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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될 어머니의 방문

비가 멈추고 햇볕이 나기에 밭을 갈러 나갔다. 고추 심을 이랑까지 다 다듬으려고 했지만 다시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밭에 깔려 있는 작년 고구마 순을 걷어내던 딸 새날이에게는 비옷을 입힌 채 일을 계속했다. 비가 연 나흘째다. 장마철도 아닌데 웬 비가 이리 많은지 뜨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다. 밭을 맬 때도 되었는데 연일 비가 오니 좋아라고 풀들이 난리를 친다.

더 큰 걱정은 어머니다. 어머니만 아니었어도 비를 맞으며 밭을 갈지는 않는다.

"고추를 키워? 아나 콩이다. 호랑이를 키워라!"
"이기 감자밭이가 풀밭이가? 거름 만들어서 풀 좋은 일만 시키고 지랄한다."


어머니 호통이 귓가에 쟁쟁하다. 다음주에 어머니가 이곳에 오시면 한 나절은 족히 혀를 끌끌 차실 것 같아 집안 구석구석, 이 밭 저 밭을 최대한 손을 봐 놓으려고 하는데 이 놈의 비가 원수다. 하늘이 하는 일인데 나 하나 사정 봐서 비를 내리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겠다 싶어 원망하는 마음을 거둔다.

어제 부탁했던 휠체어를 빌리려고 군 보건소에 다시 전화했다. 걷지를 못하는 어머니를 동네 이곳저곳 모시고 다니려니 휠체어가 생각났다. 꼭 이틀간만 빌리려고 하는데 여분이 없단다. 확보하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하는데 어떨지 신통치가 않다.

장독대도 기초 작업만 한 후 1년 넘게 방치해둬서 이것도 지적사항이 될 것 같다. 집 처마를 왜 이리 짧게 했냐고도 할 것 같고 마루로 비가 들이치는 문제는 집 지은 지가 언젠데 지금도 이 모양이냐고 제일 꾸중이 클 것이다.

마당 구석에 텃밭이라도 만들지 비워두냐며 땅이란 놀리면 버린다고도 한마디 할 것이다. 마당에 있는 개집을 망치로 부셔버리지나 않을지 모른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고 눈을 흘겨도 폭삭 내려 앉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모두 다 옛날 어머니 얘기다. 이제 듣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시는 어머니가 내 시골 살림에 무슨 참견을 하랴 싶다. 어머니의 살림 참견이 걱정이 아니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가시겠다는 형님의 말을 듣고 나는 반가움보다 더럭 불길함이 앞섰다.

몸이 불편해지고 나서는 아무리 권해도 집 바깥출입을 극구 사양만 하시던 어머니가 아니시던가? 2층에서 실내계단을 내려올 때 서지를 못하니 앉은 채로 엉덩이를 질질 끌면서도 부축마저 거절하시던 어머니가 십수 년만에 서울을 떠나 천릿길을 내려오시겠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갑자기 긴장이 온다. 어디랄 것도 없이 두리번거려진다.

2년 전. 귀농 6년만에 직접 집을 한 채 지었을 때 초청을 해도 안 오시고 명절 때마다 서울 큰 집에 가면 내가 늘 우리 집에 내려가 며칠 가서 쉬시라고 해도 나중에 갈란다고 손사래를 치던 그 '나중'이 오늘이란 말인가? 그 '나중'은 과연 시골 우리 집 방문만을 말하는 것인가?

어머니 오시면 땔 장작을 패면서도 머릿속이 편치가 않다. 상추를 두어 주만 일찍 뿌렸어도 밥상에 올릴 텐데 아쉽다. 쑥갓도 이제 막 싹이 돋고 있다. 어머니가 한 주만 늦게 오셔도 제법 자랄 테지만 어쩔 수 없다. 들깨 모종 부어놓은 것은 이제 떡잎만 나왔다.

"와? 너 또 어디 잡혀 가제?"

내가 시골로 가서 농사짓겠다고 하니까 또 무슨 일을 저질러 잡혀가는 걸로 알았는지 대뜸 목이 잠기시던 어머니다. 아니라고 했지만 "니놈이 언제는 기다고 하고 갔었냐?"고 돌아앉으시던 어머니다.

지금은 집 뒤안으로 수채를 내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빗줄기는 하염없이 계속 내린다. 빗물은 가슴을 가로질러 방울방울 회한으로 맺힌다. 처음이지만 동시에 마지막이 될 내 어머니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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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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