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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계곡 하산길
천동계곡 하산길 ⓒ 김명숙
5월의 소백산은 진달래와 철쭉꽃으로 산상화원을 이룬다고 했다. 그러나 충남의 알프스 칠갑산이 있는 청양에서 버스를 5시간이나 타고 2시간 걸어서 올라간 소백산 비로봉(1439.5m) 주위 꽃들은 조용했다.

그 유명한 소백산 철쭉을 만나고 싶어 내가 너무 서두른 것인가. 6월초나 되어야 산상화원의 선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진달래는 이미 지고 철쭉은 아직 안 피고 대신 그 꽃을 만나러 전국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형형 색색 옷들이 꽃 대신 비로봉 주변을 장식했다.

낮 12시가 다 되어서 산행 시작지점인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를 출발했다. 고추나무꽃 향기가 진동하면서 반긴다.

오늘 산행은 소백산 정수리인 비로봉으로 오르는 가장 가까운 코스인 어의곡리를 출발 - 비로봉 - 천동계곡 - 다리안폭포 - 소백산북부관리사무소로 하산한다. 이 길은 계곡을 따라 오르 내리는 짧은 등산코스로 별 어려움이 없다. 다만 하산길이 길어 조금 지루한 편이다.

소백산! 백두산에서부터 힘차게 달려온 산맥이 태백산을 지나 마지막 여정을 가다듬으며 한숨 크게 돌리는 곳이다.

소백산 금강애기나리
소백산 금강애기나리 ⓒ 김명숙
물이 휘돌아 감는 아름다운 도시 충북의 단양과 유서 깊은 고을 풍기와 순흥, 영주를 감싸안은 소백산은 가장 높은 비로봉을 가운데 두고 국망봉(1420.8m)과 연화봉(1383m)을 거느리고 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가 가파른 산길을 동행한다. 숨이 차지만 등산로 옆으로 무수히 피어나는 들꽃들. 지친 걸음을 잠시 잡아둔다.

별처럼 빛나는 금강애기나리, 큰애기나리, 동의나물, 산괴불주머니, 갑자기 눈을 확 뜨게 만드는 복주머니꽃, 붉은병꽃나무, 모데미꽃, 피나물꽃, 졸방제비꽃, 용담꽃, 현호색.

소백산 복주머니꽃
소백산 복주머니꽃 ⓒ 김명숙
사진에서만 보아 왔던 금강애기나리와 복주모니 꽃은 이곳에서 처음 봤다. 아름다운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제 신록이 막 피기 시작하는 자작나무, 참나무. 나무계단을 지나 오솔길에 이르니 신록이 눈이 부시다.

날씨가 좀 흐려 소백산의 산줄기들이 한지에 물감 번진듯 흐릿한 모습으로 첩첩 쌓여 있다.
1시간30분쯤 오르니 오솔길이 끝나고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저만큼 소백산 천문대 건물과 비로봉이 보인다. 멀리 길게 늘어선 능선을 타고 점점이 움직이는 것들이 보인다.

소백산 철쭉
소백산 철쭉 ⓒ 김명숙
저마다 가슴속에 철쭉꽃을 품으러 온 사람들인가. 부드럽고 듬직한 소백산 능선과 어우러져 하나의 자연풍경을 이루고 있다. 비로봉에 이르는 길은 낮게 자라는 처녀치마, 노랑제비꽃, 피나물 등 키작은 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땅과 거리를 두고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다.

산에 오르다 내가 온 길을 뒤돌아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산행을 시작하면서는 저 높은 곳을 언제 오르나 싶다가도 한발한발 숨을 헉헉거리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능선에 이르게 되고 한숨 돌리면서 걸어온 길을 보면 사는 것도 이와 같으리니 싶어져 슬며시 힘이 생긴다. 사는 일이 정리가 안되거나 삶에 지칠 때면 그래서 높고 험한 산에 오르는 것이리라.

소백산 정수리 비로봉
소백산 정수리 비로봉 ⓒ 김명숙
비로봉을 저만큼 두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땀으로 흠뻑 젖었던 몸이 국망봉을 지나 비로봉으로 달려가는 바람으로 인해 한기를 느낀다.

비닐봉지에 싼 한 주먹밥과 상추 몇 장, 풋고추 두어 개, 고추장이면 진수성찬이다. 밥맛도 꿀맛이고 내 목적지도 다 이르러 바로 저곳이니 이제 급할 게 없다.

인생에도 이처럼 정상이 있을까? 그곳에 이르면 이처럼 느긋해 질 것인가. 풀밭에 앉아, 이 산을 내려가면 또 다시 오르고 싶은 산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엉뚱한 생각을 한다. 이제 배낭이 한결 가볍다.

소백의 혼을 담고 있는 주목고사목
소백의 혼을 담고 있는 주목고사목 ⓒ 김명숙
드디어 소백산 비로봉 정상.

큰돌에 ‘소백산 비로봉’이라고 새겨져 있다. 손으로 한번 만져보고 그 옆에 잠시 서 본다.
혹시나 기대했던 철쭉은 역시나 이제 꽃망울을 만드느라고 조용했다.

내 가슴속에는 이미 저 꽃들이 피고 있었다. 오늘 꽃을 보지 못했으니 다음에 한번 더 오라는 뜻으로 생각하니 소백산이 더욱 듬직하다.

하산하는 길은 날씨가 너무 흐려 넓은 시야를 보지 못해 많은 아쉬움을 줬다. 비로봉 지나니 주목군락지다. 수령 500년 이상 된 주목 34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 244호.

가파른 하산길이 시작되기 전 주목 한그루 고사목 되어 소백의 혼을 담고 있다. 산돌배나무, 고추나무, 흰 꽃나무들. 바람결에 향기 날리는 하산길에 만난 옹달샘은 지리산 총각샘 다음으로 내 기억에 아름답게 남아 있을 것이다.

다리안폭포의 장엄함과 산악인 허영호기념비에 새겨진 글을 읽느라 발걸음을 멈춘다. 내가 산행을 한 어의곡 새밭-비로봉-천동 다리안 코스는 산악인 허영호를 기리는 소백산 허영호 등산로였다는 것을 하산 끝자락에서 알았다.

맑은 물에 등산화를 벗고 발을 씻었다. 온몸의 피로가 가신다. 다섯 시간의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눈감고 내가 간 길을 되짚어 보면 아름답지 않은 산은 한곳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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