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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민주당 의원. 그녀는 대북송금 특검법은 반대했고, 이라크 파병안은 지지했으며, 개혁신당론은 다시 반대하고 있다. 그녀는 개혁신당론이 "구주류 타도"를 제외하고 어떤 "정신과 철학"이 있는지를 근원적으로 묻고 있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 그녀는 대북송금 특검법은 반대했고, 이라크 파병안은 지지했으며, 개혁신당론은 다시 반대하고 있다. 그녀는 개혁신당론이 "구주류 타도"를 제외하고 어떤 "정신과 철학"이 있는지를 근원적으로 묻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추미애 의원은 27일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권재창출하라고 표를 줬더니 신당을 하면서 버리고 가면 뭘로 지지세력한테 표를 얻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진정한 개혁은 구주류 타도가 아니라 제도개혁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각자 이해관계가 있는 당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개혁당' 처럼 보이려고 하면 말잔치로 끝날 수 있다"면서 "대통령 직속으로 정치개혁특위를 만들어 내년 총선 전에 선거법 등 정치개혁을 논의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2003년 4월 27일자 <연합뉴스>)

기자는 유 당선자와 추 의원의 상반된 발언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개혁당의 제안은 분명히 우리 정치가 가야 할 프로그램적 성격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당도 수십년의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만들어낸 이력이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이력은 1987년의 실패로 인해 사실상 지역구도에 함몰돼 있는 실정이긴 하다. 그렇다고 신생 개혁당의 제안이 지금 현실상황 속에서 성공가능한가를 묻지도 않고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나라의 명운이 걸려있다. 생각해보자.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는데서 발생하기 쉬운 초보적 실수가 있다. 존재하는 사실과 있어야 할 당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따라서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적 기준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실관계에 대한 다음과 같은 판단이다.

@ADTOP3@
테제1: 노무현의 당선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다.

맞는가? 틀렸다. 노무현의 당선은 기본적으로 전두환의 민정당을 계승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아닌 김대중의 '민주당'을 지지하는 호남인의 '정당감정'이 '절대적' 토대를 이루고 여기에 중부권(영남권 일부 포함)의 젊은 개혁 성향의 지지표가 합세하여 승리를 일궈낸 것이었다. 사실관계에 대한 아주 쉬운 분석이다. 그러나 여기에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이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이 아니다. 노무현의 승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하여온 낡은 정치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승리이다. 비공식적인 정치자금을 만들어 동원하는 정치에서 국민이 성금을 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정치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대한 미래의 승리이다."(조순형 의원 등 민주당 의원 23명, "낡은 정치의 청산과 새로운 정치를 열어가기 위한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한다", 2002년 12월 22일.)

민주당 의원들이 선거과정에서 자당 후보를 돕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많은 국민들의 개혁열망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위의 사실관계 분석엔 분명히 한나라당의 노무현이 아닌 '민주당'의 노무현에게 투표한 절대다수의 호남인들(말을 바꾸면 '한나라당'의 이회창에게 투표한 대다수의 영남인들)은 묻혀 있다. 왜 묻혀 있는가? 개혁파의원들에겐 그들은 지역감정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당위로써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그의 당선을 통해 개혁의 열망을 확인한 것이 사실이지만 노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지역구도를 완전히 극복하는데는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좀더 실감나게 말한다면 '노무현 후보(!)로도' 지역구도를 청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묻자. 노무현 후보의 개혁열풍으로도 청산하지 못한 지역구도가 내년 총선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가? '바람직한' 개혁신당이 출범만 하면 '바람직하지 못한' 지역구도를 노도처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럴 수 있다고 보는 건 착시현상일 뿐이다. 다음 테제는 개혁세력이 승리'해야 한다'는 당위적 열망이 개혁세력이 승리'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판단으로 바뀌어서 나타난 두 번째 착시현상이다.

테제2: 유시민의 당선은 개혁세력의 승리다.

