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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에 서동만 상지대 교수를 임명한 데 대한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반발이 거세다. 1일 조ㆍ중ㆍ동 세 신문사는 일제히 서씨 임명을 반대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노 대통령의 인사를 비판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각 사설의 어조는 차이점이 있다.

먼저 <조선일보>는 ‘오기 인사와 막가는 정치’라는 사설 제목에서 드러나듯 국회 정보위가 반대한 인사를 강행한 것은 국회 의견을 무시한 노 대통령의 ‘오기’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즉 ‘국회가 반대한 인물을 임명했으므로 잘못된 인사’라는 논리다.

다음, <중앙일보> 사설 ‘국정원 안보기능 포기할 건가’는 조선일보와는 달리 두 가지 논점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국회 반대 인사의 임명은 잘못된 것’이라는 논리다. 두 번째는 국정원의 안보 기능에 비추어 ‘친북편향성’의 서씨 임명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판단이다. 얼핏 두 논점이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논리적으론 차이가 있다.

첫 번째가 ‘국회 반대를 무릅쓴 인사는 잘못된 것’이라는 일반론이라면 두 번째는 ‘서씨의 친북편향성이 실제 국정원 임무 수행에 적절치 못할 것’이라는 각론에 가깝다. 즉 두 번째 논점에서 서씨가 친북편향이라는 국회 정보위의 판단을 받아들인 것이 된다. 따라서 ‘국회 반대를 무시했다’는 일반론에 방점을 둔 조선일보에 비해 한발 더 나아간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여야의 경직된 관계 정도가 아니다’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중앙일보 사설은 두 번째 논점, 즉 서씨의 ‘친북편향성’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아일보> 사설 ‘국정원 인사, 상생포기 선언인가’는 조선일보와 대동소이한 논리를 따르고 있다. 즉 ‘국정원 개혁’보다 ‘상생정치’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이다. 스스로 ‘이번 인사는 당사자의 이념성향을 어떻게 보느냐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한 것처럼 서씨의 성향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이점이 중앙일보와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세 신문의 사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국회 정보위의 판단에 대한 분석과 의견 없이, ‘국회 반대 인사를 임명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에 의존한 것이다. 즉 국회 정보위의 판단 근거가 옳으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 기실 논쟁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3권 분립에 기반한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부와 국회가 ‘상생의 정치’를 해야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주장이다. 인사 청문회 결과를 정부가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서씨의 이념적 성향에 대한 국회 정보위의 판단을 놓고 국회와 정부가 대립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진지한 분석기사가 빠져 있는 것이다.

즉 정부와 국회의 주장이 대립되고 있다면 무조건 국회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전에 양쪽의 주장을 진지하게 분석한 기사를 내놓는 것이 언론의 당연한 책무가 아닌가. 특히 ‘견제와 균형의 원리’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비추어 보아 국회와 정부의 긴장관계는 자연스런 정치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안에 따라 대립할 수도 있고 협조할 수도 있는 정부-국회 관계를 언론이 다룬다면 적어도 두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분석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 단지 국회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생의 정치’이며 ‘국정 협조’인 것처럼 주장한 것은 참으로 빈약한 주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세 신문은 사설 외에도 서씨의 성향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 정치면 기사를 똑같이 내보냈다. 먼저 조선일보는 3면 ‘서동만씨의 주장들’에서 서씨가 ‘진보적 소장학자로 알려져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서씨가 서해교전에 대해 ‘군사적으로는 계획된 선제공격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우발적인 북한의 실수’라고 한 발언, ‘연방제 통일방안 수용 여지’ 발언 등을 언급했다. 동아 역시 ‘대표적 대북 포용론자’ ‘햇볕정책 옹호론자’로 규정하며 서해교전 관련 발언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세 신문의 기사 어디에서도 서씨가 ‘친북편향’이라는 국회 정보위의 판단이 옳은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은 제시되지 않았다. 세 신문 모두 양측의 주장을 그대로 나열했을 뿐이다. 특히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서씨의 친북편향성이 실제 국정원 임무 수행에 적절치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정치면의 ‘서동만 누구인가’에서는 ‘대표적 진보 소장학자’라고 규정할 뿐 자신의 사설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친북 편향’, ‘친북 좌파’라는 규정 자체가 엄밀한 정치사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색깔론에 불과한 데에 기인한다. 무엇이 친북 편향이고 무엇이 친북 좌파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자체가 없는 정치적 선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이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극우가 아니면 친북 좌파라는 식의 논리 아닌 논리, 비이성에 기반한 주장에 대해 이성적 가치판단이 개입할 여지는 봉쇄되고 만다.

그렇다면 조선과 동아는 ‘이번 인사는 당사자의 이념성향을 어떻게 보느냐 것과는 별개의 문제(동아일보의 표현이다)’라고 진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국회 반대 인사 임명은 잘못’이라는 논리를 내세운 것일까? 이들의 속내 역시 서씨가 친북 편향이라는 국회 정보위의 판단에 동조하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 ‘친북 편향’의 규정은 논리도 근거도 부족한 선동론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논리 아닌 논리를 검증해야 할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회 반대 인사 임명은 잘못’이라는 얼핏 일반론적이고 공정해 보이지만 편향된 논리에 기대 서씨 임명을 비판하는 우회로를 택한 것은 아닌가. 이런 점에서 볼 때 오히려 중앙일보 사설이 보다 솔직한 점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세 신문 모두 ‘친북 편향’ 규정이라는 논쟁의 핵심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포기 혹은 방기한 채 옹졸한 논리에 기대, 서씨 임명을 일방적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조선, 동아), 서씨를 사실상 ‘친북 편향’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중앙) 비판받아 마땅하다. 비겁한 논리에 기반한 빈약한 사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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