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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지난밤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고사리비가 밤새도록 내렸습니다.

4월 중순경에 내리는 비를 제주에서는 '고사리비' 또는 '고사리 장마'라고 합니다. 비온 뒤 들에 나가보면 고사리들이 밤새 내린 비를 먹고 쑥쑥 올라와 있으니 붙여진 이름일 것입니다.

이렇게 밤새 고사리비가 내리고 화창한 날이면 고사리를 꺾으러 산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고사리를 꺾어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도 있는데 취미삼아 나간다는 것이 미안해서입니다.

고사리를 꺾고 지나간 자리를 천천히 따라가며 꺾어도 우리 식구 먹을 만큼은 꺾을 수 있으니 부지런 떤답시고 일찍 나가면 안될 것 같습니다.

이맘때면 고사리뿐만 아니라 바다로 나가면 우뭇가사리나 톳이 많이 있습니다. 우뭇가사리나 톳은 각 마을 어촌계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아무나 채취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줌 정도, 식탁에 한 번 올릴 정도 해오는 것을 뭐라 하지는 않습니다.

부활절 계란을 준비도 할 겸해서 찾은 오일장.
서울의 재래시장과 그리 다르진 않지만 인구가 많지 않아서 좀 한산한데다 귤값 폭락으로 제주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소비심리도 위축되어 그 여파가 오일장까지 미친 것 같습니다.

ⓒ 김민수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야 할 제 맛이 날 시장이 텅 비어있으니 장 볼 맛도 덜합니다. 그렇게 시장을 재미없게 보고 나오는데 서울의 재래시장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좌판을 깔아놓고 장사를 하는 할망들을 만났습니다.

재래식 시장이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할망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과거에 대한 아련함을 넘어선 아픔과도 같은 것들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이게 뭡니까?"
"바다에서 해온 건데 몸이우다. 된장국 끓일 때 넣는 거우다."
"이건요?"
"톳이우다. 데쳐서 초장 찍어 먹으면 되우다."
"얼마씩 해요?"
"이 천원이다게."

아 저게 '몸'이라는 해초구나.
돼지뼈에 해초를 넣고 푹 끓인 것을 몸국이라고 하더니 바로 저거구나.

'몸', '톳', '솜' 외자로 된 해산물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은 것 다 팔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을 것 같지만 저걸 다 사갈 수도 없는 형편이고,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살 수도 없습니다.

"할머니, 이거 다 팔면 얼마 남아요?"
"뭘 그리 꼬치꼬치 물어댑수꽈? 사기나 합써. 다 팔아야 만원 정도 생기우다. 손주새끼들 주점부리라도 할라꼬마. 슬어?(싫어?)"
조금만 달라고 해서 한 봉지 담아 돌아오는 길, 구부정한 노인네들이 놀면 뭐하냐고 한 푼이라도 빌어 손주새끼들 주점부리라도 사주려는 마음을 손주새끼들은 알기나 할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 팔아야 만원 정도 생기우다'하는 말이 귓가에 쟁쟁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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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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