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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유토피아를 갈망한다. 세상의 온갖 굴레를 벗어나 자유를 향해 힘찬 날개짓을 한다. 드높은 창공을 맘놓고 날아가다보면 푸른 바다가 나온다. 하늘보다 더 깊고 넓은 바다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킬때면 마음마저 하얀 물거품처럼 가벼워진다. 뜨거운 태양에 작열하는 바다는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다.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 바로 그곳에 우리가 찾던 유토피아가 펼쳐져 있다.

유토피아를 갈망하던 우리들은 심한 목마름에 지쳐 바다속으로 뛰어든다. 바닷물을 먹으면 더 갈증이 난다는 걸 알면서도 그 황홀한 빛깔에 취해 무작정 뛰어든다. 이미 머릿속은 온통 그동안 그려온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으로 흠뻑 젖어있다. 이미 젖어있는 몸은 머릿속의 환상을 더욱 부풀린다. 투명한 바다속으로 각양각색의 열대어들이 손짓을 한다. 왜 이제야 찾아왔냐는 듯이 거침없이 달려들어 입을 맞춘다. 투명한 바다속은 열대어들의 무늬들로 덧칠되어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그들뿐이다. 한 장의 도화지에 그려놓은 아름다운 수채화마냥 바다속은 온갖 열대어들과 해초들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머릿속에 떠도는 이 모든 환상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피피섬의 스노클링 투어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되었다. '마야 베이'로 향하는 선착장엔 롱테일이라 불리는 태국 특유의 수상보트인 긴꼬리배가 이미 떠날준비를 마친 채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좁고 긴 형태로 꼬리부분에 엔진을 달고 있는 그 배는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려는 탐험가들에겐 제격이다.

영화 더 비치의 리처드가 그랬던 것처럼 보트투어를 떠나는 관광객들은 저마다 환상에 젖어있다. 이국의 조그만 섬 '피피'의 환상적인 유혹에 이끌려 꿈꾸던 유토피아를 찾기위해 배에 오른다. 그렇게 조그만 배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들틈에 끼어 나역시 소문으로만 듣던 유토피아를 찾기위해 배에 올랐다. 내가 탄 배에는 일본인 3명, 싱가폴인 2명, 이스라엘인 2명 등 모두 9명이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많은 궁금증들이 숨어있었다. 눈앞에 앉아있는 이국인들에 대한 궁금증과 곧이어 펼쳐질 환상적인 풍경에 대한 밑그림 등이 그것이었다.

3명의 일본남자들은 저마다 개성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이미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는지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능숙하게 해냈다. 하긴 나 역시 인사말 정도는 할 수 있으니 역시 일본은 가까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같은 동양권이지만 싱가폴 남자들은 다른 두명의 이스라엘 여성들처럼 낯설어 보였다. 유창한 영어실력과 그리 친근해 보이지 않은 인상이 우리 사이에 높은 벽처럼 서이었다. 떠나오기 전 다른 배들에는 늘씬한 비키니 차림의 서양여성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두 이스라엘 여성들은 살과의 전쟁에서 미리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특히 삼겹으로 접히는 복부의 움직임이 배가 출렁거리는 것과 박자를 같이 하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배가 뒤집힐까 두려웠다. 어쩌면 본격적인 유토피아 탐방에 나서기 전부터 실망에 실망을 거듭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비만인 사람에 대한 편견은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이 그들에 대한 모든 면 특히 인상적인 겉모습에서 더욱 증폭되었을 뿐이다.

▲ 환상의 스노쿨링 투어(투명한 물속으로 열대어들이 보인다)
ⓒ 홍경선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배의 흔들림은 빨라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사방으로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의 아름다움이 그 빛을 더해가고 있었다. 파도의 세기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배는 어느덧 바다 한복판에 멈췄다. 1차 스노클링의 시간이 온 것이다. 바다속은 밑바닥까지 보일정도로 투명했다. 울퉁불퉁 솟아있는 산호들 사이로 해초들이 흔들흔들 춤을 추고 있다. 그 움직임에 따라 각양각색의 열대어들이 바다속을 헤집고 다닌다.

어느덧 배안의 사람들이 하나둘 뛰어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들과 동작을 같이 하며 힘찬 다이빙을 시도했다. 바다속은 생각만큼 깊지 않았다. 투명한 바다속으로 담긴 얼굴위로 노란 열대어들이 다가와 입을 맞춘다.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촉각을 자극하니 섬뜩하다. 때로 몰려다니는 열대어들 중 한녀석이라도 잡기위해 커다랗게 손을 저어보았다. 하지만 이내 물살의 저항력에 부딪쳐 속력을 잃었기에 놈들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배위에서 내려오기 전 들고 온 빵부스러기를 조금씩 떼어내 녀석들에게 갖다대었다. 순간 사방에서 미친 듯이 몰려오는 열대어들의 집단공격을 받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커다란 빵조각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손에 닿은 그들의 감촉은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바다속의 물고기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이었다. TV속에서나 보던 열대어들을 이렇게 온몸의 감촉으로 직접 느낀다는 사실에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행여나 커다란 물고기가 다가와 깨물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생겼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비록 그런 고기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바다 깊숙한 곳에서만 움직일뿐 여기 모여있는 조그만 고기때들과는 좀처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바다속 신비를 만끽하기를 20여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배에 오른 우리는 또다른 미지의 바다를 향해 움직였다. 10여분 정도 지나 두 번째로 내린 곳 역시 유난히 에메랄드 빛이 강한 바다 한복판이었다. 하지만 준비해둔 빵조각들이 동이나서 처음과 같은 집중적인 열대어들의 공격을 경험하진 못했다. 하지만 보기만해도 귀여운 열대어들이 호기심어린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채 이리저리 내몸에 부딪혀가며 스쳐갈 때면 그 묘한 감촉에 살이 떨린다.

