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창문밖으로. 목련이 피다. 그러나 애처롭다.
창문밖으로. 목련이 피다. 그러나 애처롭다. ⓒ 숲속/김경주
감춰진 푸르름이 돋아나는 삼월 어느 날
꽃들이 나에게로 왔다.
숨을 내쉬며 바둥거리는 그 꽃들은
어릴적 내 고향 버들피리 만들던 버들강아지를 닮았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저 작은 꽃술, 저 작은 꽃잎, 저 예쁜 빛깔들
가난한 마음 응시하는 아비의 눈가엔
어느덧 서글한 이슬이 맺히고
시인은 말했던가?
꽃의 생성과 그 찬란함만 사랑하지 말고
지고난 정적과 부재 그 존재의 소멸까지도 사랑하라고
꽃이 이 세상에 고개를 내민 오늘
다시 생각하는 강함과 날카로움
아 그리고 쇠붙이
오 천부여 주신 귀한 생명에 감사드리오니
이 땅 한구석 포탄소리에 놀라
숨죽이며 글썽이는 어린 꽃들의 눈물들도 닦아주소서.
오직 부드러움으로 공간을 채우고
오직 약한 대공으로 이 세상을 엮어가기를.......
꽃들에게 희망을
더욱 연약하여 스러질 것 같은
이 시대 모든 꽃들에게 다시 희망을
(심규용 詩. 꽃들에게 희망을)


내가 활동하는 니콘클럽에서 사진 잘 찍기로 유명한 심규용 님이 계십니다. 이 분의 필명이 ‘필그림’인데 동호회 갤러리에 사진을 올리면 나는 그 사진에 흠뻑 빠져들어‘사진은 사진기로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찍는 것이구나!’ 실감하게 되었고, 그의 사진을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목련이 비를 맞고 있다. 푸른 생명이 움트다.
목련이 비를 맞고 있다. 푸른 생명이 움트다. ⓒ 숲속/김경주
그래서 언제 기회가 되면 필그림을 만나서 사진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또 한 수 지도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지난 3월 26일, 필그림이 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쌍둥이를 낳았다고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자 모든 클럽회원들이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꼭 보름이 지나서 슬픈 소식이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심규용 님이 직접 올린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당신께로 간 영혼 잠시나마 이 세상에서 만나게 하시니 감사드리옵니다.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늘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셨던 주님, 오늘 저를 당신은 한없이 낮아지게 하시고 가난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올라가 당신 곁으로 간 무죄하고 순결한 어린 영혼. 그 영혼을 지켜주시고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는 영원한 곳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이 땅에 남겨진 애비와 애미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천국에서 만나는 날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또한 이 땅 한구석 전쟁의 포화아래 울고 있는 어린 영혼들의 눈물과 그들을 잃어 슬픔으로 흔들리는 부모들의 여린 어깨를 느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을 주신 이도 당신이시고 취하신 이도 당신이십니다. 오직 천부께 어린 영혼을 의탁 드리오며 사순절 고난과 낮아짐의 삶을 살다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필그림의 쌍둥이 둘째 딸 채원이가 신생아 실에서 하나님 나라로 부름을 받고 떠났으며, 니콘 클럽에서 활동하는 저를 비롯해서 다른 목사님 신부님께 어린 영혼을 위해 중보 기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린 채원이 편안하게 눈을 감다.
어린 채원이 편안하게 눈을 감다.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니콘클럽 회원 14000명이 모두 울었습니다. 니콘클럽 게시판에는 수많은 꽃들이 어린 채원이의 영혼에게 쌓여졌습니다. 모두가 함께 아파했고 울었습니다. 하루 종일 하늘도 슬픈 듯 비가 왔습니다. 어린 채원이의 시신을 화장하고 집에 돌아와 필그림이 이런 글을 클럽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공원에 잠시 나갔습니다. 매화꽃 벚꽃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내게로 날아왔습니다. 신생아실에서 태어난 채원이를 보고 병원 화단에 핀 매화들을 찍었는데, 이제 그 꽃잎들이 어젯밤 비로 수명이 다한 것이겠지요. 꽃이 필 때 태어난 채원이는 꽃이 질 때 또 그렇게 작별을 하는군요. 이제 채원이는 주님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해마다 이 때가 되어 벚꽃이 피면 채원이 생각이 많이 날 겁니다.

