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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17일 , 5ㆍ18 전야제
2003년 5월 17일 , 5ㆍ18 전야제 ⓒ 민은실
"아직은 폭죽을 터트릴 때가 아닙니다. 의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굴욕적인 외교를 하는 지금, 5월의 정신은 없습니다.5·18은 축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결의하는 엄숙한 날입니다."

지난 5월 17일 광주 금난로에서 진행된 5·18 전야제 때, 예닐곱 명이 폭죽을 터트리자 진행자가 날카롭게 지적한 말이다.

그렇다. 5·18 광주민중항쟁은 오랜 유신 독재에 맞서 싸웠던 민주 역량의 결집이었으며 또한 이후 폭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는 범국민적 민주화 운동의 횃불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미국이 작전 지휘권을 갖고 서울에 버젓이 있는데도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50톤이 넘는 미군의 궤도차량에 치어 두 소녀가 끔찍하게 죽었는데도 미군들은 무죄판결을 받는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고, 민주화를 부르짖는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전직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기는커녕 10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은닉한 채 예금잔액 29만원을 들먹거리며 배째라고 버티고 있다.

5ㆍ18 체험하기(왼쪽)와 풍물놀이(오른쪽)
5ㆍ18 체험하기(왼쪽)와 풍물놀이(오른쪽) ⓒ 민은실

지금 우리나라에 '민주화 정신'은 존재하는가?

전야제에 참석한 광주 시민(김영일, 47) 중 광주 민중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그 날 계엄군은 곤봉으로 여자건 남자건 상관없이 무자비하게 때렸다. 나도 어깨에 금이 갈 정도로 심하게 맞았다. 그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우리는 그래도 광주 사건이 끝나면 뭔가 달리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폭력은 가하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형국이)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건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박정숙, 34)은 "이런 잔혹한 역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지금 우리 국민은 어느 때보다 하나가 되어있다. 촛불 시위가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비틀린 역사와 국민들의 염원, 요구가 촛불 시위로 인해 조금씩 이루어 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물풍선 던지기 게임(왼쪽)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물풍선 던지기 게임(왼쪽) ⓒ 민은실
5·18 전야제는 역사를 바로 알고,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참여자들이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그 중 <시민군 체험하기>는 시민들 사이에서 가장 호응도가 높았다.

'계엄군은 물러가라'는 문구가 새겨진 트럭에 시민들이 타고 계엄군 복장을 한 군인들이 그들에게 욕을 하고, 때리는 시늉까지 한다. 체험을 하고 나온 광주 중앙초등학교 5학년 김진주양은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조금 무서웠을 것 같아요"라고 말을 남겼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에 얼굴 내밀고 물 풍선 터트리기 게임을 한 대학생(선문대학교 3학년)은 "대학 축제 때도 많이 했던 게임이지만, 교수복을 입은 전직 대통령에게 물풍선을 던지니 후련한 마음도 들고 재미있네요" 라며 웃기도 하였다.

광주는 '살아있는 민주 성지, 역사의 도시' 라고 많은 사람들이 평가한다. 아마 많은 참석자들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실감나게 역사를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것도 그곳이 광주, 열사들이 울부짖으며 쓰러져간 금남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촛불은 계속 켜져야 합니다
촛불은 계속 켜져야 합니다 ⓒ 민은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5·18의 역사적 과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이 물려준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주의 정신으로 혜택을 받고 있는 우리 후손들에게는 그 진실을 밝히고 과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5·18은 민주주의의 횃불이 열사들의 영혼으로 인해 불탔던 엄숙한 날이지 축제의 날이 아니다. 우리는 5월의 정신을 담은 촛불을 계속 켜야 한다.

미군이 서울에 있는 한 5월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무고한 생명들을 죽인 전직 대통령이 한 점의 죄스러움 없이 뻔뻔하게 고개 들고 사는 한 5월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자치적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이 실리적 외교를 외치며 미국 비위 맞추기를 하는 한 5월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조국 통일이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나라가 될 때까지 5월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5월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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