그렇게 열대어들과의 만남에 들떠 한참을 물속에서 헤맨 후에야 다시 배에 올랐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한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스노클링의 재미에 빠져 점심시간을 잊고 있었다. 투어에 포함된 점심을 먹은 곳은 인적이 드문 조용한 섬이었다. 피피에 떠있는 수많은 작은 섬 중 하나였다. 물속에 오래들어가 있어 좀 피곤했는지 밥맛이 없었다. 어쩌면 느끼한 볶음밥과 싱거운 파인애플, 바나나와 같은 과일때문인지도 모른다.

▲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정박한 섬에서
ⓒ 홍경선
몇모금 입에 대지 않은 채 물로 배를 채웠다. 섬은 일렬로 펼쳐진 작은 모래사장안으로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다. 한적하다는 것 빼고는 그리 멋진 풍경은 아니었다. 듬성듬성 서있는 야자수 아래의 그늘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기로 했다. 가끔씩 주변으로 다가오는 검은 고양이 녀석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먹다남은 과일조각을 던져주니 낼름 받아먹고서는 도망갔다. 작렬하는 태양이 뜨겁다고 느껴질 때쯤 배는 다시 출발했다.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사방을 아름다운 섬들이 둘러싸고 있는 바닷가였다. 조금만 헤엄쳐가면 금세 산호초들이 발에 밟힐 정도로 얕은 바닷가였다. 오히려 수없이 펼쳐져있는 산호들이 장애물이 될 정도였기에 수영보다는 걷는 게 나을 듯 싶었다. 까칠가칠할 것만 같던 산호들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하지만 곳곳에 포진해있는 성게들의 뾰족한 가시에 찔릴까봐 발걸음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했다. 그 전에 이미 싱가폴 녀석 한명이 성게가시에 찔려 시퍼렇게 발이 부어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물속에 박은 채 사방을 둘러보던중 우연히 커다란 대합을 발견하게 되었다. 왠지 엄청나게 큰 진주를 품은 조개가 아닌가 싶어 캐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산호속에 꽉 박혀있는 녀석은 쉽사리 떼어지지가 않았다. 이리 저리 빈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캐내려 했지만 오히려 날카로운 표면에 엄지손가락만 베고 말았다. 주변은 금세 빨간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그러하지 않게 만들려는 옹졸한 행동에 대한 벌이 아닌가 싶다.

주변은 온통 깎아지를 듯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각각의 섬들이 삼면으로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 사이에 고인 물속은 뼈속까지 들여다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여기저기 일일투어를 진행중인 배들이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모두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방콕에 머물고 있었을 때 반강제로 끌려들어간 보석방에는 커다란 루비나 에메랄드와 같은 보석이 가득했다. 특히 투명한 옥색을 띠고 있던 에메랄드는 뜨거운 조명에 달궈져 그 찬란한 빛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때 보았던 그 빛을 이곳에서 다시 볼수 있었다. 조금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색이었다. 마치 커다란 에메랄드 하나가 오랜시간에 바닷물에 녹아있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인위적인 색깔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한 비취색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몸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세상 시름 모두 잊은 채 자연을 벗삼아 놀 수만 있다면 그곳이 곧 천국이 아니던가.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채 물고기들과 더불어 놀고있는 나는 천국에 서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마지막 스노클링은 상어가 자주 출몰한다는 바다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두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도 상어는 물론 그와 비슷한 등지느러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지 발 아래로 허벅지만한 고기들만 지나갈 뿐이었다. 이날의 투어는 이렇게 모두 네 번의 스노클링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돌아가는 배안의 사람들은 이젠 모두 지쳤는지 말이 없다. 그저 사방에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만 쳐다볼 뿐이다. 남국의 뜨거운 태양에 온 몸을 맡긴 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불태운 지도 어느덧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미 몸은 익을대로 익었지만 난생 처음 겪은 자연과의 진정한 만남에 그런 고통쯤은 잠시 잊기로 했다.

▲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유토피아를 꿈꾼다
ⓒ 홍경선
어느덧 배는 오랜 항해를 끝내고 선착장에 도착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해 오후 4시에 끝마쳤으니 모두들 지칠대로 지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다. 나름대로 자신이 정한 유토피아에 대한 기준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태양을 마주할 수 있었고, 아름다운 자연과 벗삼아 함께 노닐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곳을 떠나 현실로 돌아오면 비록 사진속에 남겨진 추억이 되버릴테지만 그 기억만큼은 여전히 천국을 천국을 떠돌고 있지 않을까?

무릉도원이 따로있겠는가. 오랜 여행길에 지쳐 피로가 쌓였을 때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만 있으면 그만인 것을. 햇살이 뜨거운면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어 몸을 식히고, 저녁에 먹은 싱싱한 해산물의 정체를 알고싶을 땐 직접 바다속에 뛰어들어 본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으니. 모든 게 맘먹은대로 이루어지는 이곳이 바로 우리가 찾던 천국일 수밖에. 차가운 맥주로 목을 적시며 드넓은 모래사장에 누워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여유, 이것이 바로 유토피아적 몽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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