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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받침이 잘 보이지가 않네요. 이도 너무 많이 피어 먹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먹어봅시다. 혹 압니까? 벌이 꿀따느라 조금이라도 묻혀놓았을지요.
꽃받침이 잘 보이지가 않네요. 이도 너무 많이 피어 먹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먹어봅시다. 혹 압니까? 벌이 꿀따느라 조금이라도 묻혀놓았을지요. ⓒ 김규환
아까시나무 꽃의 대단한 생명력

망가뜨린 산비탈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데는 싸리나무, 오리나무, 아까시나무가 제격이다. 싸리나무는 키가 작아 제 영역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가 아카시아로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는 서울 남산, 북한산, 관악산을 넘어 용문산, 치악산, 설악산, 계룡산, 무등산, 덕유산, 팔공산, 지리산을 가리지 않고 조그마한 빈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 제 뿌리를 내리고 땅을 차지해 버린다.

번식력은 감히 어느 나무도 따를 수 없이 왕성하여 뿌리로 쭉쭉 뻗어가고 이듬해엔 콩 깍지에서 떨어진 씨앗이 발아해서 쏙쏙 움터 밭뙈기 주인노릇 하기는 시간 문제고 한 마지기 산(山)으로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다. 어디 이뿐인가? 어디서 씨가 날아왔는지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한두 그루 이사왔다고 생각하고 몇 해 놔뒀다가는 묘동 널까지 파고 들어가 산 사람 마음까지 심란하게 하니 이놈의 생장은 언제나 멈출 것인가?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은 향기를 발산하는 오뉴월에나 즐기는 듯하고, 꿀 치는 양봉업자나 좋아하는 아까시나무. 웬만한 산을 초토화하여 리기다소나무와 함께 제거 대상 1호로 지목된 이 나무를 사람들은 무척 싫어한다.

산림녹화 일등공신에 대한 대접은 찾아볼래야 찾을 길 없다. 어릴 적 허기를 채워주던 추억의 꽃, 안재성의 '감색운동화 한 켤레'에서 그리 아름답게 그렸던 중학생들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는 온데 간데 없다.

밀식을 하여 가지가 곧게 가꾸면 아까시도 가구용으로 쓰임새가 많답니다. 심어놓기만 하고 방치하니 천덕꾸러기가 된 거랍니다. 벌들의 여행이 한창일 때입니다.
밀식을 하여 가지가 곧게 가꾸면 아까시도 가구용으로 쓰임새가 많답니다. 심어놓기만 하고 방치하니 천덕꾸러기가 된 거랍니다. 벌들의 여행이 한창일 때입니다. ⓒ 김규환
자전거 타고 학교 다니던 길 절반은 아까시꽃 길

아까시나무는 학교를 오가는 길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다. 미루(美柳)나무 반, '앙까시'라 불렀던 아까시나무 절반이다. 아침에야 자전거를 타고 시오리가 넘는 7.3km를 서둘러 늦지 않도록 달려가야 했으니 여유부릴 까닭이 없었지만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먼 길은 허기진 배, 출출한 속을 달래줄 옹달샘 하나에 질겅질겅 씹으며 궁금한 입을 채워 줄 먹을거리가 필요했다. 학교 급수대 물은 사시사철 소독약 냄새 때문에 세수하는 데나 썼지 입 씻는 데도 어울리지 않는 기분 상하는 물이다.

아까시꽃이 필 무렵인 5월에 이르러서는 학생들은 하복(夏服)으로 갈아입는다. 청소를 서둘러 마치고 희뿌연 잿빛 바지와 푸른 하늘색 윗저고리에 새까만 운동화를 신고 새마을 모자에 가까운 모자들 눌러 쓴 학생들. '집에 가도 좋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학생들은 학교 뒤 한켠에 세워둔 자전거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백아산을 끼고 오가는 길에는 중학교 1학년생은 자전거를 탄 채 누구도 단번에 넘지 못하는 고난의 기나긴 언덕길 세 개가 있었다. 학교를 내려오는 언덕길을 잽싸게 빠져나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래봐야 집으로 가는 도중 채 1km를 못 달려 농협창고가 있는 언덕이 하나 버티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오르는 길에 동네 아이 서너 명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아까시나무 밑으로 살금살금 모여들었다. 이미 수만 마리의 벌떼들도 향기를 맡아 꿀 따러 나와 있었다.

