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책은 단순히 리처드 파인만의 과학적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에 대해서 잘 알고 싶다면 차라리 그의 자서전인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 하시네요>를 읽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비록 그의 전기는 아니지만, 이 책은 파인만의 남다른 도전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독특한 내용의 책이다.

어느 날 문득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중앙 아시아에 위치한 미지의 나라 '탄누 투바'에 대해 알게 된 파인만은 그 나라를 방문한 서구인이 없다는 사실과 그 나라의 수도가 오로지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키질(KYZYL)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 나라를 방문하고자 여러 계획을 세운다. 사실 파인만은 이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후여서, 그의 직함과 그럴 듯한 명분만 내세운다면 쉽게 투바를 여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과 함께 스스로 계획하고, 남들이 알지 못하게 조용히 이 곳을 방문하고 싶어했다.

영어-러시아어 사전과 러시아어-투바어 사전을 동원해 투바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으고, 거기에 있는 투바인에게 편지를 쓴다. 파인만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던 당시는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심각하던 시기여서, 그의 이러한 노력들은 계속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투바에 보낸 편지들은 FBI에 의해 거의 배달되지 못한다. 게다가 우라늄이 풍부한 자연 조건때문에 소련의 '원자 도시'가 된 투바의 수도 키질은 더욱더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투바가 소비에트 공화국의 일원이 되어 버렸으니, 냉전 체제 하에서 그곳을 방문하기란 미국인 입장에서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투바에 가기 위해 벌이는 파인만과 친구들의 노력은 참 재미있으면서도 눈물겹다. 온갖 사전을 동원해서 투바인에게 투바어로 편지를 보내고, 겨우 받은 답장을 다시 해석하는 과정은 그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파인만은 이런 과정들을 지루하고 답답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매우 즐긴다.

파인만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대한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러한 지적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투바에 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계획하는 과정은 그의 이러한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투바인에게 편지를 쓰고, 러시아의 과학 협회와 연락을 취해 투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곳으로 가기 위한 통로를 찾는 과정은 그가 물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파인만은 모든 일에 있어서 진지하고, 독창적인 사고로 집요하게 파고들어 우리가 풀기 어려운 여러 과학적 문제들의 해답을 찾아냈다.

파인만이 투바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미국의 우주선 컬럼비아 호가 공중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 사고 원인을 분석하는 위원회에 파인만도 참석하게 되고, 결국 그는 폭발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에 결정적인 해답을 제공한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투바룰 여행하려는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된다.

하지만 오랜 지병인 암으로 네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았던 파인만은 결국 투바에 가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난다. 이 책의 끝에서 투바에 가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이 위대한 과학자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그와 함께 계획했던 친구들만이 초청장을 받아 투바를 방문하고 그의 죽음을 기린다. 이 책의 저자는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참으로 가슴 아픈 시기였다고 언급한다. 함께 계획했던 주인공 파인만이 가지 못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뒷부분은 그러한 안타까운 마음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사실 파인만을 잃은 것은 우리 인류 전체에게도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아직도 세상에는 풀어 나가야할 과학적 문제들이 산재하고 있으며, 파인만과 같은 우수한 과학자의 도전 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책을 비롯한 파인만의 다른 저술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도전 정신을 키우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숨어 있던 많은 과학적 진실들이 밝혀지길….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

랄프 레이튼 지음, 안동완 옮김, 해나무(200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