맞는가? 또 틀렸다. 왜 틀렸다고 하는가? 민주당의 갈 곳 없는 표가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는가? 기권했거나 대체로 유시민 후보에게 갔을 것이다. 그러면 유시민 후보에게 간 민주당표는 무조건 개혁세력의 표인가? 그래서 앞으로 개혁신당과 민주잔당 그리고 한나라당 등이 경쟁하면 이 결과로 봐서 개혁신당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실제로 덕양갑에서 개혁당 유시민 후보가 거둔 승리는 신당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촉진하는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 민주당의 간판보다는 후보의 개혁성이 더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은, 민주당 내부에서의 신당에 대한 불안감을 일정 부분 덜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창선, <오마이뉴스>, 2003년 4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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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석(투표율 문제는 차치하더라도)에도 여타 두 지역구에서의 개혁당의 부진은 빠져 있다. 즉 유시민 지역구의 갈 곳 없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모두 개혁성향으로 간주되고 있음에 반해 여타 두 지역구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왜 여전히 비개혁적인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이 개혁성과는 거리가 먼 한나라당의 승리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분석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특별히 개혁을 열망하는 <오마이뉴스>의 독자들에게)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가? 반복하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당위적 열망이 그러고 있다는 존재론적 분석의 냉정함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실제로 우리의 정치상황이 지금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기자의 당위적 바람일 뿐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전환기에 놓여 있다. 수십년간을 지배해온 지역모순이 해체되고 실질적인 계층(계급)모순이 정치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전환기다. 그러나 이 이행과정을 아무리 낙관적으로 표현한다해도 지역모순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일년 안에 완전히 해체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기자는 오히려 이러한 낙관적 희망이 만들어내고 있는 착시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명히 노무현의 당선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중모순을 표출해낸 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현재의 민주당이 바로 이 이중모순의 현 단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절대다수의 민주화세력이 주도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이없게 군사정권을 연장시켜주고 3당합당을 초래케 한 1987년의 전략부재를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정리해보자. 민주당의 이중모순을 타개할 수 있는 방도는 무엇인가? 분당인가 연합인가? 연합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정당 내에서의 이질적인 세력간의 연합을 말한다. 이것이 불가능한가? 이념이 다른 정당간의 연합도 정치적으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가능한데 같은 정당에 속했던 구성원간의 연합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분당을 제안(또는 구상)하고 있는 개혁세력은 분당하여 범개혁세력의 순수한 결집이 있으면 세상을 얻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기자는 이러한 주장이 과학적인 분석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순수성에 대한 열망(예컨대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반대했던 순수성과 같은 열망)에서 나온 말이라 생각한다. 유시민은 선거전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선거구제도에서 의회 다수파 연합을 창출해내기 위한 근본적인 조건은, 현재의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완전히 혁파하는 새로운 정계개편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선거 결과를 바랄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것을 할 수 있는 세력을 저는 '진보 리버럴'이라고 보는 거예요."(<인물과 사상>, 제26호.)

보궐선거 신승 후 '범개혁세력 단일정당'을 서둘러 제안하고 있는 유시민의 개혁당. 그들의 '선분당 후대책' 제안이 진정으로 개혁세력의 앞날을 걱정해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입지를 더 걱정해서 나온 것일까?
보궐선거 신승 후 '범개혁세력 단일정당'을 서둘러 제안하고 있는 유시민의 개혁당. 그들의 '선분당 후대책' 제안이 진정으로 개혁세력의 앞날을 걱정해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입지를 더 걱정해서 나온 것일까? ⓒ 오마이뉴스 이종호
유시민 후보의 개혁당이 선거 직후 서둘러 제안한 '범개혁세력 단일정당' 건설의 열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정계개편(민주당의 분당)'이 내년 총선의 승리를 보장할 것이라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유시민은 현재와 같은 "이 소선거구제도에서(sic!)" 오히려 분당의 유리함을 말하고 있다. 책임질 수 있는 말인가? 자신의 주장이 보궐선거결과로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긴 반박을 하지 않겠다.

솔직히 말한다면 기자도 대선 직후 그런 꿈을 가진 때가 잠시 있었다. 노 대통령이 집권 후 개혁드라이브로 국민들의 공감대를 확산시켜 지역구도를 일거에 허물어뜨릴 경우 이러한 구상이 실현가능할 것이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방식을 기대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개혁으로 지역구도를 허물어뜨릴 생각없이 기존의 지역구도를 이용하여 지역구도를 극복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적 정치게임이다. 개혁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영·호남인들도 다시 지역모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상대가 지역모순을 포기하지 않는데 일방적인 개혁열망으로 지역모순을 포기한다면 이것은 아마추어적 정치 환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호남인들이 혼란 속에서 일부 호남소외론에 동조했던 이유라고 본다.

