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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승용차를 타고 떠나려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 노 대통령.
지난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승용차를 타고 떠나려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 노 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만찬회동을 갖는다. 한나라당은 24일 있을 세 곳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전략이라면서 연기하라고 요구했다. 청와대측은 정치 얘기를 안할 것이라고 야당의 예봉을 피했지만 단 둘의 만남에서 어떤 말들이 오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우선 북한-미국-중국의 베이징 3자회담과 5월 초 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주로 통일외교 문제가 화두가 될 것은 거의 틀림없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최근 노 대통령의 국내 정치와 관련된 고민과 불안이다. 그런 심경을 자신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최근 "국민의 정부를 보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실패의 과정들이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돼 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불안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문화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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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노-김 회동'의 화두는?

"병문안...안타깝다" vs "환자가 찾아가는 병문안?"
노 대통령 - DJ 만찬 회동 논란

청와대측은 22일로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만찬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데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21일 수석·보좌관회의 시작 전 "전직 대통령이자 원로 지도자에 대한 병문안인데 자꾸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면서 만찬 성사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문 비서실장은 "(DJ가) 괜찮다는 보고를 받고 대통령께서 병문안을 지시해 내가 박지원 전 실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미 퇴원했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다시 유인태 정무수석이 김한정 비서관에게 전화를 해 (노 대통령이) 가겠다고 했더니, '오시게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다'라며 '(DJ가 청와대로) 오신다'고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병문안 성격인데 너무 정치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며 "그런 시각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어제에 이어 연 이틀 관련 논평을 내고 이번 만찬은 재보선용이라며 만찬을 연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박종희 한나라당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구구한 해명이 나왔지만 상식선에서 생각해달라"면서 "병문안을 간다고 했는데 환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찾아오는 것은 처음 봤다"고 비판했다. / 이병한 기자
노 대통령은 예컨대 인사문제의 편중과 난맥에 대한 지적, 개혁에 대한 진보와 보수 양진영의 각기 아전인수적 비판, 또 측근들이 비리연루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 등이 그렇다고 적시했다. 그래서 그가 반면교사로 삼은 그런 실패들에 대해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김 대통령에게서 종합적인 조언을 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새 정부의 첫 인사에서 호남 소외론이 제기된 데 대해 의견을 구할 것이다. 호남 민심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김 대통령이 체험적 감각을 가졌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 문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또 여당과 대통령의 거리 조정도 노 대통령으로선 쉽지않은 과제 중 하나다. 김 대통령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임기 1년여 전에 당적을 버렸지만 노 대통령은 완전 자의로, 또는 정당 개혁의 일환으로 당을 떠날 수도 있어 보인다.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여기서 노-김 대화는 의견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대북정책에서 기밀보호와 투명성을 놓고 입장 차이가 있을 것이다. 큰 방향과 목표는 동질적이라 해도 국민의식의 변화와 시대상황에 따라 실천방법에서 차별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특검법 공포는 그런 생각에 바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문제로 여권내 친노 세력 내부에서도 갈등이 일었다. 그가 자신을 지지해 온 진영에서 문제가 생겼음을 드러낸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보수 세력의 저항에 대한 설득과 극복에는 자신감을 보였다. 오히려 변화와 개혁을 유도하는 쪽의 마찰과 갈등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한다고 토로했다.

