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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경원하 박사. 사진은 경 박사가 지난 65년 당시 재직했던 현 강원대 전신인 춘천농과대학 졸업앨범에 실린 것이다.
북한을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경원하 박사. 사진은 경 박사가 지난 65년 당시 재직했던 현 강원대 전신인 춘천농과대학 졸업앨범에 실린 것이다.
최근 호주 일간지에서 서방에 망명한 것으로 보도한 '북핵 과학자' 경원하(75) 박사는 과연 핵 물리학자인가. 또 경 박사가 실지로 북한의 핵개발에 관여했다면 어느 정도,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경 박사의 학문 경력, 입북 이후의 활동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거나 서로 엇갈리는 주장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 박사가 북핵 개발과 관련됐다는 주장도 '영변의 원자로 설계', '핵탄두 기폭장치 개발' '플루토늄 추출에 기여' 등으로 구체적인 내용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전시 유성구 소재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석호천(59) 박사(핵물리학 전공)는 캐나다 맥길대학에서 경원하 박사와 함께 공부를 했다.

석 박사는 2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경 박사는 맥길대학 공과대학 기계과에서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면서 응용역학의 한 분야인 '충격파' 관련 논문을 썼다"며 "북한에 들어가 핵 관련 공부를 했는지는 몰라도 캐나다에서는 핵과 관련된 일에 종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석호천 박사 "경 박사는 기계학 전공...핵물리학 전공안했다"

맥길대학 도서관 홈페이지(www.library.mcgill.ca)에서 찾은 경 박사의 학위논문 제목은 다음과 같다. 1969년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은 'A numerical description for spherical imploding shock waves'(구면 폭발 충격파에 대한 수치해석)이고 1972년에 쓴 박사학위논문은 'A theoretical study of spherical gaseous detonation waves'(구면 가스 폭발파의 이론적인 연구)다.

이곳에는 경 박사의 논문 제목만 있을 뿐 내용은 실려있지 않다.

맥길대학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찾은 경원하 박사의 논문 제목. 공과대학 도서관에 그의 논문이 보관되어 있다.
맥길대학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찾은 경원하 박사의 논문 제목. 공과대학 도서관에 그의 논문이 보관되어 있다.
다음은 석호천 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경 박사를 어떻게 만나게 됐나
"나는 1969년 9월부터 1971년 9월까지 2년간 몬트리올의 맥길대학에서 핵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때 경 박사를 만났다. 그가 핵공학자라는 보도가 있던데 맥길대학은 핵공학과 자체가 없다"

- 경 박사의 전공은
"일부 언론에서 경 박사가 핵물리학을 전공하고 맥길대학에서 교수를 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는 공과대학 기계과에서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면서 충격파 관련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을 썼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컴퓨터를 이용해 응용역학의 한 분야인 충격파를 수치해석하는 연구를 했던 것 같다."

- 경 박사의 졸업 뒤 행적은
"대학 졸업 뒤 교수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캐나다의 일반 회사에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입북하기 전 캐나다에서 핵 관련 일에 종사하지도 않았고 북한이 초빙할 정도로 핵물리학자로 이름을 날린 것도 아니었다."

- 그런데 왜 북핵 개발의 주도자라는 말이 나오는지
"차분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니까 혹시 북한에 들어간 뒤 열심히 공부해서 핵 관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전공이 충격파 관련이니까 혹시 핵폭탄의 기폭장치 개발과 관련해 자신의 지식을 응용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보도가 상당히 과장된 것 같다."

- 경 박사가 미국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핵폭탄 개발에 참여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경 박사로부터 "브라질로 이민왔다가 다시 캐나다로 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미국에서 살았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1965년 브라질로 이민간 그가 1969년 맥길대학에서 석사논문을 썼는데 언제 로스앨러모스에서 근무할 수 있었을까? 시간적으로 무리한 것 아닌가?"

- 경 박사의 입북경위를 알고 있나
"고향이 이북인 그는 1972년 김일성 회갑을 맞이했을 때 초청을 받아 가족을 만나고 싶어 북한에 갔다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뒤 캐나다 관계당국에 불려가 조사도 받고 직장도 잃고 했던 모양이다. 아마 이런 문제 때문에 북한에 완전히 들어간 것 같다. 북한에 정착한 시기는 1970년대 중후반 인 것 같은데 나도 정확하게 모르겠다."

