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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배수원
"일 년 더 있다가 보낼까요?"

아내는 진지한 얼굴로 제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럴까? 요즘은 조기 입학보다 오히려 늦춰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던데."

나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내를 마주보았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아내가 마침내 결정을 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냥 보내기로 합시다. 늦게 낳은 녀석 일년이라도 빨리 보내서 빨리 졸업시켜야지요."

아내의 의견대로 우리 부부는 진형이 녀석을 입학시키기는 했지만, 삼월 초 내내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우리 예상대로 녀석은 알림장을 학교에 두고 오기 일쑤였고, 신발주머니까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학교로 가서 알림장을 가져오거나 다른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준비물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하는 둥 가욋일을 해야 했습니다.

"넌 어떻게 된 애가 잊어버리는 게 그렇게 많니?"

아내가 야단을 치면 녀석은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는 듯 능청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하곤 했습니다.

"내일 가져오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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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지나서였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을 하는가 싶어 어느 날 저녁, 제가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진형아, 학교 재미있니?"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입을 내밀고 대답을 했습니다.

"재미 하나도 없어. 놀지도 않고 맨날맨날 운동장에서 줄만 서."

녀석의 대답에 우리 부부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학기 초, 아이들에게 기초 질서를 가르치느라 운동장에서 줄서기와 줄 맞춰 걷기 따위를 가르쳤나 봅니다. 그런데 녀석은 여전히 유치원 때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놀게 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트린 것입니다.

그러던 녀석이 사월 둘째 주쯤에 들어서자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토요일, 고향인 '보리소골'에 가기 위해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녀석이 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교문 밖으로 달려나오더니 차에 올라탔습니다.

"아빠, 우리 오늘 보리소골 가면 내일 와?"
"그래.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천천히 와도 돼."

내 대답에 녀석은 다시 물었습니다.

"아빠, 일요일은 학교 안 가는 거지?"
"그래. 일요일은 학교 가지 않는 날이란다."

그러자 녀석이 볼 멘 소리를 했습니다.

"에이, 일요일은 왜 학교를 안 가는 거야? 난 일요일에도 학교 가고 싶은데."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녀석이 달라진 것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더니, 이젠 일요일에도 가고 싶다고 할 정도니 말입니다.

그 뒤부터 녀석은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괴발개발이기는 하지만 알림장도 꼬박꼬박 써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반에는 남자 애들이 모두 열 다섯 명이야. 여자 애들은 열 세 명. 모두 스물 여덟 명이 우리 반이야."

묻지도 않았는데 녀석은 그렇제 자기네 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네 짝은 누구니?"
"응, 오민지. 아주아주 예쁘게 생겼어."

그런 말을 하는 녀석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녀석에게 "진형아, 학교 가니 좋으니?"하고 물으면 이제 녀석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여자 친구 있어?"
"예."
"여자 친구 이름이 뭔데?"
"민지. 오민지요."

녀석은 아주아주 환한 얼굴로 그렇게 여자 친구 이름을 주워 섬기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녀석이 갑자기 제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양말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양말은 왜?"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녀석은 큰 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숙제해야 돼요."

숙제하고 양말 벗는 게 무슨 상관인가 궁금했는데, 알림장에는 아빠 발 씻어드리고 '아빠께서 ( ) 웃으셨습니다'라는 문장의 괄호에 적당한 말을 넣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녀석은 화장실에 세숫대야를 놓고 물을 받더니 제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고사리같은 손가락으로 제 발을 조물락거리며 씻어주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그런 숙제를 내준 담임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발 씻기가 끝나자 녀석은 알림장의 괄호에 '활짝'이라고 썼습니다.

어제는 제 엄마의 어깨를 스무 번 주물러주었습니다. 역시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괄호에 낱말을 써오라는 숙제였습니다. 아내도 대견하고 기쁜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빠 우리 담임선생님 정말 좋아. 예쁘고 우리한테 잘해주시고…."

녀석은 자주 제 담임 선생님 자랑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아내도 담임 선생님 대하기가 너무 편하다고 합니다.

학기 초, 한 아이가 생일이라고 다른 친구들 모두에게 먹을 것을 돌리자, 담임 선생님께서는 다음부터는 이런 것 하지 말라고 어머니들께 당부를 하셨다는 겁니다.

생일이어도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낼 수 없는 형편의 아이들이 있다는 걸 짐작하신 때문이지요. 어떤 선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무언으로 가르치신 셈이지요.

지난 어린이날 무렵, 학교에서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아이 먹을 것을 싸면서 담임 선생님 것이라고 조그만 반찬 통에 과일 몇 조각을(그야말로 몇 조각이었습니다) 넣어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 편에 과일통을 돌려보냈습니다. 통 위에 예쁜 그림이 그려진 종이 편지가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진형이 어머니! 정말 날마다 감사합니다. 번거로우실텐데 늘 사랑해 주시니, 빈 그릇 보내기가 민망하여 친정 어머니께서 주신 팥과 들깨를 조금 나누어 보냅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얼마 없어서 양이 너무 적네요. 이해해주실 거죠? 그럼, 행복한 5월 되세요."

아내는 그 편지와 한 봉지씩 되는 팥과 들깨를 소중히 간직하며 너무도 행복해 했습니다.

금요일은 소풍날이라는데, 엄마들이 선생님 도시락을 어떻게 할까 묻자, 몇 번 거절을 하다가 결국은 "그럼 아이 싸는 그대로 김밥 한 줄만 싸주시면 됩니다"하셨다는 겁니다.

늦둥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우리는 우리 가족들이 다시 일 학년이 된 듯한 느낌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 늦둥이가 만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우리 가족 모두의 친구이고 선생님처럼 느껴지는 것은, 늦둥이가 느끼는 첫 세상인 학교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그대로 우리 가족에게 전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과의 첫 대면에서 우리 늦둥이가 상처받지 않고, 즐겁고 신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사람들이 더없이 고마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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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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