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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린교회앞에 선 홍근수 목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운동이라는 게 돈하고 시간이 드는 일인데, 목회하니까 시간은 많이 못 내지만 수입이 있으니까 돈은 열심히 냈거든요. 대표 자리가 원래 돈내는 자리잖아요. 목사이기 때문에 여러 단체 대표하는 것이 가능했죠. 단체 회의실로 교회건물을 사용할 수도 있었고. 아쉽기야 하죠.

처음에는 15년 동안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정도면 오래 있는 것이죠. 교회 희년(50주년) 행사나 마치고 가라고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은퇴가 늦어졌어요."


25일 설교를 마지막으로 향린교회 강단을 떠나는 홍근수 목사는 "젊고 건강하니까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언젠가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올해로 65세. 이른 나이는 아니지만, 70세 정년이 관례화 된 교계에서는 '조기은퇴'다.

대부분의 한국 목사들은 정년을 채운 뒤 '원로목사'가 된다. 후임목사가 담임을 맡는다 해도 원로목사의 권력은 막대하다. 자신을 따르는 신자와 장로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 내 제도와 정책, 심지어는 후임목사의 인사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홍근수 목사는 "원로 목사가 교회 일을 일일이 간섭하기 때문에 후임목사가 소신껏 일을 못 한다. 목사가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교회는 인사나 재정문제가 부패한 것이 일반적"이라며 '원로목사제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은퇴 이후 아예 교회를 옮길 생각이다. 그렇다고 다른 교회로 가면 그 담임목사 역시 '유명한 목사'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테고, 교회를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홍 목사는 고민 끝에 초교파 평신도교회인 '새길교회'를 정했다. 담임목사 없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는 20년 동안 목회한 목사에게 평생 이전까지 월급의 반을 지급하도록 제도화했다. 홍근수 목사가 20년을 채우려면 앞으로 3년 7개월만 더 일하면 된다. 그러나 조기은퇴를 선택한 홍 목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한달 70만원의 연금이 전부. 살고 있는 목사사택에서도 나와야 한다.

홍근수 목사는 "절약하면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교인들에게 오랫동안 신임받았으면 사는 길을 다 있다"며 여유를 보였다. 다행히 '홍근수 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이 그의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다.

▲ 홍근수 목사가 19일 향린교회에서 '종교와 경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목사가 절대권력 가지면 교회 부패한다
통일·평화운동은 '목회의 일환'"


19일 오후 5시 홍근수 목사는 은퇴기념 자서전 '나의 걸음' 출판기념회에서 '종교와 경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예수는 경제, 정치영역에서 중립을 취하지 않았다. 무제한적 경쟁과 사유재산, 탐욕 등을 합리화하고 부자를 성공자와 승리자라고 축복하는 기독교는 예수의 교회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중에도 홍 목사는 "전두환, 박정희 칭찬한 사람들이 정말 정치목사고, 우리는 양심에 따라 설교를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통일운동이나 평화운동은 '가욋일'이 아니다. 목사로서 본질적인 문제이다.

홍 목사는 옥중체험기에서 자신을 '인도주의적,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며, "내가 민족통일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유는 내가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이기보다도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91년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는데 검사가 '목회를 빙자해 민족해방운동, 반미자주운동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운동한 것은 다 사실인데 '목회를 빙자'한 게 아니라, '목회의 일환으로' 한 거라고, 그 말만 고치면 다 인정하겠다고 했죠."

홍근수 목사는 특히 대형 교회에 대해서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홍 목사는 "돈 많이 버는 것을 축복이라고 하는 점에서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목사의 절대권위에 교인들이 따라가는 '우민정치'는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조목조목 대형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성경에 대한 해석도 다른 목사와는 사뭇 다르다. 홍 목사는 "3000년 전 문화에서 다른 언어로 쓰여진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비본질적 요소는 시대에 따라 바꿀 수 있다"며 동성애, 여성, 생명윤리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성경의 본질'은 '화해와 평화, 통일'이며 '민중과 함께 한 해방자 예수'이다. 홍 목사는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기독교는 공산주의에 가깝다"는 주장을 펼쳤다.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50년마다 한번씩 노예를 해방시키고 빚을 탕감하고 땅을 다시 나눴다는 설명이다.

