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일요일 오전에 독일 TV방송 중의 하나인 WDR(Westdeutsche Rundfunk)에서는 '예술, 돈 그리고 문화(Kunst, Kohle und Kultur)'라는 제목으로 2002년 제작된 매우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회학박사이자 녹색당 창당에 참여한 정치인이자 1995년부터 베스트팔렌주의 문화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는 미하엘 패스만의 바쁜 생활을 따라가며 장관으로서 그의 의무와 고민들을 보여주었다.

독일의 대표적 공업지대였던 황폐한 루어(Ruhr)지역을 문화적 생기가 넘치게 하는데 공헌하기도 했던 미하엘 패스만은 인터뷰 도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난 스스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 역할은 우리의 예술과 문화가 번영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한국의 문광부 장관과 문화예술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정부와 문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계의 밑거름이 될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길 바라는 것은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물론 문화예술계와 관련된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계에 투입될 예산증액이나 문광부의 개혁의지 등은 기본적으로 앞으로 수립될 문화정책과 제도를 위해 긍정적인 토대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냉철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미하엘 패스만이 언급했듯이 예술과 문화가 번영할 수 있도록 그 어떤 '무대'를 만든다고 했을 때 우리에게 그 '무대'란 과연 무엇인가?

혹시라도 번지르르한 건물이나 단지를 여기저기 세우거나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대규모 국제행사도 몇 건 치르는 일들만이 그 '무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정책입안자들이 생각할까봐 필자는 노파심이 먼저 앞선다.

예술과 문화가 번영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일은 행사개최나 건물신축같은 것만으로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예술인 개개인의 구체적인 '생활이라는 무대'가 바로 세워지지 않고서는 전문적인 문화예술인들의 활발한 활동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제도적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바로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복지정책'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복지정책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예술가 사회보험(Kuenstlersozialversicherung)'은 현재 한국의 문화예술계가 반드시 눈여겨 볼만한 제도라고 본다.

물론 한국의 일부 문화정책 연구자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사안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문화예술인들의 공감대 형성과 정책입안자들의 관심을 촉구한다는 취지에서 독일의 예술가 사회보험과 예술가 사회금고(KSK/ Kuenstlersozialkass)를 소개한다.

예술가를 위한 복지정책

독일에서도 예술을 업으로 하는 덕분에, 예술가들은 의료, 사고, 연금, 실업보험 등과 같이 보통 일반 직장인들이 100여년 전부터 누리는 여러 사회보장제도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5년 연방의회에서 문화예술관련 직업들의 불안정한 경제적, 사회적 실태들에 대한 보고가 있었고 1983년 1월 1일(구동독지역은 1992년)부터 예술가 사회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자립적인 문화예술인들도 연금, 의료, 간호보험에서 제도적인 혜택을 받기 시작했다.

그럼 예술가 사회보험제도의 기본 개념을 간단히 살펴보자.

1. 대상의 조건

우선 예술가 사회보험규약에 따르면 자립적으로 예술분야나 저널리스트 등의 활동으로 (진지한 의미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들을 제도적 혜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그저 본업 외에 여가를 이용하거나 취미로 예술활동을 하는 이들은 제외된다는 의미이다.

혜택의 대상이 되는 직업들은 조형예술가, 연극배우, 음악가, 작가, 저널리스트 및 위와 관련된 분야를 가르치는 이들 등이며 또한 수공업 분야에서 예술가로서 인정되는 이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직업실습생이나 변변찮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이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그러나 두명 이상의 직원을 둔 사업주 위치에 있는 이들은 제외된다.

물론 이 제도의 혜택을 받고자 신청하는 문화예술인들은 연방전체의 예술가 사회보험제도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예술가 사회금고(KSK)의 엄정한 심사를 받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자립적인 문화예술관련 직종을 400개로 세밀히 분류한 후 이 중 약223종의 직업에 혜택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구체적인 혜택대상 직종은 아래 박스기사 참고바람). 이것을 보면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2. 예술가, 기업, 정부의 보험분담금

일단 예술가 사회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의무적으로 연금, 의료, 간호보험을 들게 되는데 이때 회원은 전체보험료의 50%만 분담하고 나머지 50%는 연방정부의 보조금(20%)과 예술적이고 저널리즘적인 활동들을 활용하는 기업들(30%)이 함께 분담하게 된다.

이는 보통 50%의 분담금을 납부하는 일반 직장인들과 비슷한 수준이고 일반 자영업자들 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임을 의미한다.

