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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돼지 버크셔를 흑돼지라 합니다.
검은돼지 버크셔를 흑돼지라 합니다. ⓒ 김규환
돼지에 대한 명상

검은 돼지가 토종이라니? 어쩌면 하얗고 혹은 붉고 때론 얼룩돼지 입장에서 보면 단지 털 색의 차이일 뿐이다. 토종은 엄연히 멧돼지다. 돼지 잡을 때 보면 지가 검든, 하얗든, 붉든, 얼룩이든 간에 멱을 따고 끓는 물을 주전자로 붓고 잘든 칼로 면도질을 하면 살갗은 모두 연한 살색으로 똑 같잖은가? 검은 흑(黑)돼지는 '버크셔'라는 종자일 따름이다. 다만 흑돼지가 토종이라는 것은 한국에서 기른 지 오래되었다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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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샌, 꼬리 들어들어~, 꼬리 들어란마시!"

흰 '요크셔'와 검은 '버크셔'를 접붙이면 열에 셋은 검은 돼지가 나오는게 세상 이치거늘 누가 검다고 토종이라고 우기는가? 염소도 토종은 흑염소가 아니고 애초에는 하얀 산양이었다.(참고로 양(羊)띠의 양은 털을 생산하는 서양의 양이 아니라 산양이다.)

돼지는 괴상하게 생겼다. 뻥 뚫린 유난히 넓고 길게 나온 코(품종 개량 과정에서 코 길이는 갈수록 짧아졌다), 입은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한 몰골, 꼬리는 아예 감추고 있는 형상, 짧은 다리, 그러니 이 놈의 모양은 군더더기 없이 온통 몸집 그 자체가 살집으로 가득 차 있다.

제 아무리 먹어도 키 크는 덴 한계가 있다. 심지어 사람에게 적용하여 많이 먹어도 "돼지 같은 놈", 고집불통으로 꽥꽥거려도 "돼지 같은 놈", 키 작고 다부지게 생겨도 "돼지 같은 놈"이라 한다. 이건 돼지에 대한 모독이다. 돼지는 천부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

왜! 이놈이 사람들에게 밉보여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는 자 별로 없지만 많이 처먹고 많이 싸 아무 데나 찍찍 깔겨대는 바람에 확실히 찍힌 것이리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요놈의 돼지란 동물은 제 몸에 온갖 똥칠을 다 했으면서도 누고 자는데는 남다르다. 지켜 본 사람은 단박에 그걸 안다. 누는데 다르고 자는데 구분되어 있는 동물이 과연 돼지 말고 따로 있을까 싶다. 사람이 게으른 탓에 우리를 제대로 치워주지 않고서 돼지를 탓하는 건 문제가 있다.

돼지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요즘 생활 어떻습니까? 살만 합니까?"
"꿀꿀 꿀꿀꿀"
(우리가 사람을 포기했지요.)
"아니 왜요?"
"꿀꿀꿀 꿀꿀?"
(우리라고 청결한 것 싫어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돼지가 불결해 콜레라와 구제역을 달고 산다고 믿고 있는데요?"
"꽥! 꿀꿀꿀 꿀꿀꿀."
(말도 안되는 소리 마세요. 그게 어디 우리 탓입니까? 사람들이 욕심 부려 그렇게 집단으로 사육하고 불결하게 하니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놓고 항생제에만 의존하려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의약분업에 찬성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죠."
"꿀 꿀 꿀"
(언제 우리가 소처럼 광우병 걸린 것 봤습니까? 우리는 주인이 해주는 대로만 돌려 드립니다.)

얼룩띠를 두른 햄프셔
얼룩띠를 두른 햄프셔 ⓒ 김규환
또한 사람들이 배불러 마구 버리는 음식 쓰레기를 투정한번 부리지 않고 싹싹 먹어치우는 음식물청소기다. 구정물 속에서 밥 한 톨, 고춧가루 한 점 애써 건져먹는 돼지의 수고를 보고 말하라.

그래 놓고서 대박이나 한 번 터트려 보려고 돼지가 꿈에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게 인간이다. 돼지 꿈 꾸고 잘못 됐다는 사람 못 봤다. 꿈에 나온 돼지가 지저분하다고 하소연하거나 똥 튀겼다고 기분 찜찜해서 일어나자마자 샤워하는 사람 아직 못 봤다. 이건 싫고 저건 좋다고 분명히 말하면 되는 걸 가지고 치사하게 싸잡아서 비난하는 건 돼지세계에서는 없다.

검은 돼지 버크셔든, 하얀 돼지 요크셔든, 붉은 돼지 두록저지든, 얼룩이 햄프셔든 간에 돼지 습성은 매 한가지다. 한가지로 먹고 놀고 눕고, 필요하면 암퇘지의 경우 발정을 시작하여 석달 삼주 삼일(3-3-3) 간 새끼를 배었다가 정확히 114일 만에 "꽥꽥~" 귀엽게 우는 도야지를 생산한다.

