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주노동자 문제를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회는 대학새내기들이 주로 참석한 가운데 2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회는 대학새내기들이 주로 참석한 가운데 2시간 넘게 진행됐다 ⓒ 석희열
이런 가운데 25일 저녁 서울 이화여대에서는 113주년 4.30 메이데이 이주노동자 학생 투쟁 기획단 'Solidarity Forever' 주최로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한 고려대 강수돌 교수의 특별 강연회가 열렸다.

자본에 의한 자립적인 생활시스템이 깨지면서 이주노동자가 발생

대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사회와 이주노동자-이웃인가, 이방인인가'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강수돌 교수는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자본에 의한 노동지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자본은 평등한 관계를 깨뜨리고 차별을 만들기 위해서 노동에 대해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개별 노동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경쟁과 분열을 부추기며, 그 결과로 차별을 하고 통제를 용이하게 한다는 분석이다.

강 교수는 "거대 자본에 의한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자립적인 생활시스템이 깨지는 것"이라며 "자기나라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관련 "우리사회에는 '삼중의 인종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인종주의적 현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묵인하거나 부인하는 '자기 기만'을 일삼고 있다"고 질타했다.

강 교수가 말하는 삼중의 인종주의란 기업가에 의한 경제적 차별, 한국인 노동자에 의한 사회적 차별, 그리고 정부에 의한 제도적 차별 등 복합적 차별주의를 말한다.

강 교수는 "이러한 삼중의 인종주의가 해체되고 지양되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강화되는 것은 한국사회 전체가 인종주의적 현실 자체를 도외시하거나 묵인 또는 부정하는 자기 기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위계시스템을 해체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희생

우리의 행복 메카니즘은 자본에 의한 경쟁 메카니즘  강수돌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는 일중독, 돈중독, 공부중독 등 중독을 먹고 산다"고 비꼬았다
우리의 행복 메카니즘은 자본에 의한 경쟁 메카니즘 강수돌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는 일중독, 돈중독, 공부중독 등 중독을 먹고 산다"고 비꼬았다 ⓒ 석희열
그는 "체불임금과 산업재해, 인권침해로 고통을 받지 않은 이들을 찾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들은 비인간적 대우와 차별적 멸시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서 "하루 220~250명의 산재노동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일하다 잘린 손가락이 해마다 트럭 두 대 분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다"라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3D업종이라도 생활에 꼭 필요한 경우, 국가적 지원을 해서라도 인간답게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부당한 차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서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며, 그래야 자본에 의한 지배 메카니즘이 바뀐다"고 강조했다.

또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위계시스템을 허물지 않고는 우리 모두가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해 개인적인 동정심이나 연대감을 넘어서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 억압의 사슬을 깨뜨려야 한다"며 "이는 형편이 나은 우리가 도와주자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과 우리는 거대한 차별과 위계의 구조 속에서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전세계의 노동시장을 자본의 지배하에 종속시키려는 WTO, 세계은행 등 세계기구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속성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월드뱅크 등에서 후진국이나 제3세계에 제공하는 차관은 이들의 자립생활구조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선진국의 잉여기술과 자본을 팔아먹기 위한 것"이라며 "세계자본이 풀뿌리 사회를 파괴함으로써 풀뿌리 민중들로 하여금 제 발로 떠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어느 나라에서든 20%는 부유층"이라며 "신자유주의가 이러한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해내고 있으며, 이는 자본에 의해 통제된다"면서 "이러한 자본의 이윤 메카니즘에 노동자가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본에 의한 분열의 경계선을 노동자 스스로 내면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인류역사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극히 일부"라고 지적하고 "자본에 의한 상품시장 경쟁 속에서는 모두가 희생을 당하고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면서 "시장경쟁이 아니라 진리·진실·삶의 질 경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허가제 도입이 이주노동자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

강 교수는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와 관련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고 노동관계법으로 외국인의 고용 취업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며 이주노동자의 자유로운 작업장이동권까지 보장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부가 추진중인 외국인 고용허가제란..?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기업이 적정규모의 외국인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서 법무부가 체류허가를 하고 노동부가 노동 및 고용허가를 하도록 되어 있으며,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 보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 국내에 취업한 외국인근로자에 대해서는 내국인과 동등하게 노동관계법을 적용하게 된다. 정부는 근로감독을 강화하여 근로조건을 보호함과 동시에 단기 취업기간(3년) 설정 등 정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법무부의 출입국관리행정을 강화하여 불법체류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상반기 국회통과 후 내년실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단순 기능인력이 부족한 대다수의 나라에서도 고용허가제 또는 사업장 이동이 보다 자유로운 노동허가제를 도입하여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해 오고 있다. 대만, 싱가폴, 홍콩은 고용허가제를,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유럽국가에서는 주로 노동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경제5단체 등 재계에서는 정부의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재계에서 주장하는 반대 이유로는 고용허가제 실시로 인해 인건비 부담 증가, 중소기업 경쟁력 상실, 국민의 실업·사회복지비용 등 사회적 비용 부담 증가, 불법체류자 양산, 외국인의 노동3권 행사에 의한 경영환경 악화 등이다.
/ 석희열
그는 "고용허가제 도입을 계기로 그 간 우리사회의 '말없는 공범관계'가 철저히 청산되기를 소망한다"면서도 "이제 더 이상 시기상조론이나 비용상승론, 노사불안론 같은 고리타분한 '자기 기만' 논리가 나와서는 안되며, 한 걸음 더 나가 노동허가제 도입으로 '노예 경영'의 마지막 잔뿌리까지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세계시민으로 거듭나는 유일한 길은 연대를 통한 자기정체성의 회복이라는 점을 거듭 상기시킨 뒤 '동일노동-동일임금-동일대우'라는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과 가진 자가 정의와 진리를 결정하는 경제주의적 사고 구조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루 12시간 넘게 강요된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 이주노동자들의 흉리가 어떠할까. 고단한 삶에 지쳐 문득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면 정다운 가족과 이웃의 환한 웃음이 못견디게 보고싶어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더하여 고향의 흙내음이 사무치도록 그립기도 하겠지-.

"가난한 자들, 가지지 못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원히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좌파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한 말이다.

한국에는 이주노동자가 얼마나 되나..?

현재 한국에서 노동활동을 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수는 37만명 내지 4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을 세 유형으로 분류해보면 첫째는 합법취업자로서 교수나 강사, 기술자 등 전문직 종사자(약 3~5만명), 둘째는 산업연수생, 연수취업자, 해외투자기업 연수생 등 연수생 노동자(약 6~9만명), 셋째는 합법체류 기간을 넘긴 미등록노동자(약 26~28만명)이다.

최근 권기홍 노동부장관의 국회답변에 따르면 2003년 4월 현재 미등록노동자(법무부에서는 이들을 불법체류자라 함) 수는 28만7천명이다. 미등록노동자 비율이 전체 이주노동자의 78%에 이른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싱가포르, 대만의 경우에는 불법체류율이 2%~7%에 불과하다.

이처럼 한국에서 미등록노동자 비율이 높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산업연수생제도에 따른 이주노동자들은 국내 근로기준법의 적용에서 배제된 채 하루 평균 12~13시간, 한달 평균 276시간을 일하면서도 임금은 7만원에서 21만원 밖에 받을 수 없는 제도적 모순과 정부의 근로감독 소홀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즉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혹독한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공장으로 도망쳐 연수생 신분을 버리고 불법체류자가 된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연수생 신분에서는 적용되지 않던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은 불법체류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적용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의 미숙함이 이들을 '불법'으로 내몰고 있다는 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