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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경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물론 최초의 금속활자는 우리나라가 만들었다). 당시 유럽전역에는 책이 3만권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듯 책이 귀하다 보니 노예나 농노는 물론이고 다수의 평민들은 책을 볼 수가 없었다. 책은 귀족이나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지식은 정말로 독점하는 자의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에 의해서 인쇄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1500년 경 유럽은 900만권의 책을 갖게 되었다. 어느 정도 지식의 공유가 가능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조금씩이라도 알게 되었고 신탁에 의존하던 자신의 삶과 운명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식의 양과 폭은 커지고 깊어지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금속활자는 유럽에 르네상스의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인류는 1만년 전 쯤 마지막 빙하기를 마치면서 농경 생활과 함께 문명을 창조했고 약 5천년 전쯤 글자를 만들었다. 점토판과 파피루스의 시대를 거쳐 양피지와 죽간이 사용되었고 이후 종이가 발명되었다. 종이는 예전에 귀하고도 귀한 것이어서 일반인은 종이로 만든 책은 물론 종이 자체에도 범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종이의 존재는 가벼워지고 흔하고 흔해졌다. 책 역시 단순한 무게에 의해 고물상에 내다파는 정도에 불과하며 정겨운 우리들의 '푸세식' 측간에서도 뒷처리용 신문지는 보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이는 마치 현재 컴퓨터의 발전과 같은 변화를 보여준다. 처음 컴퓨터가 만들어졌을 때 컴퓨터는 단순한 전자계산기 수준이지만 그 규모는 커다란 집채만했다. 가격은 물론 엄청났으나 단순 계산처리 능력밖에 갖지 못하는 기계 덩어리에 불과했다. 1945년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컴퓨터의 파워능력을 모두 합쳐도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멜로디 카드에 부착된 IC칩의 용량을 능가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50년대 이후 컴퓨터의 힘은 100억배 커졌다. 컴퓨터 용량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에 의해 현재 컴퓨터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적어도 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하고 인터넷이 가능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학교나 관공서는 물론 집집마다 컴퓨터는 TV처럼 보급되어 있고 일상에서 없으면 안되는 생필품처럼 사용하고 있다. 내가 학생운동을 하던 80년대만 하더라도 2벌식 타자기로 유인물을 만들었고, 이후 전동타자기가 나오고 워드프로세서를 활용했다. 졸업할 즈음 286인 XT와 AT라는 컴퓨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 286은 물론 386, 486도 찾아 보기가 힘들며, 용량이 펜티엄 쓰리정도 아니면 컴퓨터로 대접은 커녕 고물 신세를 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 낡은 컴퓨터는 고물 자체의 인정도 받지못해서 돈을 주고 버려야만 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버린 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한참 인기를 구가하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운명도 이제 멀지 않아 보인다. 급속한 컴퓨터의 발전은 이제 실리콘 웨이퍼의 한계를 넘어서 광컴퓨터, DNA컴퓨터와 양자트랜지스터로 옮겨가고 있고 이러한 급변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힘입어 인간의 지능지수도 근대보다 2배나 높아졌고 두뇌의 용량은 계속 커지고 있으며 수명은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다.

요즈음 노무현 참여정부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우려를 보이기도 하고 느슨한 개혁의 속도에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특히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국민의 정서와 빛의 속도에 도전하는 디지털시대에 급속한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오늘 여야를 막론하고 진행하고 있는 정치개혁을 위한 제반의 논의도 어쩌면 시대의 변화와 사람들의 인식의 확대와 참여에 밀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결코 정치공학만으로 풀 수 없고, 환원주의로 되돌릴 수 없는 숙제가 정치권에 그리고 참여를 통한 시대의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정치인은 총포의 시대가 돌입했는데도 근엄하게 칼만 차고 있는 중세시대의 기사처럼 변화를 느끼는데 아둔하며, 설사 안다손 치더라도 애써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이미 3김 시대는 막을 내렸고 모르긴 몰라도 우리는 10년(너무 긴가!) 이내에 3김의 장례식에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도 자신의 배지를 지키는 데 각종의 논리를 기가 막히게도 만들어낸다. 통합형이니 리모델링이니 또는 신지역주의니 충청신당이니 하는 논리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연장키 위한 말일 뿐이다.

이미 우리는 재산의 유무, 직업의 다양성, 성과 나이의 차이를 떠나 모든 지식과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에 함께 살고 있다. 그런만큼 함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인식과 바람이 얼마나 크고 강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국민은 그리고 시대의 변화는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의 거울과 같다. "거울아 거울아 정치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 누구냐?"고 구태의 정치인이 묻는다면 "바로 당신!"이라고 대답해 줄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98.4%가 같다손 치더라도 인간은 인간이고 침팬지는 침팬지다. 스스로 변화해 새로운 시대를 맞지 못한다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정치의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정권을 잡고자 하는 그외 세력과 정파 역시 넓어진 시대 깊이있는 성찰을 통한 자기변신이 절실한 때이다.

금속활자의 발명이나 컴퓨터 업그레이드 속도보다 더욱 빠른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이미 정치와 사회에 신(新)르네상스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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