느릿느릿 "꿀~꿀~꿀~" 주인 아들과 장난을 치던 심성 고운 돼지도 밥 한 번 제때 안 준다고 "꽥액! 꽤애액~"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뛰쳐나오려고 하는데 간 큰 아이뿐만 아니라 여자들은 부지깽이를 들고 "들어가. 들어가라니까~!" 하고 밀치고 쿡쿡 찌르고 두들겨 패보지만 달랠 길 없다.

이때 방법은 딱 한가지다. 구정물을 한 양동이 듬뿍 퍼다가 "쫘악" 부어주고 얼른 뛰어가서 몽근겨(거칠지 않은 가늘게 잘 빻아 쌀겨마저 섞인 고운 겨. 왕겨에 대비되는 말)를 한 바가지 둥둥 띄워줘야 안심이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코를 식식거리며 부글부글 거품을 품으며 입으로는 쏙쏙 소리를 내면서 맛나게 먹어치우는 착한 동물이다.

허구헌 날 먹어대기만 하고 싸기만 하는 이 돼지라는 동물은 좀체 똥 냄새가 나지 않는다. 우리를 확 열어제치고 겨우내 깔고 누웠던 똥과 구정물을 쉬쉬 불어 넘겨 까닭에 마구 뒤섞인 외양간 짚을 꺼내지 않는 한 말이다.

문을 열어주기가 무섭게 그간 부족했던 미네랄과 무기질을 섭취하느라 마당의 흙을 푸푸 불면서 다 까뒤집어 놓는다. 갇혀 있던 놈이 오랜만에 세상 구경을 나온 까닭에 궁뎅이는 보기 좋게 철렁철렁 흔들린다. 뒤뚱뒤뚱 뛰뚱뛰뚱 살래살래 꼬리를 흔들며 뾰족구두 신은 엉뚱한 아가씨가 걷는 모양을 하며 장독대든 닭이 있는 곳이든 소 외양간이든 제멋대로 움직인다. 땅을 헤집다가 막 병아리 깐 성난 암탉에게 접근하여 된통 당하고는 이번에는 외양간에 가서 소다리를 문질러 성가시게 하면 부사리 황소에게 떠받치고는 놀라 다시 마당으로 나온다.

무슨 냄새를 맡았을까요?
무슨 냄새를 맡았을까요? ⓒ 김규환
돼지의 재미나는 섹스

웬만한 동물은 때가 되면 발정을 한다. 주기가 약간 달라 한우와 젖소, 말이 가장 길다. 돼지는 날짐승보다는 길고 몸집이 큰 초식 동물보다 짧다. 또한 순간의 절정을 매일 보았던 암탉은 달걀을 하루에 한 개 낳는 걸로 보답을 한다.

유일하게 발정기가 없는 것이 사람이니 그건 사람이 직립보행과 정상체위가 굳어지고 나서 그리 되었다는 설과 달거리 때 배란기가 바로 발정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느 동물이나 암컷이 번식을 할 시기 즉 임신 시기가 되어야만 발정을 하는데 비해 인간의 그것은 매달 이어지니 여성 입장에서 보면 매우 귀찮은 일이고 고역을 치르는 것이리라. 생태적 입장에서 보면 자연과 멀리 떨어진 생활을 줄곧 해왔던 사람이 임신이 잘 안되기 때문에 주기를 짧게 해서 생식능력을 보충해준 신의 배려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돼지는 한 배에 8-9마리, 많을 때는 열 마리까지 낳는다. 그래서 임신 이후 젖꼭지가 불어나는 숫자에 따라서 새끼가 나온다는 말도 있었다. 예전 개량이 덜 된 버크셔는 체중이 보통 90kg 150근이 되면 잡아먹는 기준이 되었으나 요즘에는 몸집이 훨씬 커져서 150kg 전후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요즘은 110kg 정도 되는 10개 월령(月齡) 암퇘지를 인공수정에 의해 교미를 하지만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집에서 한 두 마리, 많게는 열 마리 정도 소량으로 기를 때는 직접 접붙이기까지 해야 했다. 대개 발정은 21일 간격으로 반복되며 발정기간은 2.5일이다.

