍하다"며 "아빠로서 아들이 먹고 싶다는 짜장면, 오므라이스 한번씩 사줄 정도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한다.

광주지역금속노조 상진미크론 분회 정치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가정 때문에 조합활동에 신경 쓰지 못해 동생들한테 미안하다"며 "노조는 없는 사람들이 서로 정을 나눌 수 있는 문화마당"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단지 희망이 아니라 절대 바꿔져야 한다"는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도 지금의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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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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