(......중략) 자본주의 사회, 물질의 가치를 최고로 하여 그 많고 적음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는 세상. 어느덧 나눔이 사라지고 단절과 황폐해진 인간성으로 극단을 치닫고 오늘 현 시대를 생각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엄마아빠만이라도 좀더 돌아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채원이를 잠시 보내셨다가 데려가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믿는 게 편해서 믿는 게 아닙니다. 생각만이 아닌 실천의 삶으로 믿음을 확증하는 남은 호흡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필그림은 요즘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려서 개신교의 한사람으로서 죄송하며, 종교를 넘어서 위로해 주시고 기도해주신 분들의 고마운 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필그림의 글을 읽고 내가 목사라고 하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필그림은 딸의 죽음을 통해 비정한 이 사회의 현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세상을 품고 섬기며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신의 계시로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채원아 잘 가렴!

채원아!
잘 가렴! 엄마 아빠 얼굴을 이 땅에는 다시 볼 수 없지만
그래서 조금은 섭섭하지만 그래도 잘 가렴!
이 땅에 무슨 좋은 일이 있겠니?
어른들의 욕심으로 전쟁과 피 흘림이 그치지 않고
서로 잘 낫다고 으르렁거리기만 하는데 너는 이 땅이 싫었나보다.
너희 엄마 아빠는 너와 헤어지는 게 섭섭해서 울지만
채원아 너는 활짝 웃거라!
비온 뒤 활 짝 갠 맑은 하늘처럼 환하게 웃거라!
그래야 너희 엄마 아빠는 눈물을 그칠 것 같구나!

하늘나라에 좋은 일이 있으면 이따금 소식도 전해 주어라.
너의 엄마 아빠가 네가 잘 지내는지 얼마나 궁금하겠니.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안부를 묻곤 하지만
앞으로 네가 영원히 살아야 할 하늘나라에서는
서로 안부를 묻지 않아도 되고 이별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다고 하더라.
야, 채원아 너는 참 좋겠다.

채원아! 네가 하늘나라에 간다고 어제는 종일 비가 오더니
오늘은 비가 그쳤구나? 하늘을 보니
네가 지금 환하게 웃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잘 가렴. 그리고 거기서 잘 살아라.
세월이 지난다음 다 보게 될 텐데.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자.
안녕. / 박철 아저씨가
필그림은 오히려 한 가정의 극한 슬픔을 딛고 새로운 삶의 모색을 하게 됩니다. 그의 삶의 돌연한 깨달음은, 오도되고 전도(顚倒)된 자본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낮아지고 낮아져서 세상을 섬기는 모습으로 딸의 죽음을 승화하여 받아드리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이 참담하기도 했지만 나는 필그림의 순수한 고백을 통해 내 자신의 영혼도 깨끗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고마운 고백을 내가 살아 가야할 삶의 경구로 깊이 새겨두기로 했습니다.

어제 생각지도 않았던 우체국 택배가 왔습니다. 큰 박스에 보내는 사람이 필그림이었습니다. 그 상자 안에는 ‘헨리 나우웬’ <안식의 여정> 이라는 책과 열 권의 다른 책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내가 이런 선물을 받아야 할 자격이 있는가 생각하면서 한동안 처연(悽然)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필그림과 전화로 나눈 얘기에 의하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사직하고 아내가 대신 복직을 하고 1년 동안 대전 집에 내려가 쉬면서, 이제 두 달도 채 안된 딸 심훈이를 엄마대신 돌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씀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 주었습니다. 필그림은 사직하게 되면 부부가 꼭 한번 교동엘 오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기도란 우리가 사랑할 수 없을 때 이미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기도 중에 우리에게 계시되는 것은 '먼저 바로 사랑하신'(요일 4:19) 그 사랑이다." (헨리 나우웬. 평화에 이르는 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