돼지는 발정이 시작되면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울어댄다. 마치 미친 듯이 우리 안을 쏘다니며 어쩔 줄 몰라한다. 밤낮 없이 울어대는 통에 집안이 평온할 리 없다. '왜 환장하게 혼자 두냐?'며 뭔가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하게 항의하고 급기야 우리를 뛰쳐나오는 것은 물론 사납고 포악해진다. 신체적 변화도 뚜렷하다. 암컷의 물건에서 암내 났다는 신호로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쉼 없이 흘러내리고 발갛게 충혈되어 탱탱 불어 오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나 발정 났소. 어찌 할 거요. 얼른 조치하시오' 하고는 수컷과 합방을 요구하며, '저 문만 확 열어주면 되겠구만….'하고 바라지만 교배 적기가 아직 아닌지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발정시작 후 24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이래도 사람들은 살림살이 늘어나는 경사를 맞이하여 3일쯤은 참아낸다. 곧 어른들은 읍내 오일장 약국에 가서 약을 사오는 등 긴장 상태에 들어가지만, 아이는 이걸 구실 삼아 공부 팽개치고 돼지와 노느라고 정신없다. 어른들이 소 다음으로 애지중지하며 기르는 '가보2호'에게 부지깽이나 삼지창을 들고 와서 암컷 거시기에 대고 툭툭 찔러대는 못된 놈들도 있었다.

새끼를 내려면 옆방에 수컷을 같이 기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 수컷도 옆집 아가씨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암컷보다 이르게 성징(性徵)을 보이는 수컷은 나사못 같이 생긴 20cm 쯤 되는 긴 드릴형(形) 물건(글쓴이 註: 소와 개 등은 일자형이다)을 밖으로 내었다 안으로 집어넣었다 피스톤 운동을 손도 없이 잘도 반복한다. 집요하게 그 행위에 빠진 수컷은 기어이 하얀 뜨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드디어 하루가 지났다. 아버지께서는 장화를 신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셨다. 반가운 건지 참을 수 없어서인지 돼지가 아버지 옆으로 다가와 물려고 한다. "호랭이 물어갈 년이 어딜 물어!"하고 툭 발로 차버려 밀쳐 놓으면 잠시 온순해진다. "넷째야, 도치 갖과라" 하셨다. 도끼는 옆 우리를 터 주기 위해서다. 손에 쥔 '빠루망치'로 못을 빼고 도끼로 나무를 툭 쳐서 밀어낸다.

그 때였다. 건넌방에 있던 수컷이 "꽥꽥" 소리를 지를 겨를도 없이 쏜살같이 아버지 쪽으로 돌진했다. 그걸 예상한 당신이 몸을 살짝 피해주었기에 망정이지 큰일날 뻔했다. 비켜주자 속도를 약간 줄여 암놈 옆으로 다가선다. "흠흠~ 흠흠흠~" 암내를 맡고 접근하지만 쉬 암컷이 허락할 리 만무하다. 이러기를 서너 차례 했을까? 첫 시집가는 자리라 아무 경험 없는 암컷은 부끄러워서 그런지 거푸 거부한다. 수컷을 물기까지 한다. 지켜보던 형제들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암컷이 더 큰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컷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사나운 맹수로 바뀐다. 아무도 어찌 해 볼 수 없다. 자칫 한눈 팔다가는 피투성이 수컷을 발견하게 된다. 지들끼리 알아서 동물적 본능을 잘도 알아서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돼지 세마리
돼지 세마리 ⓒ 김규환
마침 그 때 아버지께서 결단을 내리셨다. 달리 길이 없었다. 21일을 다시 기다려 또 한번 이런 일을 치를 수는 없다. 묶어 놓고 할 수도 없고 사람들이 달려들어 붙들고 강제로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암컷 스스로 뒤로 넓적한 엉덩이를 살래살래 흔들며 후진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말래 한 삐짝에 가서 약 갖고 오니라."

얼른 달려가서 세 알이 든 약 봉지를 가져다 드렸다. 형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좁은 돼지 막에 사람 셋까지 들어가니 꽉 찬 느낌이다.

"잘 잡아라와."
"예."

둘이서 뒷다리를 잡고 아버지는 돼지 아가리를 벌려 세 알을 강제로 먹였다. 그것은 '*요힘빈'이었다.

1분 여 흘렀을까 요상한 일이 벌어졌다. 밀쳐내던 암컷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몸에 불이 붙고 '내 마음 나도 몰라' 상태가 되어서인지 온순해지고 뒤로 살살 엉덩이를 젖히며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눈은 몽롱한 상태 바로 그거였다. 꼬리를 서너 바퀴 둘둘 말아 또아리를 틀어 기분이 좋다는 신호를 수컷에게 보낸다.

힘이 떨어질 무렵 약물의 도움으로 황홀경에 도달한 암컷과 수컷이 한 몸이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암컷이 나대지도 않았다. 수컷이 한 두번 굴림을 하고 나서 암컷을 딛고 탁 차고 올라섰다. 이내 암컷은 어미가 되어 콜콜 잠에 떨어지고 만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지켜보느라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줄도 몰랐다. 무릎 아래까지 온통 돼지 똥으로 범벅이 되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가마솥에 물을 데워 커다란 통에 물을 가득 부어 목욕을 하고 소죽 쒀주고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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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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