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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비가 온 뒤 텃밭의 채소들도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오늘은 달랑무를 솎아서 총각김치를 만들자고 아내가 제의를 합니다.
"벌써 김치 만들어 먹을 만큼 되었나?"
언제 씨를 뿌렸는지도 가물가물한데 거의 방치해 두고는 농약이고 뭐고 하나도 주지 않은 달랑무를 보니 잎이 영 말이 아닙니다.

ⓒ 김민수
벌레가 먹은 이파리들, 만일 팔려고 내놓으면 어느 누구도 사가지 않을 것 같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이놈들의 속내는 얼마나 알찬지 총각김치를 만들기에 적당하게 뿌리가 들었습니다. 총각김치의 맛은 이파리보다는 뿌리 쪽이니 큰 지장이 없겠죠.

어린 시절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내다 파시던 어머니는 늘 좋은 것은 시장에 내다 파시고, 벌레 먹은 것과 못생긴 것만 가지고 반찬을 해주시고, 과일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좀 때깔 좋은 것을 한 번 먹어보자고 조르면 못이기는 척 하시며 많이도 아니고 하나만 먹으라며 주시던 어머니.

그래도 잔병치레 외에 큰 병 없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비결은 벌레 먹은 채소와 못생긴 과일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김민수
그런 대로 농사를 잘 지었죠? 솎은 달랑무를 다듬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정작 씨를 뿌린 나는 이파리 하나라도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는데 아내는 질기다며 이파리를 숭덩숭덩 잘라냅니다.
"아따, 조금만 버리라니까 아깝게."
"그럼, 양념이 많이 들어가고 총각김치 맛이 안 난다니까 그러네. 내 말 좀 들어. 글쎄."

ⓒ 김민수
어떡합니까? 그래도 김치 담그는 것은 아내가 나보다 한 수 윈데. 때마침 배꼽시계가 점심 시간임을 알리고, 아내는 오랜만에 야외기분 내자며 국수를 삶아 내왔습니다. 우물가는 아니지만 제주의 돌담을 푸르게 물들이고 있는 담쟁이덩굴을 배경 삼아 먹는 국수의 맛도 좋네요.
"이럴 땐 신 김치국물에 국수 말아먹으면 끝내주겠네."
"이거 담가서 시면 그 때 또 해 먹지 뭐."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기다려 보셔. 내가 장담하건데 목 안 빠질테니까."

ⓒ 김민수
잘 다듬은 달랑무를 소금에 절입니다. 굵은 것은 반으로 쪼개서 굵은 소금을 솔솔 뿌리고 물을 촥촥 뿌려주고 나면 이젠 조금 절궈질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 김민수
세세한 과정을 다 설명 드릴 수는 없고, 드디어 총각김치를 완성했습니다. 맛깔스러워 보이시나요? 아내는 밀가루 풀을 쑤어서 고춧가루와 소금, 젓깔을 넣어 간을 마치고, 나는 절였던 달랑무 씻어서 물기를 빼고, 마늘 빻고, 파썰고, 부추썰고 부부일심동체로 뚝딱뚝딱 김치를 만듭니다.
"니, 왜 이게 총각김친 줄 아나?"
"알지, 아줌마들이 좋아한다 아니가?"
아내가 장단을 맞춰주는 통에 서울말에 제주사투리에 전국방방곡곡 방언들로 설왕설래합니다.김치가 완성되자 그 동안 부엌을 분주하게 오가며 군침을 삼키던 아이들이 하나씩 먹어본다며 달려듭니다.

ⓒ 김민수
둘째 딸은 맛있다며 자꾸만 먹습니다.
"애, 그만 먹어라, 아직 안 익어서 배 아프다."
"그래도 맛있는데?"
"하나만 더 먹고 그만 먹어."
"아잉~ 두 개만 더 먹자."
"그래, 두 개만 더 먹는 거다. 그 대신 너 사진 찍는다."
그렇게 몇 개를 집어먹은 둘째 딸은 이제 물을 찾습니다.

텃밭에 직접 씨를 뿌리고 거두어 담근 총각김치는 이제 당분간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할 것이고, 주일에 교인들과 공동식사 때 내어놓고 자랑 좀 해야겠습니다.
"저도 이제 초보농사꾼이라는 딱지 좀 떼줍서. 이 정도면 거의 프로급 농사꾼이라고 해도 되지않겠수꽈?"
그러면 교인들이 또 한 마디 하겠죠.
"목사님이 담근 김치가 더 맛있수다게."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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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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