키가 160cm가 넘는 아이들은 풀쩍 뛰어 뾰족한 가시가 있는 나뭇가지도 아랑곳 않고 하얀 꽃을 무수히 매달고 있는 줄기를 꺾는다. 키 작은 몇 몇 아이는 자전거를 평평히 잘 고정해두고 짐칸으로 조심스레 올라탄다. '뒤뚱뛰뚱 찌우뚱' 좌우로 흔들리며 곧 넘어질 상황이다. 이도 안되면 나무에 기어오르는 수밖에 없다. 한 번 맘먹은 아이들은 아까시 꽃을 이파리와 함께 몇 가지 꺽지 않고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꽃망울에 벌이 제 몸을 맘대로 드나들 수 있으려면 하루 이틀 쯤 지나야 되는 아직 활짝 피지 않은 꽃이 우리들 입맛에는 맞았다. 활짝 피어버리면 꽃이야 더 커 있고 꿀벌이 입틀 빨판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꿀을 핥는데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보드랍고 달콤하여 허기진 입안을 감싸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찢어 내려온 한 뼘 길이 꽃가지에는 맨 흰색이라기보다는 '아이보리'에 가깝다. 초롱처럼 생긴 꽃을 입으로 쭉쭉 훑어 갈색 꽃받침도 버리지 않고 씹어대면 생쌀을 씹는 맛이요, 유월에 피는 밤꽃 향을 입에 가득 머금고 있는 황홀함에 빠졌다. 또한 이런 때라야 씹을수록 입안에 수분이 가득해 밭은 숨을 고를 수 있게 마련이다.

아까시 잎을 잘 보십시오. 따는 놀이도 재미있고 잎을 따버리고 동생 머리핀 만들어서 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까시 잎을 잘 보십시오. 따는 놀이도 재미있고 잎을 따버리고 동생 머리핀 만들어서 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 김규환
배고픔과 밭은 숨을 고르게 해줬던 양식 아까시 꽃 먹고 옹달샘에서 물 한모금

아이들은 꽃을 먹으면서 먼지 풀풀 나는 길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놀이도 즐겼다.

"소다이 소다이 며루치" 하며 손바닥을 뒤집어 한 아이를 제외시키기도 하고, "장깸 포쇼"나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이긴 사람이 자신의 한 손에 쥐어진 잎을 가운데 손가락을 힘껏 튀겨 먼저 다 따내는 이가 이기는 시합이었다.

입안에 기분 좋게 가득 고인 당분을 입맛 다시며 더 오르면 평지가 나오고 또 집으로 향하는 자전거는 빨리 밟아대는 페달 수에 비례하여 달렸다. 급제동이라도 한 번 하면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쳐서 내동댕이쳐질 위험천만한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위험하고는 담쌓고 사는 듯, 누가 잡으러 오기라도 하는 양 집으로 내빼기 바쁘다.

하교 길은 오르는 고갯마루가 덜 가파르고 내려가는 길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버스 한 대 비키기 힘든 왕복 1차선 도로인 때라 반대편에서 차라도 한 대 온다면 큰 일 날 수 있다. 버스 바퀴가 지나간 자리는 불도저로 득득 긁어놓아 돌부리가 무수히 널려 있었지만 가운데 차가 지나가지 않은 길은 아스콘처럼 맨들맨들 잘 다져져 있어 아이들이 속도감,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에는 이보다 나은 길이 없었다.

버스가 다니는 길을 지나 소로로 접어들면 옹달샘이 우리를 늘 반기고 있었다. "손님 어서 와서 목이나 축이고 가소서..."하듯 작은 모래가 위로 치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쉼 없이 맑은 물을 생산해내고 있는 자그마한 샘에 들르는 게 일이다. 무릎 꿇지 않고 온몸을 수그려 양손을 짚고 소처럼 서너 모금 쑥쑥 빨아대면 그 시원함에 아무런 오염덩어리가 없는 순수(純水)를 양껏 들이키면 배 부르는 것은 물론이고 얼음물보다 시원하여 바짝 정신이 깨게 했다.

까치 보금자리가 있는 듯합니다. 아니면 꽃 향기에 취해 잠자려고 왔을까요? 그늘을 벌써 찾고 있는 걸까요? 답을 하려므나.
까치 보금자리가 있는 듯합니다. 아니면 꽃 향기에 취해 잠자려고 왔을까요? 그늘을 벌써 찾고 있는 걸까요? 답을 하려므나.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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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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