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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를 심는 아버지
은행나무를 심는 아버지 ⓒ 최성수
우리나라는 식목일이 너무 늦게 잡혀 있어서, 웬만한 곳에서는 식목일에 나무를 심으면 제대로 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하긴 4월 초순이면 남쪽에서는 이미 산수유니 매화니 하는 꽃들이 다 피고, 벚꽃도 한창일 무렵이니 꽃이나 잎이 돋기 전에 심어야 하는 나무가 제대로 살기는 힘들겠지요.

"강원도에 심을 건데요. 영서 지방이요."
제 대답에 묘목상은 비로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었습니다.
"예, 강원도 영서지방이면 식목일 무렵에 심어도 될 거예요."

사월 초순에도 아침이면 얼음이 얼기 일쑤인 곳이니, 나무 심기에는 식목일 무렵이 좋긴 합니다. 나무를 주문하고, 우리나라 식목일은 강원도 지방에 맞춰 잡았나보다고 웃으며 아내에게 농담을 건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후 다시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엄나무 백 그루와 겹벚꽃나무, 홍단풍 같은 것들도 몇 그루 사오라고 하셨습니다. 삼월 마지막 주에 나무를 싣고 고향에 가, 우선 가식을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식목일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와 산 발치 밭에 은행나무를 심었습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함께 있어야 열매를 맺지만, 접붙인 나무는 그렇지 않다고 해서 접목한 나무를 사다 심은 것입니다. 한식 성묘를 마치고 하루 종일 심은 나무가 약 백 오십 그루. 구덩이를 파고, 계분으로 만든 거름을 넣고, 은행나무의 접붙인 부분에 감아놓은 비닐을 벗기고 심는 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법 거리를 두어 나무를 심은 것은, 나무가 자란 후의 가지가 뻗을 만큼의 공간 확보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나무 심은 태가 나지 않지만, 저녁 무렵에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기까지 할만큼 중노동이었습니다.

늦둥이 진형이 녀석은 나무 심는 밭에 나와 외발 수레를 밀고 다니며 제가 일을 다 하는 것처럼 신이 나 했습니다. 녀석은 빈 계분 포대를 밭 가로 나르는 일도 하고, 묘목도 몇 그루씩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녀석은 그 뒤부터는 제 친구들을 보면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나무 심었다. 은행나무 심었어."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아름드리 은행나무 숲에 서 있을 녀석을 생각하며 웃음을 짓곤 합니다.

은행나무 사이에 도라지를 심으면, 여름에는 아름다운 도라지꽃이 피어날 것이다.
은행나무 사이에 도라지를 심으면, 여름에는 아름다운 도라지꽃이 피어날 것이다. ⓒ 최성수
"이제 나무 심은 사이에 도라지를 심을 거란다. 한 이삼 년 키우면 밭도 괜찮고, 나무도 그 때쯤이면 제법 자라 있을 거야."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식사를 하시며 그런 말을 하셨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표정에는 마치 큰 일을 하나 마치셨다는 듯 환한 미소가 번지셨습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문득 우리 아버지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우공(愚公)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가 떠올라서였습니다.

기주(冀州) 남쪽과 하양(河陽) 북쪽에 둘레가 700리 정도 되는 산이 있있습니다. 그 마을에 우공(愚公)이라는 나이 90이 가까운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공의 밭은 산 반대편 쪽에 있었는데, 그 밭으로 일을 하러 가기가 너무나 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우공은 자식들과 의논하여 산을 다른 곳으로 퍼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우공네 가족은 모두들 산에 덤벼들어 흙을 파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우공의 친구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수로 그 산을 옮기겠다고 하는가?"
우공은 웃으며 친구의 말에 대답했습니다.
"산의 양은 한정이 있기 마련이라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내가 있고, 아들이 있고, 또 손자가 있네. 손자가 또 아이를 나으면 자손 대대로 이어질 것이니, 한정 있는 산을 무한한 우리 가족이 왜 옮기지 못하겠나."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우공이산은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지요.

올 해, 아버지의 나이 팔순이십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당신이 심은 저 은행나무의 열매를 수확하지 못할 지도,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것도 보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은행나무를 심으면서, 마음 속으로는 그 은행나무 숲길을 거닐 당신의 손자인 내 아이들을,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생각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내가 아니라도 자손 대대로 이어지면 결국은 산을 옮기게 된다는 믿음을 가졌던 우공처럼 말입니다.

평생을 나무 심는 일을 해 오신 아버지.

"나는 평생동안 짐승 길러서는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나무를 심으면 손해를 보지는 않았어. 나하고 나무가 잘 맞는 것 같구나."

가끔 술을 드시면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시곤 했습니다. 한때는 국가에서 지정한 우수 독림가이기도 하셨던 아버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공무원에서 쫒겨나 온갖 일들로 살아오셨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이 나무 심고 가꾸는 일이라는 아버지는 요즘도 산에 가실 때면 빈손인 적이 없습니다. 꼭 낫을 들고 가서 가지치기라도 하셔야만 마음이 편하다고 하십니다.

"그냥 지나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지면 나무는 속이지 않고 잘 자라는 법이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때때로 나무를 닮아 있습니다.

한 밤중, 별이 초롱초롱한 마당가에 나가 나는 한동안 별빛 아래 빛나는 은행나무 밭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문득, 거기 아버지가 심은 은행나무들이 어느샌가 아름드리로 자라 골짜기를 아름답게 뒤덮고 있는 풍경을 마치 환영처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접목은 접붙인 자리의 비닐을 벗겨내고 심어야 한다
접목은 접붙인 자리의 비닐을 벗겨내고 심어야 한다 ⓒ 최성수
"아빠, 은행나무는 언제 크게 자라?"

어느새 따라 나온 늦둥이 진형이 녀석도 은행나무 밭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아마 녀석도 나처럼 제 키의 몇 배나 되게 자란 은행나무의 무성한 모습을 미리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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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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