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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풀빛
한 권의 책을 소개하려한다. 제목이 길다.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제목만 듣고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까닭은 제목이 길어 많은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5월 광주에 관한 이야기가 그만큼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80년 봄날의 기록들은 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기에 제목만 듣고도 무슨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리라.

80년 5월 18일을 지점으로 광주에서는 민중과 군사정부의 충돌이 본격화했고 그 충돌은 27일 새벽 도청에서 최후의 항쟁을 벌이던 이들을 계엄군이 폭력으로 진압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열흘간의 투쟁은 이토록 간략하게 정리된다. 그러나 이토록 간략한 사실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기까지는 십 수 년 세월의 침묵, 고통과 좌절의 침묵이 있었다.

버젓이 눈뜨고 살육과 광기의 폭압을 지켜보았으면서도 세상에 그 억울한 사실을 알릴 수 없었던 광주와 주변 지역 사람들의 침묵과 전해 들었으면서도 입을 다물어야만 했던 많은 사람들의 침묵이 있었다. 그들의 침묵은 인권과 정의를 권력과 폭력으로 짓밟은 정권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존을 위한, 부당한 정권의 폭압에 항거한 광주의 열흘은 고인 물처럼 세상에 당당히 알려지지 못하고 끝내 간첩의 사주를 받은 폭거라느니 과격한 일부 폭도들의 난동이었다느니 하며 왜곡되어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85년 5월 즈음에서 이 책은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을 기록한 저자 황석영씨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관해 왔던 자료들은 보따리에 싸여서 장롱 깊숙이 처박혀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필자는 이것이 문학이나 소설적 차원의 일감이 아니라, 사실적인 사건 자체가 한시라도 빨리 여러 이웃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역사적인 평가, 당시 사회 정치적인 역학 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보다는 80년 5월 18일부터 80년 5월 27일까지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담는데 충실한다. 광주민중항쟁의 최초 시발점은 어디였으며, 그곳의 분위기며 상황은 어떠했고 27일 도청에서의 처연했던 마지막 순간, 계엄군과 시민군의 대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아남은 자의 술회와 기억을 종합한다.

이미 우리는 88년 국회 청문회를 비롯한 공식적인 밝힘의 과정을 통해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모래시계’니 ‘꽃잎’이니 하는 창작물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마저 체험한 듯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열흘 사이에 광주 일원에서 무슨 일이 구체적으로 일어났는지 알지는 못하고 있다.

80년 5월의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확인은 중요하다. 이미 많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봄날을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는 이유는 그날의 일을 아픈 추억쯤으로 치부하지 않고 엄연한 사실, 당면했던 생존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이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두고 역사적인 의미를 찾고 이후의 한국 역사와 민주화 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따지는 것보다 우선하다.

짧았던 그러나 많은 죽음과 피해가 있었던 열흘의 사실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의미를 따질 수 있겠는가. 구체성 없이 의미만을 따지기에 급급하다보면 어느새 광주 민주화 운동을 한국 현대사의 뜻 깊은 사건으로 추억할 망정 당시의 사람들의 어떤 과정 속에서 투쟁에 임했는지는 잊고 말 것이다. 그것은 반쪽짜리 기억이다.

총과 칼로 정당한 외침을 짓이기는 군인 앞에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투쟁은 역사의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절박했던 인간의 몸부림, 살아남으려는 투쟁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하고 그것을 위해 세세한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구체적인 사실 확인은 이제는 ‘이미 다 알았고 할 만큼 했지 않느냐’는 식으로 80년 5월 광주를 기억하는 것을 막는 데도 필요하다. 사건 이후에 80년 5월의 광주는 수많은 왜곡과 폭력에 시달렸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8년 국회 청문회 이전까지 ‘광주사태’로 폄하되었고, 시민군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폭도’로 낙인찍혔다. 세월의 흐름과 민주화 과정 속에서 그 평가가 달라졌다고 해서 이제는 마음 편히 잊어도 되는 일은 아니다. 그것이 단순히 어느 지역의 피해 사실을 자꾸만 들추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정당하고 기본적인 생존권을 지키려는 처절한 투쟁을 기억하는 일이기에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광주를 기억하는 일은 실증 낼 수 없는 일이며, 지겨워 할 수 없는 일이다. 여전히 생존을 위한 다른 방식의 투쟁이 계속 되고 그 투쟁은 계속 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창비(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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