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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일자 신문에 실은 캠페인 광고
동아일보 19일자 신문에 실은 캠페인 광고 ⓒ 류종수
한달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벌어졌을 때 미국을 대신해 이라크 땅에 쏟아질 첨단무기를 선전하며 전쟁을 지지하던 보수신문들의 보도내용 중 일부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서도 이들 신문은 일방적으로 미국의 시각에서 '전쟁 생중계'식 보도를 해왔다는 지적과 그 선정성에서 스포츠 신문을 능가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보도에 열올렸던 이들 보수 신문에 대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의 모니터 결과는 이를 증명해 준다.

'선정성과 미국 시각 두드러져', '첨단무기 소개만 열을 올리는 조선·중앙', '전쟁의 참상 외면', '종군기자는 미국기자?', '이해득실에만 초점을 맞춘 '경제보도''(이상「이라크 전쟁」관련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모니터 보고서(2003.3.25)의 내용일부)

병주고 약주는 신문들

조선일보는 4월 11일자에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이라크에 의약품을 보냅시다'라는 캠페인을 벌인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4월 11일자에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이라크에 의약품을 보냅시다'라는 캠페인을 벌인다고 발표했다.
이런 지적을 받아왔던 이들 신문이 이제는 백의천사로 이라크 땅에 뛰어들겠다고 나서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다름 아닌 조선일보의 "이라크 전쟁난민에게 의약품을 보냅시다"(http://sos.chosun.com), 중앙일보의 "이라크 국민을 도웁시다"(자원봉사자, 구호금품 긴급모집), 동아일보의 "이라크 어린이에 희망을" 등의 캠페인이 바로 그것.

조선일보는 "인간의 생명은 인종과 국가, 종교에 상관없이 고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촌의 일원입니다"면서 "이라크 국민들에게 보내는 의약품은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리는 이웃사랑의 작은 실천이고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소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고 자체적으로 만든 성금 전용 게시판에 적고 있다. 기존의 전쟁보도 태도와는 판이한 언사들이다.

조선일보사는 현재 '4월 11일부터 5월 30일까지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이라크 국민에게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보내는 운동을 펼친다'면서 다른 언론사와는 달리 예금주가 조선일보인 자체 계좌번호로 성금을 받고 있다.

이어 조선일보는 13일 사고란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함께 이라크 현지로 민간의료진을 파견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사도 실었다.

중앙일보는 11일부터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와 난민구호활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11일부터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와 난민구호활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 류종수
동아일보는 지난 4월 19일에 '이라크 난민 돕기 시민네트워크'와 함께 성금모금운동에 나선다고 1면 사고란에서 밝혔다. 이후 21일자 신문 사고란에는 '이라크 어린이에 희망을'이라는 새로운 캠페인을 유니세프와 함께 한다고 다시 실었다.

중앙일보도 지난 14일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과 함께 성금모금을 하면서 더불어 이라크 현재에서 의료활동을 할 자원봉사자도 모집한다고 밝혔다. 세 개 신문사 공히 이전의 전쟁 보도태도와는 어울리지 않게 난민구호활동에 한 발 걸침으로써 '인간의 얼굴'을 한 신문임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분명 이들 메이저 신문들이 여러 단체들과 함께 구호활동을 펼친다면 기존의 반전평화운동단체가 자체적으로 벌이는 활동보다는 운동의 파급효과 면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많은 단체들이 이들 신문과 공동으로 구호사업들을 펼치려 한다는 것을 무작정 비판할 수도 없다.

'인간의 얼굴을 한 신문으로 봐달라?'

문제는 이들 신문들이 그들이 지금까지 보인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실효성 있는 구호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점이다.

지난 2월부터 반전운동의 한 부분으로 '이라크 어린이에게 폭탄이 아니라 의약품을'이라는 캠페인을 벌여왔고 4월 12일에는 의료진 2인을 이라크 평화지원연대와 함께 요르단 암만으로 파견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들 신문의 이번 활동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변혜진 기획부장은 "지난 2월부터 한 달이 넘게 다방면으로 알아봤는데 이라크 현지로 의약품을 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면서 "이제 와서 갑자기 구호활동을 하겠다는 조선일보가 확실한 경로도 파악하지 않은 채 모금한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도 없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는 구호활동에 편승해보려는 전술적인 판단을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라크보건의료연대 소속 김해룡(인의협 공동대표), 정성훈(건치 사무국장)씨가 이라크평화지원연대와 함께 요르단으로 지난 12일 출국했다.
이라크보건의료연대 소속 김해룡(인의협 공동대표), 정성훈(건치 사무국장)씨가 이라크평화지원연대와 함께 요르단으로 지난 12일 출국했다. ⓒ 보건의료단체연합
이들 신문들이 진정으로 이라크 난민을 도울 의지가 있다면 현지에서 계속 활동해 오면서 이라크 현지와 접촉이 가능한 실체적인 단체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모금한 돈은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만 실효성 있는 구호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와 함께 민간의료진을 파견하기로 했다는 대한의사협회 한 관계자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아직 새 집행부가 꾸려지지 않아 자세한 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5월 19일 1차 의료진을 파견할 예정이다"면서 "현재까지 9명의 의료진이 지원한 상태이고 오늘 경기도 의사회 의료진과 함께 한 명의 의협 의료진을 요르단으로 파견했다"고 밝혔다.

현재 경기도의사회(회장 정복희)와 글로벌케어(이사장 김병수 포천중문의대총장), 경기도(도지사 손학규)가 공동 기획한 이라크 난민 의료지원단 선발대가 21일 출국한 상태다.

이 관계자는 또 "이라크에 의료진을 파견하기 위해 현재 미군과 외교부, 국방부와 협의를 하고 있지만 현지가 아직도 무정부 상태라서 비자발급 등의 문제가 있어 의료진 파견에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반면 한겨레신문과 함께 지난 3월 28일부터 '이라크 어린이에게 의약품을'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보건의료단체연합 소속 의료진 2명은 요르단 현지에서 구입한 의약품 5천만원 어치와 생수 6t을 가지고 17일 바그다드에 들어가 의료활동을 벌였고 22일 2차 의료진이 다시 바그다드로 들어갔다.

고무·찬양할 수 없는 미담의 역설

보건의료단체연합 변혜진 기획부장은 "이라크 난민 지원 운동은 오래 전부터 여러 민중단체와 학생들이 벌여온 반전평화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뤄져야한다"면서 "전쟁을 옹호한 이들 신문이 마치 이전부터 전쟁의 피해를 걱정해 왔다는 것처럼 구호활동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그 취지가 올바르다 하더라도 기가 막히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물론 전쟁으로 인한 이라크 국민들의 참담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구호 활동은 분명 고무·찬양해야 한다는 것이 변 부장의 생각이다. 더 많이 선전하고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모으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쟁옹호자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보이며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자고 한다면 '병주고 약주는 식'의 행태와 다름없지 않을까? 전쟁의 와중에 힘없이 죽어갔던 이라크 어린이보다는 린치일병의 구출 작전에 더 환호했던 이들 보수 신문의 이번 캠페인을 마냥 아름답게만 봐줄 수가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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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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