그의 불안감이 클수록 그것은 완벽주의의 반증 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대통령의 완벽주의는 그런대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동기유발 요인도 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그런 목표 성취를 돕기 위해 정부 각료나 청와대 비서진이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여부가 문제다. 새 정부가 창의적 비전을 찾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오케이다. 하지만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한다면 곤란하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새 비전이란 두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하나는 전 정부의 업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창의적 재정립을 도모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낡은 정책의 완전 청산과 대안 제시다.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와 같은 당에서 탄생했다 해서 모두를 계승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책 사안별로 두 가지 방식을 혼용해야 한다. 바람직하고 성공적인 정치유산은 그것을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들은 과감하게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대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 분류를 제대로 하는 것이 개혁의 성패에 관건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비전으로 나는 주저없이 동북아 프로젝트를 꼽고 싶다. 그것은 과감한 북한의 재건 지원계획에 바탕한다. 북한 경제를 일으키는 북한판 마셜플랜이라고 했지만 '노무현 플랜'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동북아의 잠재적 역동성은 미국의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일찍부터 강조돼 왔다.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가 긴밀히 교류할 때 얻어지는 물류 소통과 경제적 가치는 엄청나다. 또 시베리아의 무진장한 천연가스와 산림자원도 개발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해서 그 자원개발에 공동진출하면 좋을 것이다.

남북한 철도가 연결되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철의 실크로드를 이룬다. 이런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경우 한반도는 동북아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북 교류협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런 장미빛 플랜은 허상에 불과할 것이다. 노 정부가 김 정부의 대북정책을 발판으로 삼아야 할 이유다.

영국에서 2차대전 후 집권한 노동당이 이룩한 복지국가 정책은 1951년 정권교체로 들어선 보수당 정부에 의해서도 그대로 계승됐다. 또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소속이지만 보수당의 대처 정부가 이루어놓은 노동조합 통제정책을 그대로 승계했다. 영국적 컨센서스라는 정치적 전통이다.

우리에게 민족문제인 대북정책이야말로 정파를 초월하는 전형적인 컨센서스에 해당한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국제사회에 남한을 투자 안전지대로 인식시켰다. 그것이 IMF관리사태를 조기에 종식시키는데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외국기업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환경조성에는 재벌개혁이 또한 큰 몫을 했다.

그런 점에서 김 정부의 재벌개혁도 계승할만한 정책으로 꼽힌다. 김대중 정부의 정책 중 완전히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것은 인사, 정당개혁, 그리고 언론개혁이 아닌가 한다. 언론개혁의 경우 목표는 옳지만 정책입안과 실천이 잘못됐다.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정책은 발전적 계승...인사, 언론 정책은 차별화

지난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단상에 선 노무현 대통령.
지난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단상에 선 노무현 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 정부가 김 정부와 대북정책에서 차별화한다면 정책집행의 투명성과 국민 지지를 중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투명성 원칙은 대북 비밀송금을 밝히기 위한 특검법안을 받아들이면서 확고해졌다. 대북관계에서 비밀보호 보다도 투명성이 더 강조됐다.

거기다 노 대통령은 북한 핵이 해결된 후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남북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연계시킨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다. 김 정부의 사안별 분리대처와 차별화된다. 보수층에서는 반길만한 내용이어서 국민 지지를 넓히기엔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하는 것은 북측의 수용 여부다. 북한의 반발이 심해서 남북대화 축에 손상을 준다면 그것은 방법론의 차별화가 아니다. 곧 대북정책의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북정책에서 그런 근본적 차별화를 결행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북한핵 해결을 위한 다자회담의 예비회의에 우리가 배제된 채 북한-미국-중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그런 적신호다. 북한이 남북 장관급회담을 제의해 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이 중재하는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남한이 크게 반발할 경우 미국과 중국도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남북대화를 하면서 북미협상 테이블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남북대화는 경제협력의 창구 기능만 하고 정치군사적 의미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새로운 남북정상회담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여기서 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은 '북한 핵이 해결된 후'라고 말한 대목이 또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와 차별화를 보이려면 그것은 인사정책, 언론개혁, 정당 민주화가 우선이다.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정책은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대상이다.

김 정부가 과감하게 못했던 북한 재건지원과 그것을 발판 삼은 동북아 중심역할 구축에 성공하면 노 정부는 훨씬 돋보일 것이다. 그것은 노 정부가 시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얻어진 차별화다. 뿐만아니라 정권 간의 경쟁적 차별화를 뛰어 넘는 역사발전의 열매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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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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