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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큰 오빠 같기도, 아니 우리 아버지 같기도 한 교장 선생님 한 분이 죽음을 택했다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특히 팔순의 노모 곁에서 목을 맸다는 사실은,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을 가장 큰 불효로 여긴다는 우리네 유교 의식으로 따져 보더라도 그 죽음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요즘에 58세라면 사람에 따라서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푸른 잎을 무성히 달고 주변에 그늘을 만들어 뜨거운 뙤약볕을 막아주어야 할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나이에 극단적인 방법으로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교장 선생님을 생각하면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며 두려워합니다.

또 다른 편에 힘없는 기간제 여선생님이 서 있습니다.

그 선생님은 정 교사의 관문을 뚫지 못하고 신분이 불안정한 기간제로서 타의에 의한 차 시중을 들 수밖에 없었겠지요. 끝내 자존심을 잃을 수 없어 사표를 제출하며 그 부당함을 관련 교원단체에 투고한 후, 교장 선생님의 죽음으로써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 계시는 분들은 "어른께 차 한 잔 타 드리는 것은 우리네 미덕인데 그러냐" 하며 젊은 선생님을 질타하십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차 대접이 아니고 타의에 의한 부당한 차 시중이 교육의 현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행태냐" 하며 반발합니다. 그리고 "젊은 남선생이라면 차 시중을 들게 했겠느냐? 이것은 명백한 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이다" 라며 양성 평등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변론합니다.

이 와중에 전교조라는 교원단체가 있었습니다. 학교장이라는 힘을 가진 관리자와 신분이 불안정한 기간제 교사와의 사이에서 나름대로 중재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교장 선생님은 사건의 일지만을 남겨 놓은 채 자신의 숨을 끊었습니다.

이 때, 제가 구독하는 한 중앙 일간지는 한 곳을 향해 무차별 성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사회면의 넓은 지면을 사용하며 계속해서 한 시점으로만 대서 특필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학생들이 죽었던 화재 사건이나 매년 청소년들의 자살 사건에 대해서 잠깐만 언급하였던 신문이 연일 전교조라는 교원단체를 겨냥해서 언어 폭력을 자행했습니다.

아직 그 죽음의 원인이 명확히 규명된 것도 아닌데 언론은 확실한 것 마냥 자신있게 실었습니다. 언론의 기사는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그 무게 중심이 편중되지 않게 실어야할 것인데도 전교조라는 단체를 박살낼 것처럼 편협된 기사를 실었습니다.

언론의 이러한 행태가 정말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언론의 이러한 행태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언론의 이러한 행태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언론은 사건의 전모가 확실해질 때까지 어느 한 쪽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에 겨워 자살하신 교장 선생님.
차 시중을 들지 못하겠다고 나간 힘없는 기간제 여선생님.
참교육을 부르짖는 전교조의 선생님들.
어느 한 쪽만 편향되게 공격하는 언론인들.

이들 모두의 뒤에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제 더 이상 자살하신 교장선생님을 떠올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풀 뽑는 교장선생님의 근로 정신을 배우게 하되, 목을 매단 그 분의 고통을 결코 배우게 해서는 안됩니다.

들꽃 한 송이의 생명도 안타까이 여기는 심성을 갖도록 기르되, 온실의 화초처럼 쉽게 시들어 버리는 나약함을 배우게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자살이라는 용어를 아이들 앞에서 뇌까리면 안될 것입니다.

더 논의할 것이 있다면, 정당한 절차를 밟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어른들의 이전투구에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이제 다시는, 우리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이 목매달았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이제 다시는, 교육의 현장에서 힘없는 교사들이 생업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이제 다시는, 대화와 논리적 과정없이 목소리만 키워서도 안됩니다.

이제 다시는, 국민을 향해서 걸름 장치 없이 편향된 인쇄물을 내 보내는 언론이 있어서는 더욱 안됩니다.

저는 지금, 어른들이 이전투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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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간간이 오마이 뉴스를 애독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과 중 저의 미숙하고 소박한 글이나마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 전국의 네티즌들이 모두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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