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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비가 오고 나면 굳었던 땅이 고슬고슬해지니 검질을 하기도 편안하지만 요즘은 무엇보다도 수확기에 있는 마늘을 뽑기가 한결 수월하다. 해가 뜨기도 전에 품앗이를 하기 위해 트럭을 타고 마늘밭으로 향하는 아주머니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수줍은 듯한 미소가 정겹다.

자기의 밭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자기 밭이 없이 일당 이만원에서 이만 오천원 정도를 받고 해뜨기 전부터 해지기 전까지 일을 한다. 비오는 날 쉬고, 몸이 아픈 날 쉬면 그렇게 큰 벌이는 아니지만 시골생활을 하며 집에서 쉬느니 나가서 한푼이라도 벌겠다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지난 봄 교인들의 감자밭에 가서 감자를 거두는 일을 도와주며 내친 김에 귤따러 가는 곳에도 한번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단호하게 딱지를 뗀다.

"목사님, 가서 공짜로 일해준다고 하면 부담 될 것이고, 돈 받고 하면 최소한 남들만큼은 해야 할텐데 당치도 않소."

매정하지만 이유가 타당한지라 나의 작은 텃밭에서 검질을 매고 가족들과 교인들 밥상에 오를 것을 키우는 정도로 만족을 해야지 어쩌겠는가.

ⓒ 김민수
이른 아침에 동네를 한바퀴 돌다 마늘밭에서 마늘을 수확하고 있는 할망을 만났다.

여럿이 일하기는 적고, 혼자 일하기는 조금 넓은 듯한 마늘밭에서 혼자서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따가운 햇살에 얼굴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쓴 큰 모자는 무늬만 다를 뿐 다 똑같아서 밭에 가보면 누가누군지 구분을 할 수 없다.

나도 검질을 하거나 산에 갈 때 쓰기 위해 하나 구입해 두었는데 아내가 웃긴다고 놀리는 바람에 벽에 쓸쓸히 걸려 있다.

"할머니, 마늘이 좋네요. 좀 거들어 드릴께요."
"아이고, 목사님 됐수다. 마늘이나 조금 가져가소."
"올해 마늘 값은 좋다는데..."
"좋으면 뭐합니까? 나같이 조금밖에 안한 사람들은 그게 그거지. 그래도 이 마늘 팔면 이것저것 할 것이 많수다게."

ⓒ 김민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부지런히 마늘을 뽑는 손놀림은 쉬지 않는다. 마늘을 뽑아 가지런히 정렬을 하고 며칠 동안 햇살에 말려서 대를 잘라 마늘포대에 담으면 농협에서 일괄적으로 수매를 한다.

마늘을 수확하는 할망의 깊은 심중에는 얼마 되지도 않을 마늘 값을 이미 받은 셈치고 무슨 생각들이 오밀조밀 펼쳐져 있을까?

영감 한약이라도 한 채 지어줘야지, 손주새끼들 장난감도 하나씩 사줘야지, 아니면 모른 척하고 통장에 넣어두고 비상금으로 사용할까... 오만가지 생각들이 다 들어 있을 것만 같다.

ⓒ 김민수
마늘은 다 뽑혀서 가지런히 정렬하여 누워 있는데도 할망의 마음에 들어있는 행복한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많지 않는 마늘이지만 할망의 마음에 들어 있는 행복한 속내가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부딛치지 않기를, 괜시리 쓸데없는 일들로 소중하게 얻은 마늘 값을 없애버리지 않도록 기도하며 '이것저것 할 것이 많수다게'하는 계획 속에 행복한 일들이 그득하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내 손에는 마늘이 하나 들려 있다. 한 무더기 주는 것을 마다하고 할머니가 키운 것 맛있나 맛만 보겠다며 달랑 하나만 들고 허겁지겁 도망을 나왔다. 그렇게 애써서 키운 것을, 그리고 '이것저것' 할 것도 많은 마늘을 어찌 준다고 다 받아오겠나 싶어서였다.
오늘 점심에는 찬밥에 물말아, 햇 마늘을 빨간 고추장에 찍어 '우적!'씹어 먹으면서 할망의 아린 속마음을 헤아려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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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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