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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야만행위를 규탄하는 모임
문화적 야만행위를 규탄하는 모임 ⓒ 황평우
내가 문자를 알고 역사와 문명에 대해 관심을 가진 후 귀가 따갑게 들었던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들이 우리와는 먼 거리에서나 존재하는 다른 문명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강자에 의한 기록의 산물인 역사! 강자의 문명이 대부분인 인류문화사의 오만함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던 세계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수메르·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양강(兩江)-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 대해 한없는 호기심과 신비함이 교차했고, 이해하고 싶었고, 배우고 싶은 애정이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이라크 내에 있는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문화유적은 이라크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와 문명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아쉬운 것이 있었다. 여러 가지 중에 대표적으로 '반달리즘'으로 불리는 상속되어서는 안될 야만적 이념이 있다는 것이다.

반달리즘(전쟁과 야만으로 인한 문명파괴)의 어원은 5세기경 반달, 훈족의 로마제국 침입시 야만적인 문화유적파괴로부터 유래하지만 이미 역사 이전부터 인간의 사적 욕심, 문화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자파 이념중심, 종교적 광분(신념) 등의 이유로 자행되었다.

기록으로 보여지는 반달리즘의 대표적인 경우는 기원전 356년 고대 그리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방화,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있다. 특히 훈족에 의한 로마제국의 물리적 유적파괴는 유럽의 정신적 암흑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리나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이런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이집트 등의 근동·중동(유럽에서 가까운 이라는 이 표현도 서구 제국주의 중심 역사학자들이 주장이기도 하다)의 문화유적과 아시아의 역사문화유산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거나 약탈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대부분의 문화유산들이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약탈품이란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전리품이라고 주장하지만(피에르 깜봉-Pierre Cambon-프랑스 파리 기메아시아 미술관 수석학예관-2003년 2월18일 경기도박물관 강연에서 밝힘) 전리품과 약탈품의 사전적 의미는 분명히 다르다. 전리품이란 쌍방간의 전쟁 과정에서 노획된 것을 말한다. 18세기 유럽은 제국주의였고 힘없는 약소국을 무력으로 침략한 결과 강탈해간 것이므로 약탈품으로 규정해야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외세와 내부의 반달리즘은 존재했다. 백제사의 파괴, 몽골의 황룡사 9층탑 방화, 임진왜란 때(1592년 4월) 왜군들의 사고(史庫)파괴와 정유재란 때(1597년)는 임진왜란보다 더욱 악랄한 불교유적(임진왜란 패인의 원인을 승병의 활약으로 판단)의 파괴와 약탈이 있었다.

경기 양주 회암사 등 조선조 유생들에 의한 불교유적 파괴, 1866년 프랑스의 강화도 외규장각 문서 약탈, 일제에 의한 수많은 약탈과 만행, 한국전쟁으로 인한 문화유적 파괴, 특정 종교집단의 소행으로 보이는 초등학교의 단군상 훼손 등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신자유주의 주도국인, 겨우 200년 역사의 미천한 미국으로부터 자행된 이번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야만적 파괴는 인간성과 철학성이 없는 과학문명 즉 디지털문명의 야만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주고 있는가에 대한 경고이다.

과학기술은 진정한 의미에서 휴머니즘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과학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하는 것은 "욕망의 부를 계승(미국 중심의 석유 확보)할 것이 아니라 도덕적 상상력을 계승해야 한다."

반면 7000년 이라크의 수메르·메소포타미아문명은 인류 최초의 문자로 간주되는 점토판 문서/ 인류 최초의 도시 우르(Ur)-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우르에서 태어났다/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의 원형 지구라트/3대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발생처/동양과 서역의 문명을 연결하던 실크로드의 중심/아라비안나이트와 신밧드 모험의 무대인 바그다드 등 나열할 수 없는 역사·문화유적들이 산재해 있는 인류문명의 보고이다.

이런 소중한 7000년 인류문명이 200년 역사의 신자유주의 미국이 마구잡이로 유린하고 있는 것은 비단 디지털 과학기술에 의한 폭격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1954년 헤이그협정(무력 충돌시 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에 103국이 가입했지만 미국, 영국, 일본, 남북한은 가입하지 않았으며 폭격 후 미국은 바그다드박물관 약탈을 방조했거나 약탈의 주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고고학자 맥과이어 깁슨 교수에 의하면 1960년대 중반까지 이라크 유물은 높은 가격에 불법 거래되었다고 했다. 1958년 이라크 혁명 이후부터 유물의 국외반출을 금지한 후 이라크 국외에서 유물을 볼 기회가 없어졌다.

그러나 걸프전 후 이라크에 가해진 경제제재로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우르 등 유적지에서의 도굴과 심지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까지 훔쳐갔다.

유물 밀수꾼 조직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요르단으로 빼돌리고 런던, 뉴욕, 도쿄 등지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이라크 요르단 국경에서 압수된 유물만으로 국립박물관 하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깁슨은 이라크 전쟁 후 수집가들에게는 미술품 수집의 황금기일 것이며 몇몇 수집가는 이미 목록까지 작성해둔 상태라는 증언도 했다.

여러 정황을 볼 때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폭격 특히 수메르·메소포타미아문명(바그다드박물관)에 대한 폭격은 구제국주의자들이 이루지 못했던 정치·군사의 힘에 더해 경제의 힘, 자본의 힘으로 지구(세계)를 오로지 미국의 생산과 소비만을 위해 존재시키고자하는 신제국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야만적 폭격인 것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이라크내 박물관과 도서관의 약탈이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되자 약탈의 주체인 미국과 영국이 피해 유적 조사와 유물의 환수에 신경을 쓰겠다는 것이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약탈된 유물 4000여 점 중 돌아온 유물은 4개에 불과한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미국은 침공 전 유네스코의 이라크내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간곡한 요청을 무시했으며 침공 후 약탈된 유물의 최대 수집가와 수혜자가 될 것이 자명하다.

아무리 유네스코에서 조사단을 파견하고 인터폴이 불법거래 방지에 나서도 개인 소장가 위주로 은밀히 거래되는 유물을 회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탈레반 정권의 바미얀 석불 파괴라는 반달리즘을 "문화적 야만 행위"라고 비난하며 아프카니스탄의 침공의 빌미로 삼았다.

600년 역사 조선 왕조 최초의 능인 정릉(신덕왕후 강씨)의 혼유석을 파티용 음식물 진열대로 사용하는 미국의 문화적 야만행위와 주재국의 문화유산을 볼모로 덕수궁터에 자국의 15층 대사관과 아파트를 신축을 강행하겠다는 행위도 문화적 야만행위인 반달리즘으로 규탄 받아야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라크와 한국에서 자행되는 야만행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상대국의 인명을 살상하고 문화유산을 파괴했던 18세기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즉 세계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일련의 미국측 행위들은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의 반달리즘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취약하고 자기모순에 가득 차 있는 가를 알게 해주는 중요한 사건들이다.

미국의 신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덮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이라크의 재건 사업에 마치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고 있다.

문화적 야만행위인 반달리즘으로 파괴된 이라크내의 주요 유적지의 현상을 정리하고 약탈된 유물을 회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그다드박물관의 현재의 모습은 그대로 보존하여 미국의 문화적 야만행위를 후대와 역사앞에 두고두고 고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 문명 파괴의 현장을 7000년 고대 문명의 발생지인 이라크에 두어 '속죄의 순례코스'를 형성할 일에 양심적인 세계의 인사들이 나설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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