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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없는 금요일, 학교 후문에 있는 <성심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조급하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늦게 왔다고 누구하나 뭐라 할 사람도 없지만 계단을 탁탁 뛰어 올라갈 때쯤이면 어느새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된다.

<성심의 집>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두 달 전으로, 이전까지는 내가 다니는 학교와 가까운 곳에 이런 복지시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성심의집치매노인단기보호소'로 국가 법인으로 운영되는 단체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곳은 20명 안팎의 치매할머니들이 따뜻한 보호를 받고 있는 보금자리이다.

4월의 어느 따스한 날,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용감하게 '할머니 방'에 들어섰을 때 할머니들은 모두 조용하게 옹기종기 모여앉아 계셨다. 인사를 드리자 나와 눈을 맞추며 연신 웃고 계시던 할머니들에게선 경계의 눈빛이나 낯선 거리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약간의 쑥스러운 반응이 전부였다.

"너는 누구냐?"하며 느릿하게 물으셨던 덕님이 할머니는 지금도 일주일만에 나타나는 내게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시지만 손금을 보며 "부부금슬이 여간 좋지 않게 생겼다"라고 말하는 자세가 항상 진지해서 그 말에 제법 믿음이 간다.

나이가 많으셔서 거동이 불편해 항상 조용하게 앉아 계시는 승남이 할머니는 내가 제일 정이 가는 할머니다. 나이를 먹어도 저렇게 곱게 늙을 수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승남이 할머니. 목소리가 작아서 처음에는 옹알거리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할머니의 볼에 뽀뽀를 하거나 자꾸만 눈을 감으려는 할머니 눈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면 승남이 할머니는 "허허허"하며 예쁘게 웃으시기만 한다.

<성심의 집>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인이라고 하면 또순이 할머니를 빼 놓을 수 없다. 식사를 하고, 간식을 드려도 자꾸만 먹는 것을 찾으시는 먹성 좋은 할머니이다. 또순이란 애칭이 붙은 이 할머니는 아이들만 보면 기분이 최고로 좋아진다. TV에서 아기가 우는 장면이 나올라치면 "우짤라꼬 우는고, 아이고, 아이고..."하시며 어서 이리로 데려오라고 성화다.

얼마 전 있었던 어버이날 행사에 자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방문했다. 또순이 할머니는 그 좋아하시는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할 정도로 흥분하셨었다. 딸기를 한꺼번에 두 개씩 쥐고 와서는 나보고 어서 먹으라고 화까지 내시는 또순이 할머니가 나는 오히려 정말 사랑스럽다.

"어디서 왔어요? 나는 강경서 왔는데..."로 말문을 트는 강경할머니는 자신의 고향인 강경을 잊지 못해 많이 그리워하신다. 이제 제법 능숙한 봉사자인 나는 "할머니, 나도 강경 까치마을에서 왔는데, 할머니 집 머슴도 있고 부자였지요?"하고 할머니를 기분 좋게 해드릴 줄도 안다.

강경할머니는 2주 전에 생일을 맞아 파티를 열었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자녀들과 함께 계시는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얌전하셔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집에 두고 온 자식들 걱정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는 할머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식사시간이 되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수발해드리고 나면 어느새 오후가 되어 햇살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하루 종일 건물 안에만 계시니 답답하실 것 같아 창문을 열어드리면 곧 춥다고 야단이 난다. "할머니, 지금 봄인데 뭐가 추워요. 바람 좀 쐬세요"하면 "너도 늙어봐, 추워죽겠어"라고 응수하시는 할머니에게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어 피식 웃어버리고 만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초저녁이 되면 할머니들을 조용히 주무실 채비를 하신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천사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머니들'은 그때서야 팽팽하던 긴장을 조금 늦추고 일과를 정리하신다.

할머니들을 한 분씩 목욕시켜드리고 "고맙습니다아~"라고 말하는 할머니께 "나중에 호떡 하나 사줘요, 엄마"하는 '어머니'들은 정말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덕님이 할머니와 노래를 부르고 난 후 어깨 좀 주물러 달라며 강경할머니께서 등을 내보이는 루시아 어머니에게선 할머니들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물씬 배어나온다.

청소를 마치고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침구에 눕기 시작하면 나의 짧은 하루도 끝이 난다. 기분 좋게 다음주를 기약하며 집에 가려는 내게 승남이 할머니가 하실 말씀이 있는지 연신 입을 오물오물 거리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 손녀딸 집에 가야지"하시며 할머니들에게 간식을 챙겨주시는 루시아 어머니, 일찍 자리에 누워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현관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강경할머니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그들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오면 뭔지 모를 따스함이 가슴을 채워온다. 그렇게 나의 금요일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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