국내 북핵 전문가들 "정보가 없어 할 말이 없다"

국내의 내로라 하는 북핵전문가들은 "경 박사에 대해 정보가 없어 할말이 없다"는 아주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국방연구원 김태우 박사는 "나는 경원하 박사에 대한 자료가 없다. 그래서 그가 북핵개발과 관련되어 있는지 아닌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단 그는 "외국 기자들로부터도 많은 전화를 받았는데 그들은 경 박사가 북핵 개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의심을 품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가 소개해 준 정옥임 KBS 해설위원도 "경박사에 대한 자료가 없어 뭐라고 말 못하겠다"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소의 원자력통제기술센터(TCNC)의 한 연구원이 강력하게 추천해 준 김병구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재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에서 기술협력 분야 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 박사에게 경 박사의 역할에 대한 아는 지 문의했으나 그는 "나도 관심이 아주 많지만 아는 바가 없다"는 답장 이메일을 보내왔다.

결국 국내의 유명 북핵 전문가들이 '경 박사가 북핵 개발과 관련이 있다 없다 뭐라고 할말이 없을 만큼' 그는 이제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럼 어떻게 경 박사가 '북핵 개발의 핵심인물' 또는 '북핵 개발의 주도자'라는 식으로 국내 언론에 소개될 수 있었을까?

현재 언론들이 경 박사의 역할을 언급할 때 주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월간조선> 1990년 4월호의 보도와 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윤여길 박사의 주장이다.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현 <월간조선> 대표)가 1990년 4월호에 보도한 경원하 박사 관련 기사.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현 <월간조선> 대표)가 1990년 4월호에 보도한 경원하 박사 관련 기사.
조갑제 기자 "나도 듣고 쓴 것...따로 더 취재한 것 아니다"

<월간조선> 1990년 4월호 기사는 조갑제 기자(현 <월간조선> 대표)가 썼다.

<한반도의 핵게임-북한의 원폭개발과 남한의 대응전략> 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부제 가운데 하나가 '입북(入北)한 원폭전문가 경원하 박사의 역할'이다. 그 만큼 그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35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기사에서 경 박사가 언급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미국 정보팀이 1981년 한국 고위층에게 보고한, 북한이 짓기 시작했다는 영변의) 연구로가 캐나다식이라는 것과 관련, 한국의 관계 기관에서는 재미 핵공학자였던 경원하씨를 주목하고 있다. 경씨는 미국 뉴 멕시코주에 있는 국립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핵폭탄 제조에 참여하였으며, 캐나다 맥길대학 교수로 일하다가 1974년쯤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경씨는 캐나다에서 만든 연구로에 관한 자료 등 많은 기술자료를 갖고 들어갔고, 이것이 북한 핵개발에 급피치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3일 조갑제 기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오래된 것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국방부 쪽의 연구원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쓴 것같다. 경 박사에 대해 따로 더 취재한 것도 아니고 해서 현재로서는 그가 얼마나 북핵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김기자의 취재결과가 나오면 오히려 내가 당신한테 물어봐야 될 입장이다"

<월간조선> 기사는 '영변의 원자로가 천연우라늄 연료, 흑연감속제, 중수냉각식이라는 분석도 있다'며 이를 캐나다의 NRX형 원자로(중수로)와 연결시켰다. 이 때문에 캐나다에서 공부한 경 박사가 NRX형 원자로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입북한 것으로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원자로는 5메가와트급(1979년 건설 시작, 86년부터 가동, 94년 이후 가동 중단)으로 천연우라늄 연료, 흑연감속제, 가스냉각식이다. 오히려 영국의 초기 원자로 모델과 비슷하기는 해도 캐나다의 NRX형 원자로와는 상관이 없다.

미 국방관련 잡지의 보도, 아직 응답없어

경 박사를 북핵의 주요인물로 소개한 보도는 해외에서도 있었다. 미국의 국방잡지 'Defense & Foreign Affairs Strategic Policy' 1994년 7월호는 북한의 핵개발을 다룬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경원하 교수는 영변의 가스냉각식 30~50메가와트 원자로 및 이를 플루토늄 추출용 시설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과학자 가운데 하나다"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관련 원문:In September 1980, the DPRK began construction on a then 30mw gas cooled reactor, a configuration extremely efficient for producing plutonium. Most construction was completed in 1984, and the reactor was activated in February 1987. The US-educated Prof. Kyong Won Ha is one of the key scientists and engineers behind the 30-50mw reactor in Yongbyon and its configuration into a source of plutonium.)