이점이 바로 예술가 사회보험이라는 시스템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개념으로 관련기업과 정부에서 각각 30%와 20%의 분담금을 지불해야 하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예술가가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상업적인 접촉이 필요하고 관련기업들의 경험에 의지하게 된다. 또 출판사, 음반제작회사, 연극공연장, 화랑, 광고업체 및 서커스기업과 같은 문화예술에 관련된 기업들은 예술가들에게 위탁을 하거나 그들의 작품을 상품화하여 시장에 내놓기도 한다.

이러한 기업과 예술가간의 공존관계는 일반 회사측과 고용된 노동자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에 관련된 기업들은 예술가들의 업적에 합당한 보수의 규모에 따라 예술가 사회보험료를 분담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이나 기업과 같이 제 3자를 통하지 않고 홀로 자신의 활동을 홍보하거나 상품화하려는 예술가들은 누가 보험료를 분담해주나? 그것은 바로 연방 정부의 국고로 지원된다.

3. 예술가 보험분담금의 예

예술가 사회보험의 회원이 지불하는 분담금은 각자의 재정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안정되고 규칙적인 수입원이 없는 문화예술분야의 직업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담금은 각자의 연간수입을 평가해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연간수입이 1만 2000Euro인 예술가는 연간수입의 19.1%에 해당되는 연금보험, 13.6%에 해당되는 의료보험 그리고 1.7%에 해당되는 간호보험의 분담금 중 각각 50%에 해당하는 9.55%(월95,5Euro), 6.8%(월 68Euro), 0.85%(월8,5Euro)를 납입해야만 한다. 즉 연간수입 1만 2000Euro의 17.2%인 2604Euro를 매달 172Euro씩 나누어 내게 된다.

물론 이러한 분담금을 지불할려면 자립적인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연간수입이 최소한의 한계는 넘어야 하고 직업적인 예술활동을 시작한지 3년이 안된 초심자들이 이 최저한계를 넘지 못하는 경우엔 보호받기도 한다.

4. 예술가 사회금고(KSK)의 역할과 통계들

예술가 사회금고는 예술가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신청자들의 조건을 면밀히 검사한 후 문제가 없다면 보험회사나 연방관련기관 등에 신고해주고 분담금에 대한 계산 및 징수를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빌헬름스하픈(Wilhelmshaven)시에 있는 이 기관은 독일연방관청에 소속되어 있고 독일 전국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예술가 사회금고의 자료에 따르면 보험회원으로 등록된 문화예술인은 첫해인 1983년에 1만 2569명이었던 것이 2001년에는 약 11만 2천여명으로 불어났다.

회원의 증가는 예술가 사회금고의 예산증가를 의미하는데 1983년에 3억 3130만 마르크에서 2000년엔 7억 7840만 마르크에 이르렀고 연방 정부의 보조금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1983년에 3670만 마르크였던 것이 1999년에는 1억 7580만 마르크로 증가했다.

예술가 사회금고의 회원들은 일반적으로 조형예술, 음악, 언어 및 연기예술분야로 분류되는데 2001년 현재 회원 11만 2204명 중 조형예술분야가 4만 3449명(38.72%)으로 가장 많고 음악분야 2만 9538명(26.33%), 언어분야 2만 6895명(23.97%), 연기예술분야 1만 2322명(10.98%) 순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제 복지정책을 수립할 때다!

대략적이나마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술가 사회보험제도의 기본개념과 통계적인 정보들을 개괄해 보았다.

물론 외국의 제도를 한국에 곧바로 이식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한국의 문화정책 관계자들은 예술가 사회보험이나 쿤스트 페어라인(필자의 이전관련기사 참조)과 같이 독일 문화예술계의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유익한 시스템들을 연구하고 동시에 한국의 상황에 적합한 운영방식들을 개발한다면 보다 이상적일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화예술계에 지원되는 예산이 아무리 많아진다 하더라도 그 돈들이 보다 본질적으로 문화예술계의 기반을 견고하게 지속시킬 수 있는 정책개발과 제도수립 그리고 그 제도적 임무를 수행할 전문인력들을 양성하는데 중점적으로 쓰여지지 않고 단지 일회적이거나 외형에 치중한 사업들에 소모된다면 '튼튼한 무대'는 요원해진다는 점이다.

지금이야말로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지원정책 중에 무엇보다도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복지정책의 기초를 마련할 때라고 생각한다.

< 2001년 현재 예술가 사회보험의 혜택 직종>

이 리스트를 굳이 첨부한 이유는 우리가 '문화예술인'이라고 하면 쉽게 떠올리는 몇가지 전형적인 직업들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다 넓고 섬세한 시각으로 문화예술정책에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필자에게 생소한 직명들이 많아 번역상 어려움이 있었고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일독을 권한다.

