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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리 시장에서 45년째 철물점을 하시는 우태성 씨(76). 연백에서 피난 오셔서 교동에 눌러 앉으셨다. 언제 통일 되어 고향을 가시려나?
대룡리 시장에서 45년째 철물점을 하시는 우태성 씨(76). 연백에서 피난 오셔서 교동에 눌러 앉으셨다. 언제 통일 되어 고향을 가시려나? ⓒ 느릿느릿 박철
나는 무슨 물건이든지 잘 챙겨두지 못해 매번 찾느라고 볼일을 못 본다. 벽에 못이라도 하나 박으려면 망치부터 찾아야 한다. 찾는 수준이 애들 소풍가서 보물찾기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심각하다.

어디다 두기는 두었을 텐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내가 찾다 못 찾으면 아내를 부른다. 아내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면 아이들까지 불러댄다. 우리 집 병아리 은빈(초1)이 자전거 체인이 헐거워 잘 벗겨진다고 해서 느슨해진 체인을 좀 팽팽하게 해주려고 스패너를 찾는데 스패너와의 숨바꼭질이다.

나를 닮아서 아내도 그렇고 애들도 비슷하다. 우리 집 식구들은 물건 정리하는데 빵점이다. 며칠 전에 아내가 대룡리 시장엘 갔다 오더니 연장 통을 하나 사왔다. 내가 연장이 필요할 때마다 찾느라고 온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걸 못 참겠다고 연장 통을 사온 것이다.

아내가 말끝을 뾰족하게 해서 한마디 ‘톡’ 쏘아댄다.
“당신 이제부터 연장 쓰고 여기에 놔둬요. 당신 이제부터 쓰고는 휙 집어던지고 찾아내라고 소리 지르지 말고 이제부터는 나이 값 좀 하고 삽시다.”

알 빠진 주판과 계산기. 과거와 오늘이 공존하고 있다.
알 빠진 주판과 계산기. 과거와 오늘이 공존하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누가 뭐라고 했나? 연장 통에 가정생활에 필요한 연장들을 하나하나 담아 두었다. 못, 펜치, 스패너, 드라이버, 송곳, 톱, 등등 물건을 다 담아놓고 들어보니 묵직한 게 이만한 연장이면 집도 지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집도 집 나름이겠지만. 언젠가 개집을 지었다 한 밤중 눈이 많이 와서 무너진 적이 있었다. 부실공사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장난감 대신 생활연장을 갖고 놀았다. 제일 재미있는 도구가 실톱하고 펜치였다. 실톱으로 아무 것이나 자르고 펜치로 구부릴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구부러뜨렸다. 철사로 잘라서 사람, 개, 새, 토끼 등을 만들었다. 못 쓰게 된 쇠붙이를 갈아서 칼도 만들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정도로 가정생활의 여유가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였다. 나는 돈이 생기면 모아두었다가 갖고 싶은 연장을 사기 위해 철물점에 달려갔다. 철물점 아저씨가 두툼한 돋보기안경을 쓰고 물건을 찾아 준다.

못. 저 못이면 집도 서너채 짓겠다.
못. 저 못이면 집도 서너채 짓겠다. ⓒ 느릿느릿 박철
호미와 낫이 정답다.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호미와 낫이 정답다.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철물점에 가면 별의별 생활 연장들이 있었다. 그래서 잠깐 동안이었지만 내 장래희망이 철물점 주인이 되는 거였다. 지금은 철물점이 별로 시세가 없는 편이지만, 옛날에 철물점을 한다하면 돈 좀 버는 줄 알았다. 내가 어려서 단골로 가는 철물점 주인아저씨는 내가 갈 적마다 못 쓰게 된 큰톱을 줄칼로 갈아 날을 세우는 일을 하셨다. 줄칼로 톱날을 몇 번씩 쓱쓱 문지르면 톱날이 반짝반짝하게 날이 선다.

연장 사러 가서 한참동안 철물점 아저씨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못 쓰게 된 톱을 수리해주기도 했지만, 공장에서 사온 새 톱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게 참 신기했다. 칼이나 톱의 날을 예리하게 세우지 않아 날이 무뎌지면 나무를 자를 수 없다. 내가 어려서 한 때 철물점 주인이 되는 꿈을 꾸었던 것은, 철물점 안에 오만가지 연장들이 있을뿐더러, 그 연장들이 다 재미있는 장난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도구와 연장들이 제각기 용도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사못. 어지간한 건 다 있다.
나사못. 어지간한 건 다 있다. ⓒ 느릿느릿 박철
망치는 망치대로 할 일이 있고, 몽키는 몽키대로 할 일이 있고, 톱은 톱대로 할 일이 있다. 그 모든 연장이 서로 도와야 한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자기 일에 충실하는 것이 곧 남을 돕는 것도 된다.

만물상 같은 느낌을 주는 철물점이지만, 철물점은 우리의 인생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수련의 장소가 된다. 모든 사물을 허투로 대할 일이 아니다.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 어떤 인간은 망치하나 못한 인생을 살다 가기도 한다. 다 닳아 날이 작아진 호미를 보면,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새 주인을 기다리는 철물점의 연장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다 표정이 있다. 앞으로 철물점 주인이 될 일은 없겠지만 아내가 사다 준 연장 통에 연장들을 잘 정리해 두었다가 연장을 찾느라 헤매는 일은 없어야겠다.

하느님께 ‘나’라는 존재는 쓸모 있는 연장인지 궁금하다.

아내가 사온 연장통. 그런다고 연장을 안 잃어버릴까?
아내가 사온 연장통. 그런다고 연장을 안 잃어버릴까? ⓒ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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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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