기자는 지난 21일 이 잡지에 이메일을 보내 기사의 신빙성과 출처에 대해 문의했다. 그러나 24일 현재까지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윤여길 박사 "원래 추정이었다. 이제 그의 망명으로 사실임이 증명됐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유도탄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윤여길 박사의 주장은 좀 다르다. 윤 박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경 박사가 북한의 원자로 건설이나 플루토늄 추출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핵폭탄 기폭장치 개발의 핵심인물"이라고 밝혔다.(<관련기사> 참조)

지난해 원자력통제기술센터(TCNC)가 내놓은 <북핵기술총서> 3권에는 이승기, 도상록, 한인섭 등을 북핵 개발의 3대 주도자로 소개하면서 끝에 경원하 박사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월간조선> 1990년 4월호에 소개된 바와 같이 경원하는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과 카나다 맥길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핵폭탄 제조기술의 핵심기술인 가스폭발분야를 전공하였다. 카나다 중수로 설계기술 자료를 가지고 1972년 7월 입북하였다."

원자력통제센터 "우리도 <월간조선> 참고했다"

이에 대해 원자력기술통제센터(TCNC)의 최영명 실장은 "이 내용은 당시 책을 만들던 위탁 연구원이 <월간조선> 등을 참고해 적어 넣은 것"이라며 "우리도 경 박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최 실장에게 경 박사의 학위논문 제목을 말해줬다. 그러나 그는 "논문 내용을 읽고 분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목만 보고 핵폭탄 기폭장치 개발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경 박사가 북핵 개발의 주도자라고 언론들이 인용했던 근거 자체가 상당히 미약한 셈이다.

<월간조선>의 보도 가운데 '경 박사가 핵공학자로 맥길대학 교수를 지냈다', '영변의 5메가와트급 원자로가 캐나다의 NRX형 원자로라는 분석이 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경 박사가 로스앨러모스 연구원이었다는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윤여길 박사도 그가 직접 경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제목과 내용을 훝어보고 추정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경 박사 망명설 보도로 사실로 확인되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럼 경 박사가 북핵 개발과 관련되었다는 최종 출저는 어디일까?

최종 근거는 미 정보기관이 확보하고 있나?

경 박사의 망명설은 지난 19일 오스트레일리아 신문인 <위크엔드 오스트레일리언>을 통해 보도됐다. 경 박사 망명설 기사를 쓴 마틴 추로브 기자는 지난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경 박사가 북핵 개발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 정보기관 소식통이 '경 박사가 영변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까지는 추로브 기자가 '미 정보기관의 소식통'이 경 박사가 북핵 개발의 책임자였다고 말한 것이 최종 근거다.

현재 미국 정부는 경 박사 망명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위 신문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는 상태다. 단, 경박사의 망명 자체에 대해서는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는 상태'다.

무엇보다 그의 망명이 사실이라고 할 지라도 만일 북핵 개발과 관련이 없다면 사건의 의미는 아주 줄어든다. 이제는 흔하게 발생하는 숱한 탈북 사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미국 정부가 속시원하게 진상을 밝히던지 아니면 마틴 추로브 기자의 후속 보도를 지켜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위크엔드 오스트레일리안>기자 "미 정보기관이 경 박사 북핵 주역이라고 했다"

마틴 추로브 기자는 지난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경 박사가 북핵개발의 주도자라는 말을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들었다"며 "이달 말에 한번 더 후속 기사를 쓸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어떻게 망명사실을 취재하게 됐나?
"6주전 중국 베이징의 서방 소식통으로부터 망명 뉴스를 처음 듣고, 취재에 착수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 호주 전역과 미국(워싱턴), 아시아를 다녔다."

- 누가 망명사건을 주도했나
"탈북을 원하는 망명자들의 희망과 북한 핵정보를 파악하려는 서방 측 필요가 맞아떨어져 망명이 성사됐다. 북한사람 20여명이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에 걸쳐 3-4명씩 북한을 탈출했다. 이들은 3개의 경로를 통해 두만강을 건넜는데, 일가족을 잃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것으로 들었다"

- 탈북자들이 왜 한국 정부와 접촉하지 않았나?
"망명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북핵 관련 정보가 너무 민감하다고 판단해 서방국가들과 접촉한 것으로 안다"

- 북한은 인민들의 생활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이들이 어떻게 엄중한 감시망을 뚫고 서방으로 망명할 수 있었나?
"북한은 아주 부패한 사회다. 망명자들은 탈북과정에서 고비고비마다 북한 관리들을 돈으로 매수해 성공했다."

- 현재 그들의 위치는?
"망명자 중 3명은 미국에 있다. 나머지는 동남아 국가에 머물러 있다. 일부 군 고위간부들의 신원도 알지만, 현재로서는 그들에 대해 얘기해줄 수 없다. 이번 달말 정도에 한번 더 후속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 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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