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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모양이 이게 모야." 아마 조금만 더 컸더라도 불만이 터져 나왔을 텐데. 아이는 엄마가 손본 머리에 별로 불만이 없는 모양입니다.
"머리 모양이 이게 모야." 아마 조금만 더 컸더라도 불만이 터져 나왔을 텐데. 아이는 엄마가 손본 머리에 별로 불만이 없는 모양입니다. ⓒ 조경국
"아 머리를 우찌 그리 깎았노."
"가위가 안 들어서 그렇지, 조금 층지게 만들면 괜찮다."
"완전히 바가지 머리네."
"촌에서 막 나온 아겄네."
"촌에서 나온 거 맞지 뭘."

아이의 앞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눈을 찌른다고 아내가 가위를 들었는데 결과는 신통치가 않습니다. 미용실에 데려갈 수도 있지만 1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깎는 일이란 베테랑인 미용실 아주머니도 벅찰 수밖에 없지요. 앞머리카락만 약간 자르는 것이라 아내는 직접 가위질을 한 번 해보기로 맘을 먹었나 봅니다.

머리핀이라도 하지 않으면 영락없는 남자아이 입니다. 저와 아내의 눈에는 예쁜 여자아이인데 말이죠.
머리핀이라도 하지 않으면 영락없는 남자아이 입니다. 저와 아내의 눈에는 예쁜 여자아이인데 말이죠. ⓒ 조경국
가만히 잡고 있자니 아이가 갑갑해 할 것 같아 제 앞 무릎에 그림책을 펴두고 싹둑싹둑 앞머리카락을 깎습니다. 앞머리카락이 그림책으로 우수수 떨어집니다. 아이도 제 엄마가 가위질하는 것이 신기한 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통에 더욱 머리 모양이 가관이 되어 갑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도 불안해 집니다.

가위질을 하다보니 차츰 이마가 넓어집니다. 이쪽 한번 자르니 저쪽이 길고, 저쪽 한번 자르니 이쪽이 길고 대충 맞추는 것도 힘이 든 모양입니다. 생각 같아선 제가 한 번 해보고 싶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아이 머리모양을 망칠 것 같아 지켜 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결국 머리핀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촌머슴아 같은 아이라 어떻게든 '스타일'을 살려 예쁜 여자아이로 변신(?)시켜 보려했던 아내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깎으면 깎을수록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을 깨달았던 아내는 대충 마무릴 짓고는 포기하고 미용실을 데려가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머리 하고 나들이를 갔습니다. 머리 모양이 어떻든 오늘 아이에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머리 하고 나들이를 갔습니다. 머리 모양이 어떻든 오늘 아이에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 조경국
아이 사진을 찍어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두었더니 아이가 무릎 위에 앉아 "오빠~"라고 부릅니다. 아이는 남자와 여자의 성별을 '할아버지·할머니', '아빠·엄마', '삼촌·이모', '오빠·언니'로만 구분하고 자신은 '아가'로 부릅니다. '아가'에게도 자신의 모습이 영락없는 남자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머리핀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아가~"라며 제 사진인 줄 압니다. 내년 이맘때만 되었어도 머리카락을 자른 자신을 모습을 보고 엄마의 솜씨에 실망했을텐데 아내로선 아이가 아직 명확하게 어떤 것이 예쁜 모습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다행입니다.

개월 수가 늘어갈수록 아이는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쓰겠지요. 머리 모양까지는 신경을 쓰진 않지만 신발이나 옷은 아이의 생각에도 예쁜 것, 싫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쁜 지도 가끔 확인을 하지요. 얼굴을 바짝 갖다대며 "아가, 예뻐~?"하고 물어 봅니다. 그럼 "응, 아가 예뻐. 억수로 예쁘다"라고 합니다. 다른 대답의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오늘 일은 아내와 저만이 아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아이가 좀더 컸더라면 머리모양을 보고 아마 며칠 울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년 이맘때면 갈래머리도 땋을 수 있고, 예쁜 머리핀도 제법 잘 어울리겠지요. 그땐 아내 대신 제가 갈래머릴 묶어줄 수도 있을 텐데, 아빠가 묶은 건 예쁘지 않다 투정을 해도 한번 해 볼 요량입니다. 그냥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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