결국 이런 식의 정치게임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게 될까? 아주 천천히 지루한 과정을 거쳐서 지역모순이 계층모순으로 이행하게 되거나 아니면 아예 지역모순과 계층모순이 이중적으로 고착될 것이다. 따라서 (개혁의지가 의심받는!) 이런 정치상황 하에서는 민주당의 분당을 통한 독자적인 개혁신당의 건설이 열정만큼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 분열은 오히려 고사직전의 한나라당에게만 온전히 그 과실을 돌아가게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지난 두달간의 갈짓자 개혁행보 여파를 자세히 살펴보라. 초기에 개혁열풍의 도래를 기대했을 때 모두가 이제 지역구도는 급속히 약화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개혁이 의심받기 시작하자 한나라당과 민주당 구주류의 힘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지역모순과 계층모순은 길항관계다. 노 대통령에게서 강력한 개혁폭풍을 기대할 수 없다면 지역구도는 앞으로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어쨌거나 민주당의 분당만이 개혁세력의 살길이라고 우긴다면 기자는 다음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이루어진다는 조건하에 그를 지지하겠다. 한 가지 조건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기대난망이지만) 노 대통령이 개혁으로 지역구도를 돌파해주는 것이다. 이 경우 몇몇 보수세력이 이탈하고 어떤 형식이든 성공적인 범개혁세력의 결집이 있을 것이다. 추 의원은 이것을 "신당은 민주당의 자존심과 정체성, 혼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표현했다.

다른 한 가지 조건은 선거제도의 개선이다. 현재와 같은 선거제도가 아닌 완전한 의미의 비례대표제(간단히 말하자면 독일식의)가 실현된다면 희망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분당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를 통해 사표효과가 사라지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민주당의 분당을 전제로 하는 개혁신당이 완전한 승리를 하지 못한다하더라도 선거 후 정당간 연합을 통해 범개혁세력이 국회의 다수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광주경선 직후 승리의 환호를 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 만약 지금처럼 개혁의지가 의심받는 상황하에서 노무현 대통령까지를 포함하는 민주당의 분당이 있다면 호남의 민심이 '정치개혁'으로 받아들일까 아니면 '정치배신'으로 받아들일까?
광주경선 직후 승리의 환호를 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 만약 지금처럼 개혁의지가 의심받는 상황하에서 노무현 대통령까지를 포함하는 민주당의 분당이 있다면 호남의 민심이 '정치개혁'으로 받아들일까 아니면 '정치배신'으로 받아들일까?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치개혁은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1987년의 역사를 통해 배웠다. 지금 다시 우리는 유사한 딜레마에 빠졌다. 만약 대책없이 분당만이 개혁세력의 살길이라고 외치다 실패한다면 우리 정치는 아주 먼 과거로 기약없는 퇴행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호남의 민심이 관건으로 자리한다. 만약 호남지역에서 노 대통령을 포함하는 분당사태를 '배신'이라고 규정한다면 우리나라 지역문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유 당선자는 애초 민주당과의 연합공천 없이도 낙승을 기대하는 듯이 큰소리치다 선거막판엔 호남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으로 몰렸다. 그러고도 전략 수정없이 선거 신승 후 '선분당 후대책(무대책)'의 기염을 토하고 있다. 기자는 이 제안이 개혁당 중심의 일면적 사고이거나 아니면 (좋게 말해)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본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치게임 속에서 민주당의 표만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표도 잠식할 수 있음을 입증해보라.

결론은 이것이다. 민주당의 개혁세력은 유 당선자의 개혁당이 대구에서도 한나라당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때까지 기다려라. 그런 다음 선거제도(사표방지제도)에 대한 대책을 세워 분당하라. 대책이 없으면 추 의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당내 연합하라. 현재로선 민주당 기반을 이용하여 노무현 정부의 개혁에 최대한 압박을 가하는 것이 그나마 이 나라 정치선진화의 마지막 희망이다. 내년 총선의 승패는 분당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개혁이냐 아니냐에 따라 결판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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