1,조형예술분야 : 미술감독, 위탁제작자, 전시디자이너, 조각가, 세밀화가, 특수촬영영화의 채색가, 만화가, 만화 레터링, 컴퓨터디자이너, 컴퓨터그래픽아티스트, 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여성용속옷쇼 관련자, DTP출판인, 세공사, 밑그림디자이너, 실험적인 예술가, 가방제작장인, 사진가(광고, 언론), 사진사, 상업디자이너, 일용품디자이너, 유리디자이너, 유리화공, 금세공술장인, 판화가, 회화복원기술자, 목판조각가, 목재조각가, 일러스트레이터, 산업디자이너, 정보디자이너, 서예가, 캐리커쳐작가, 도예가, 문신화가, 윤곽화가, 공예가, 화가, 소묘가, 미술단조공, 풍경화가, 편집자, 자동차채색가, 광고제작자, 견본시매장디자이너, 주형제조인, 가구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 멀티미디어집필자, 미술관디자이너, 지폐그래픽디자이너, 오브제 제작자, 온라인그래픽디자이너, 퍼포먼스예술가, 조각가, 초상화가, 도자기화가, 투시도화가, 동판화가, 복원기술자, 장신구디자이너, 재단디자이너, 스크린디자이너, 은세공사, 장난감디자이너, 스틸사진사, 섬유디자이너, 섬유제조인, 동물모형조각가, 특수촬영영화소묘가, 활자디자이너, 포장디자이너, 비디오아티스트, 웹디자이너, 광고사진가, 도안가.

2,음악분야: 합창단지휘자, 지휘자, 디스크쟈키, 자유음악가, 악기연주자, 합창지휘자(교회), 악단장, 교회음악가, 작곡가, 콘서트마스터, 예능기술자, 치료음악가, 가극대본작가, 노래제작자, 음향혼합마스터, 음악조기교육자, 편곡자, 음악프로듀서, 음악감독, 가수, 독주(창)자, 음향디자이너, 무용음악가, 경음악가,

3,언어분야: 무대-필름-라디오-티브이를 위한 집필자, 교정인, 대중작가, 보도카메라맨, 사진리포터, 사진저널리스트, 시인, 대학시간강사, 시나리오작가, 시나리오각색자, 대작자, 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 통신원, 비평가, 교사 ,사전편찬자, 편집고문, 음악편집인, 온라인편집인, 신문잡지사진사, 홍보전문가, 인쇄편집인, 인쇄관련편집자, 편집인, 편집인(기술), 작가, 작사자, 텍스트각색자, 카피라이터, 조사 낭독자, 번역가, 비디오저널리스트.

4,연기예술분야: 곡예사, 행위예술가, 원맨쇼연기자, 아나운서, 사회자, 아티스트, 위탁프로듀서, 발레교사, 발레장인, 발레리나, 복화술자, 조명담당자, 무대장치가, 배경화가, 무대배경화가, 코믹연설인, 안무가, 안무학자, 광대, 맹수조련사, 대역연기자, 카메라맨(영화), 카니발참가자, 줄타는 곡예사, 줄타는 광대, 드라마제작부원, 피겨스케이팅선수(쇼), 엔터테이너, 리듬체조교사, 마술사, 티브이방송건축가, 군무댄서, 영화건축가, 영화미술가, 영화제작자, 영화프로듀서(상업적), 풍속화가, 음향담당자. 음향마스터, 손가락인형극배우, 투시술사(쇼), 최면술사(쇼), 요술사(쇼),
성대묘사예능인(쇼), 카바레연예인, 희극배우, 무대의상제작자, 무대의상소묘가, 동화구연가, 꼭뚜각시인형제작가, 분장사, 방송사회자, 뉴스담당아나운서, Off아나운서, On아나운서, 판토마임배우, 모방예술인, 인형극배우, 퀴즈프로그램 사회자, 음성실현가, 감독, 조감독, 낭독자, 그림자연극배우, 연극배우, 곡예사(쇼), 영화편집인, 연출가, 운동선수(안무관련), 언어디자이너, 담화술교육자, 배우(막대기형태를 이용하는), 발성교육자, 음성모사인, 스턴트맨, 더빙성우, 장면연출미술가, 무용가, 무용교육자, 연극교육자, 동물조련사, 예고편제작자, 예고편편집자, 공중그네곡예사,
익살꾼(쇼), 특수촬영영화관련인들, 오락연예인, 비디오그래픽디자이너, 광고성우, 마술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