홍근수 목사의 관점에서 부시는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진짜 기독교인'이 아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시청 앞에서 미국 만세를 외치며 부시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죄악이다.

감옥 속에서도 지켜온 담임목사직
국악찬송 부르며 징 울리는 예배


물론 모든 교인들이 홍근수 목사의 목회철학에 박수를 보낸 것은 아니다. 홍 목사의 설교와 사회활동에 대한 찬반양론이 갈리면서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교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홍근수 목사는 "목회하면서 교인들의 의식이 바뀌어 저같은 사람을 담임목사로 참을 정도로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교인들의 지지 덕분에 그는 감옥에서도 담임목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홍근수 목사는 91년 이적단체 구성(범민련 남측본부준비위 집행위원), 고무·찬양(KBS '심야토론' 중 '공산주의는 인도주의'라고 발언), 이적표현물 제작(방북기 '미완의 귀향일기') 등의 죄로 1년 반 가까이 옥살이를 치렀다.

홍근수 목사가 감옥에 있는 동안 향린교회 교인들은 홍 목사와 함께 공권력에 대항했다. 교인들은 즉시 홍 목사가 일하던 단체들과 함께 '홍근수 목사 석방촉구공동투쟁위원회'를 조직했다. 홍근수 목사는 자신이 출소한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직 어두운 새벽 4시 군산교도소 앞에서 지인들과 가족, 향린교회 교인들은 출소 환영식을 열었고 환영 문화제가 이어졌다.

홍 목사는 향린교회에 돌아온 뒤 교회제도와 예배형식 개혁에 앞장섰다. 40주년을 맞은 93년 향린교회는 '교회갱신선언'을 하고 예배에 민족문화를 수용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향린교회 주보는 예배용어를 한글로 쓰고 있다. '설교'는 '하늘뜻펴기'고 '봉헌'은 '정성드리기'다. '파송'은 '세상으로보냄'이다. 예배 시작과 끝에는 징을 울리고 예배 도중에는 국악찬송을 부른다.

목사와 장로가 소속된 당회에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교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목회위원회'를 만들었고, 목회자와 장로의 임기를 제한하고 교인에게 신임 여부를 묻는 '목회자 및 장로 임기제'를 도입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북한 자주성 해치지 않는 선교 필요
해방정국 북 기독교인은 반공 친일파 "


홍근수 목사는 향린교회를 떠난 뒤 현재 몸담고 있는 전국민중연대, 6.15선언실천통일연대,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등 사회단체에서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가 앞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김일성대학에서 기독교개론을 가르치는 일이다. 통일목사인 만큼 '통일선교연구소'를 만들고 싶다는 꿈도 있다. 그러나 북한에 교회를 세울 생각은 없다.

"북한에는 북한의 교회가 있지요. 고아원 등의 시설을 만들어 사회를 섬기면 자연히 선교는 돼요. 종교는 외국 영향없이 자생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한국 선교사는 사업하러 간 것처럼 '위장'입국하는데 다른 나라의 자주성을 해치는 거예요."

홍근수 목사는 "북한 교회가 전시용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짜'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판단은 하나님이 할 것이다. 남한에도 가짜가 많다"고 답했다.

홍 목사는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내려온 기독교인들 중에는 신사참배에 참여한 친일파도 많았다. 토지무상몰수 무상분배에도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북한 기독교인은 친일 행적과 반공적 입장 때문에 남한에 왔다"는 분석이다.

"향린교회의 창립정신은 모든 교회일원이 가족이 되는 사도행전적 공동체교회, 교회 밖에서도 믿는대로 살고 사는대로 믿는 입체적 교회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인데, 한국전쟁 내내 교회는 교파싸움만 했어요. 예수의 교회는 그러면 안 돼요. 후임 목사가 예수 정신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홍근수 목사가 후임 목사에게 바라는 바는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향린교회의 정신, 예수 교회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민족이 망하면 기독교가 어디 있냐"며 다른 교회에 대해서도 "교파싸움만 하는 기독교는 필요없다. 정신차리고 민족구원과 사회개혁을 위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호소로 인터뷰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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