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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TV 방송의 역사는 반세기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변화의 속도를 주도하는 중심에는 항상 방송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TV를 주축으로 하는 영상산업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한국 방송역사의 산 증인이 있다. 바로 최창봉 국장이다.그가 방송에 입문한 것은 군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에 군 장교로 지원 입대하여 1954년 9월 1일부터 군 방송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방송과 인연을 맺게 되는 계기였다.

최창봉은 1956년 5월 12일 첫 방송을 시작한 한국 최초의 TV인 HLKZ-TV의 연출과장으로 발탁되어 한국 최초의 TV방송의 시작에 동참하였다. 그는 황량한 사막과 같은 불모지에서 새롭게 TV프로그램의 싹을 틔워내야만 했다. 미국의 전문서적을 유일한 안내자로 활용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그는 이 TV 개국식 실황을 연출하여 첫 방송을 내보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TV드라마를 기획,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59년 2월 화재로 방송을 중단하게 되자, 공보처 산하의 방송문화연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기간 중에 그는 MBC의 창설을 주도하는 간부로 발탁, 1961년 1월 1일 초대 방송 부장으로 발령되었다. 그러나 신설 방송사 조직과 시설 작업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KBS-TV설립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HLKZ-TV에서 쌓은 경험과 미국에서 텔레비전 코스를 공부한 젊은이들과 개국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 해 12월 31일 군사혁명정부가 공약한 연내 개국 목표를 달성하여 KBS-TV를 출발시켰다. 그 후 그는 동아일보사가 주관하는 민간상업방송 설립에 책임자로 임명되어 동아방송(DBS)을 개국 시키고 8년여간 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장르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방송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시사 프로그램인 “앵무새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힘든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그 후 1971년 8월 국영방송 KBS 국장으로 부임하여 마지막 중앙방송국장을 지냈다.

그는 국장 재임기간 한국방송사에 획기적인 사건인 국영방송의 ‘공영화’을 준비했고 설립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1973년 3월 한국방송공사 발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초대 부사장 겸 방송 총국장으로 KBS 프로그램을 선진화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80년대에 들어서 그는 방송위원회로자리를 옮겨 방송국 경영이 아닌 PD의 입장에서 독립프로덕션회사의 육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89년 어려운 시기에 MBC 사장에 취임하여 “리얼리즘의 방송, 방송의 민주화”를 이룩하려고 노력했다. 이후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2002년까지 한국방송진흥원 이사장을 맡았다.

그의 방송 생애는 우리 TV 방송사의 압축된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 방송국의 첫 방송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주요 방송사의 개국을 지켜보았고, 또 직접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했다. 반세기 동안 방송과 함께 해온 그가 한국 방송사의 살아 있는 증인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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